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얼마 전 테슬라 드라이버 2000명을 상대로 한 장의 초대장을 발송했다.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 Driving) 베타 10.2버전을 출시했으니, 테스트에 참여해 달라”는 공식 요청이었다. FSD 베타는 테슬라 차량에 탑재되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로 운전자가 직접 핸들을 잡지 않아도 도심 골목골목을 누빌 수 있는 꿈의 기술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이미 테슬라 드라이버들에게 차선·속도 유지 기능을 탑재한 오토파일럿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FSD는 이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유료 버전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다. FSD에 ‘베타’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이유다. 또 초대장을 받은 운전자들은 일주일 동안 최소 100마일을 운전하고, 그동안 안전하게 운전을 했다는 데이터를 쌓은 사람들이다. 테슬라가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갈수록 주목 받는 자율주행. 그 흐름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럭스멘이 테슬라의 FSD 출시를 계기로 자율주행 트렌드를 조망했다.
샌프란시스코 도로 위를 달리는 웨이모
▶운전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 변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선 자율주행 로보택시인 구글 웨이모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웨이모에서 운영하는 ‘웨이모 원’은 재규어 차량에 각종 장치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람의 운전 없이도 원하는 곳까지 데려가 주는 자율주행 승차 공유 서비스다.
현재 웨이모는 샌프란시스코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웨이모 원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다만 주마다 규정이 달라 샌프란시스코에는 운전석에 사람이 동승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반면 피닉스에는 운전사마저 없다. 이들 지역 거주민이라면 누구나 앱을 내려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웨이모는 “승객들은 운전사 눈치 안 보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다”며 “마음껏 전화를 해도 되고, 심지어 차 안에서 화상 회의를 해도 된다. 미래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자율주행 개발에는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 업체들까지 뛰어든 상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GM 크루즈, 폭스바겐그룹, 혼다, 테슬라, 현대자동차그룹 모셔널,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등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빅테크 업계에서는 구글 웨이모, 애플, 인텔 모빌아이, 엔비디아, 바이두 아폴로 등이 뛰어들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자율주행에 뛰어든 이유는 자율주행이 적극 도입되면 자동차 시장의 판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GM 크루즈는 우버와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 이용비용이 1마일(1.6㎞)당 현재 약 5달러에서 3분의 1도 안 되는 약 1.5달러로 급격히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건비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전기차를 기반으로 해서 최적의 경로로 움직이다 보니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최대 60% 줄어들 것이라는 오하이오대 연구 결과가 있다. 아울러 컴퓨터가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이동시간이 최대 40% 단축될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완벽한 수준의 자율주행차가 나타나면 차량 가격이 1억~2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한 바 있다. 수많은 부품에 소프트웨어 값을 별도로 지불해야 해서다. 따라서 자율주행 시대가 열리면 현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버와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운전사들은 필요가 없어진다.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운전석이 필요 없어지면서 자동차의 용도도 달라진다. 자동차는 현재 탑승 공간에서 업무 공간, 생활 공간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노먼 벨 게디스 자율주행
▶개발을 위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합종연횡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보니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스타트업 앱티브와 손을 잡고 모셔널이라는 자율주행 합작사를 설립해 속도를 내고 있다. 모셔널은 2023년 로보택시 론칭을 목표로 라스베이거스에서 프로젝트를 확대 중이다. 테스트 시설을 3배로 키우고 운영센터도 2배로 늘리고 직원도 100명 추가 채용했다. 특히 현대 아이오닉5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모셔널은 차량 공유 업체 리프트와 협력해 10만 번 이상 자율주행 테스트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GM은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를 두고 있다. 크루즈는 2030년까지 100만 대에 달하는 자율주행차를 운영한다는 큰 목표를 두고 있다. 특히 두바이와 독점 계약을 맺고 2029년까지 두바이 시내에서 자율운전 택시를 담당하는 권리도 확보했다. GM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웨어(MS)와 손잡았다. 이를 통해 GM은 부족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할 수 있고, MS는 구글이나 애플처럼 자율주행 시장에 간접적이나마 발을 디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는 구글 웨이모와 손을 잡기도 했다. 웨이모는 현재로선 자동차 자체를 만들 계획은 없다. 반면 이들 차량 업체들은 웨이모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
아마존과 포드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율주행 시장에 발을 디뎠다. 특히 아마존은 자율주행 픽업트럭과 SUV를 제조하는 리비안의 지분을 확보하고 10만 대에 달하는 물량을 발주했다. 리비안은 2009년 MIT 출신 알 제이 스캐린지가 창업한 자율주행 전기차 스타트업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IPO 상장 신청서류를 제출했다. 일부에선 상장할 경우 기업가치가 최대 8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GM의 시가총액이 850억달러에 달하니 상장과 동시에 100년 역사를 지닌 GM에 버금가는 것이다.
리비안의 자율주행 기술은 테슬라에 비견되기도 한다. 테슬라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인 FSD를 따로 팔려고 하듯이, 리비안도 드라이버플러스라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10년 이용권을 1만달러에 판매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 레전드
▶완전자율주행 기술 목표에 아직은 절반
자율주행 기술의 척도는 미국 자동차기술학회의 6단계 잣대를 사용한다. 레벨0은 일반 자동차, 레벨1은 운전자 지원, 레벨2는 부분 자동화, 레벨3은 조건부 자동화, 레벨4는 고도 자동화, 레벨5는 완전 자동화다. 현재 대다수 자율주행차량들은 레벨2다.
