낯설기만 했던 ‘커넥티드 홈’이 대세
글로벌 가전업계는 크게 두 개의 전시회를 위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9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가전전시회(IFA)가 그것이다. CES는 연초에 개최되는 만큼 그 해에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기술력을 과시하는 시제품들이 나온다. 물론 9월 IFA에서도 시제품들이 전시되기는 하지만 가전제품 최대 성수기인 11월을 앞둔 상황이라 먼 미래보다는 당장 시장성이 있는 제품들이 더 많이 전시된다.
이처럼 두 전시회가 약간 다른 특성을 지녔음에도 올해 두 전시회를 관통하는 단어는 ‘커넥티드 홈’이다. 지난 1월 미국 CES에서도 삼성전자, LG전자 등 글로벌 가전사들이 사물인터넷(IoT)을 통한 가전제품들 간의 연결성을 강조한 ‘커넥티드 홈’을 들고 나왔다.
올해 IFA에서는 유럽 가전사를 비롯한 다양한 중소형 가전사들도 모두 ‘커넥티드 홈’을 전면에 내세울 예정이다.
세계 가전업계 흐름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IFA 2014 글로벌 프레스 콘퍼런스(프리 IFA)’를 주관하는 옌스 하이테커 IFA 총괄이사는 “사실 가전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커넥티드 홈 제품은 2003년부터 계속 나왔지만 10년이 지난 올해 붐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며 이같이 예측했다.
프리 IFA는 독일가전통신협회(GFU)와 베를린박람회(Messe Berlin)가 9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하는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IFA)의 사전 행사다.
그 해에 화두가 될 만한 업체가 참가해 올해 하반기 선보일 주력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살짝 공개하고 디스플레이서치와 GfK 등 주요 시장조사업체가 글로벌 가전 추세에 대한 시장자료를 발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올해 프리 IFA는 지난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터키 벨렉에서 개최됐다.
스마트폰 타고 10년 만에 부활한 원격제어 시스템
우선 삼성전자와 독일 보쉬지멘스, 밀레 등 글로벌 가전사들은 올해 일제히 사물인터넷 관련 전략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4월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영국 등 세계 11개국에서 ‘스마트홈’을 출시했다. 앱을 이용해서 세탁기·오븐·로봇청소기 등 집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스마트폰·웨어러블기기·스마트TV와 연결해 제어할 수 있도록 한 것.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IFA에서 스마트홈 지역과 기능 등을 더욱 확대 강화한 전략을 공개할 전망이다.
독일 보쉬와 지멘스가 합작한 가전회사 BSH(Bosch and Siemens Home Appliances Group)도 올가을 ‘홈커넥트’ 앱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앱을 이용하면 자사 제품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의 가전제품을 모두 통합 제어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글로벌 가전사들 간에 가전 플랫폼 전쟁이 대두될 조짐이다.
사실 집안의 가전을 연결하는 ‘커넥티드 홈’ 개념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원격제어를 통해 전등이나 집안의 온도를 바꿔주는 등의 노력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올해 갑자기 커넥티드 홈이 붐을 맞이하게 된 걸까.
정답은 스마트폰 보급률에 있다. 2014년 4월 현재 스마트폰은 전 세계에서 시간당 2000개씩 팔려나간다. 여기에 각국 인터넷 사용환경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이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
UHD TV 시장의 대중화
초고화질(UHD) TV 분야에서도 올 하반기 IFA에서 진검승부가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소니·파나소닉 등 UHD TV 선두주자들뿐만 아니라 중국 제조사들에 이어 독일 그룬딕, 터키 베스텔 등 유럽 중소형 가전사들까지 모두 UHD TV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과 품질 사이에 줄다리기가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TCL의 안토인 살로메 유럽총괄대표는 “오는 9월 IFA에서 세계 최대 크기의 커브드 TV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는 삼성전자에서 내놓은 105인치 커브드 TV가 최대다.
거의 모든 TV제조사들이 UHD TV 시장에 뛰어들면서 선두그룹에서는 하이엔드 제품을 위주로 한 질적 경쟁이, 중하위그룹에서는 누가 더 저렴한 UHD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느냐의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는 ‘키친’에 주목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주방’이다. 시장조사업체 GfK의 프리드만 스퇴클 글로벌 대형가전·자동차 부문 이사는 “올해 주방가전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은 물론이고 선진국에서도 프리미엄 주방가전 수요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안되는 나라에서는 가전에 쓰는 돈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에어컨에 쓰지만 소득 2만달러에서 6만달러까지 선진국으로 가면 갈수록 오븐,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에 쓰는 돈의 비중이 커진다는 조사결과도 공개됐다. 이에 따라 올해 IFA에는 미국 가전사인 월풀이 처음 참여해 프리미엄 주방가전 라인뿐만 아니라 세탁기 제품군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월풀사는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최대 가전전시회 CES에도 참가하지 않을 정도로 콧대 높은 회사인데 올해 처음으로 대형 가전박람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기대 큰 소형가전제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TV·냉장고 등 대형 가전제품 시장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지만 소형가전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소비자가전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3% 성장한 1조달러 규모로 집계됐다. 대형가전제품들이 소형 가전에 비해 단가가 더 비싸기 때문에 성장 규모로는 대형가전이 소형가전보다 월등히 높다. 하지만 판매단위로 보면 소형가전의 성장률이 더 높았다. 가격이 싼 만큼 더 많은 숫자가 팔려 나갔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기로 유명한 일렉트로룩스의 클라우스 뷔흘 일렉트로룩스 독일·오스트리아 사장은 “독일에서 대형가전은 평균 13년 이상 사용하는 걸로 집계됐다”며 “하지만 소형가전은 매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도 얀센 GfK 소형가전 담당 글로벌총괄은 중국을 예로 들면서 “최근 중국에서 온라인 쇼핑이 커지면서 소형가전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소형 가전제품은 대형 가전에 비해 지역문화에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V나 에어컨 같은 대형가전제품들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소형가전제품은 나라마다 잘 팔리는 상품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에스프레소머신과 같은 주방용 소형가전제품과 머리를 손질할 때 쓰는 헤어스타일러 시장이 크지만, 유럽에서는 로봇청소기, 중국은 공기청정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 유럽에서도 지난해 소형가전시장이 전년 동기 대비 4.4% 성장했는데 그중 멀티쿠커(179%), 헤어스타일러(54%), 스팀청소기(27%), 윈도우클리너(25%) 등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얀센 총괄은 “인도에서 TV, 스마트폰, 태블릿보다 더 많이 팔리는 가전제품은 전기밥솥”이라며 “중산층을 위주로 전기밥솥, 주서, 믹서 등 주방 소형가전제품들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잘 팔릴 것으로 기대되는 소형가전은 무엇일까.
얀센 총괄은 ‘건강과 관련된 개인 측정기(personal scales)’를 꼽았다. 심박동 모니터, 디지털 체온계, 당뇨측정기, 수면·운동 계측기 등이 모두 여기 속한다. 특히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들도 해당한다.
얀센 총괄은 “이미 유럽시장에서는 모바일로 연결 가능한 측정기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모바일로 연결되지 않는 단순한 측정기 시장도 물론 급격하게 커지고 있지만 모바일 측정기 시장이 곧 이를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에서는 모바일로 연결되는 개인 건강 측정기 시장이 올해 들어 1~2월 두 달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00% 성장하는 등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