고속도로와 같은 널찍한 도로에서 핸들과 페달을 조작하지 않아도 되지만 전방을 계속 주시해야 한다. 가장 앞선 곳은 혼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는 레벨3 자율주행 기능을 장착한 레전드를 론칭했는데 무려 1억1511만원에 달한다. 혼다의 레전드는 컴퓨터가 가속페달 브레이크 운전대를 조작하면서 시속 50㎞로 주행한다. 테슬라의 FSD 베타 10.2버전은 2.5단계 수준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베타 버전 9에서도 이미 차선 자동 변경, 자동 주차, 차량 호출 등의 기능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급격한 교통 흐름 변화에 대응이 늦다는 평가도 있다. FSD 사용 중에 차선이 합류하면서 갑자기 진입하는 차량을 마주하면 이에 맞춰 속도를 급격히 줄인다는 평가다. 운전을 사람이 할 경우에는 보다 속도를 내서 앞지르거나 미리 속도를 줄여 양보할 텐데, FSD는 기계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다. 때문에 뒤따르는 차량과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또 현재 자율주행 기술에서는 알고리즘 간 충돌이 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우회전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제는 없었던 공사구간이 나타나면, 사람이 운전할 경우 지나쳐서 우회 도로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은 위험 요소에서 멈춰야 한다는 알고리즘과, 종전 데이터를 학습한 도로를 지나가려는 알고리즘 간의 충돌로 판단을 못하는 이른바 ‘데드록’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전 우려에 대해서는 반론도 크다. 테케드라 마와카나 CEO는 미국 IT 업계의 빅 이벤트인 코드 콘퍼런스에 참석해 자율주행이 사람 운전사보다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년 4만 명의 사람들이 도로에서 죽는다”면서 “이 가운데 94%는 사람의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와카나 CEO는 “작년 10월에 안전 보고서를 낸 바 있다”면서 “똑같은 상황에서 우리 기술이 사람들의 운전 실력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테슬라 오토파일럿
▶사람의 눈에 해당되는 핵심 부품들
자율주행 기술에서는 사람의 눈에 해당되는 부품들이 핵심으로 꼽힌다.
특히 자율주행차들은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이라는 기술을 활용한다. 각종 장치들이 보내오는 데이터로 컴퓨터가 실시간 주변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사람이 운전할 때 눈으로 멀리 보면서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이 자율주행 눈에 해당하는 부품들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라이다다. 레이저 빔을 발사해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컴퓨터가 지도를 그린다. 레이저이기 때문에 야간에도 주변을 인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수율이 낮다보니 가격이 비싸다. 벨로다인이 500달러까지 낮췄다고는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부품은 레이더다. 레이저 대신 전파를 발생해서 측정한다. 하지만 사물의 정확한 형체까지는 인식을 못하는 단점이 있다.
테슬라의 경우에는 최신 모델에 카메라와 센서만으로 자율주행을 구사한다. 카메라에서 들어오는 이미지를 머신러닝으로 처리해 지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테슬라는 사람도 가시거리에 있는 사물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자율주행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 고정밀지도인 HD맵을 활용하는 방식도 있다. 1 대 1 스케일로 매우 정밀한 지도를 사전에 제작을 해 둔다면 고가 부품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하지만 실시간 지도를 1 대 1로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크다.
현대차그룹 모셔널
▶자동차가 태어날 때부터 자율주행을 꿈꿨다
“자동차가 알아서 운전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인류의 상상은 자동차가 태어난 직후부터 있었다. 그 주인공은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노먼 벨 게디스다. 게디스는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1927년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는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했는데, 다른 디자이너와 달리 실존하지 않은 제품을 주로 디자인했다. 그러던 중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GM과 일하면서 자율주행 축소 모형을 설계해 선보였다. 1940년에는 매직 모터웨이라는 미래 자동차의 모습을 책에 담기도 했다. 당대 책에는 사람이 운전에 개입하지 않는 자율주행차와 교통지옥을 발생시키지 않는 자동 도로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런 아이디어가 부분적으로나마 구현된 것은 1950년대다. 당시에는 기술력이 부족해 도로에 전기 감지기를 묻혀 전기를 자동차로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자율주행차를 만들었다. 1953년 RCA랩스가 네브래스카주에서 121m 구간 주행에 성공했고, 1960년에는 오하이오주립대 통신제어시스템 연구실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주행에 성공했다. 1960년대 미국 국도국은 이러한 전자 제어 고속도로 건설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오늘날 기술과 유사한 방식을 쓴 것은 1980년 이후다. 독일의 에른스트 딕만 뮌헨대 교수가 벤츠의 밴에 카메라와 센서를 달아 63㎞ 속도로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이에 고무된 유럽은 연구기관인 유레카를 통해 7억4900만유로를 투입해 프로메테우스라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차선 유지, 운전자 상태 모니터링, 충돌 회피, 크루즈 컨트롤 등에 대한 원천 기술 개발이 목표였다. 이를 주목한 미국은 방위고등연구계획국 주도로 라이다 컴퓨터비전 등을 활용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했다.
2000년대 들어 자동차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2014년 100만달러 상금을 걸고 사막 자율주행 150마일 대회를 열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후 3년 뒤 카네기 멜론대팀이 1등을 차지하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사용화 시대를 직감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자율주행 시장에 뛰어들었다.
노먼 벨 게디스의 아이디어로부터 80여 년. 자율주행 시장은 성장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2024~2025년 100만 대 규모의 자율주행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