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건축의날 국토교통부장관 표창,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 2007년 KAI신인건축가발굴전 신인건축가상
건축가 곽희수(50·이뎀도시건축 대표)는 상복이 많은 남자다. 지난해 국내 건축계 최고상인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과 건축 전문가들이 뽑은 한국건축가협회상 베스트7을 받은 데 이어, 세계 건축상(World Architecture.WA)’ 수상과 ‘아메리칸 건축상’(AAP. American Architecture Prize) 골드메달 수상자로 선정됐다. 영화계로 치자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을 석권하고 미국 오스카상과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까지 받은 셈이다.
지난 2007년 신인건축가상을 받은 지 10년 만에 국내외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건축가 반열에 올랐다. 곽 대표의 이번 수상이 더욱 의미를 갖는 건 한 가지 건축물로 여러 개 수상을 한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작품으로 받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4월 세계건축상은 영화배우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교외주택으로, 같은해 10월 ‘아메리칸 건축상’ 골드메달은 충부 청주에 위치한 ‘F.S.ONE’ 건물로 각각 받았고,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은 강원도 홍천의 ‘유리트리트’ 펜션 건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건축정신 지키려고 회사 차려
곽희수 대표는 미술가가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려왔다. 홍익대 건축학과에 들어가게 되면서 미술가와 건축가의 꿈 사이에서 고민한다. 방황의 시기를 거쳐 몇 권의 책과 몇 권의 건물에 감명받아 건축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때부터 건축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건축이라는 게 한번 지어놓으면 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영감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개인 소유의 건물이라도 공공성을 띄어야 하는 거죠. 분명 학교에서는 그렇게 배웠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라고 한다.
첫 직장으로 들어간 건축사무소가 지나치게 상업적 셈법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3년 만에 뛰쳐나왔다. 사회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전문인이 조율되는 시스템에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창작을 해야 하는 건축가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죠. 제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저에게 감동을 줬던 책들과 다른 세상에 순종하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 틀에 맞출 수 없다면 제가 스스로 저에게 맞는 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때가 2003년이다. 이뎀도시건축이란 회사를 직접 차린 곽 대표가 처음 만난 클라이언트가 가수 신승훈이다. 그와의 인연은 우연하게 찾아왔다. 막다른 골목을 사이에 둔 건물 신축을 두고 지금은 뉴욕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윤준섭과 실갱이가 붙었다. 싸우다가 케미가 통한 둘은 친해졌고, 윤준섭이 자기 건물을 지으려는 신승훈을 소개해줬다. 당시 신승훈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여서 그의 건물을 짓기 위해 굵직한 건축사무소들이 경쟁 중이었다.
곽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물을 지을 때는 전 재산을 투자합니다. 신승훈 씨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일을 초짜 건축가에게 맡기긴 쉽지 않죠. 하지만 저는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정과 최선을 보여줬고 일을 맡게 됐습니다”라고 회상한다. 첫 데뷔작인 된 ‘신승훈 건물’은 입소문을 탔고, 이후 ‘원빈의 강원도 고향집’, ‘고소영 청담동 빌딩’을 짓게 된다. 이번에 세계건축상을 받은 건물도 영화배우 장동건·고소영의 경기도 가평의 교외주택이다. 회사를 차리고 첫 클라이언트로 유명 연예인을 만나고 일이 술술 풀린 듯하다. 이에 대해 곽 대표는 2007년 자신이 모델로 출연한 현대카드 광고의 멘트로 답했다. “운이 좋았다. 설마 그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사실은 그 대답이 제일 쉬웠을 뿐이다”
(위)세계건축상 수상한 고소영씨 교외주택, (아래)아메리칸 건축상 수상한 ‘F.S.ONE’ 건물
▶본질을 보고 남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
건축계는 유독 해외 유학파가 많은 엘리트 집단이다. 곽희수 대표는 홍익대를 졸업하고 계속 국내에서 일해 온 순수 국내파 건축가다. 한국에서 배우고 익힌 건축을 한다. 그는 “제가 해외건축상을 받은 건 제 건축이 다른 문화권 외국인들과 소통했다는 얘기잖아요. 세계와의 거리감이 좁혀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한다. 평소 곽 대표는 건축은 원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비단 건축뿐 아니라 어느 분야건 원리를 알면 돌아가는 이치를 알 수 있다는 것. 원리를 깨닫는 것은 운전할 때 빨간 신호등을 보면 자연히 브레이크를 밟듯이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는 “건축의 원리는 반드시 유학을 다녀와야 아는 건 아닙니다. 과거 선진국 건축을 보고 베끼는 때가 있었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그 단계는 넘어섰다는 거죠. 이제부터는 우리 몸에 맞게 수정하는 단계인데, 무엇보다 건축의 본질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한다.
곽 대표는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의 발상을 바꾸는 데 능숙하다. 한번은 경기도 분당에 교외주택을 짓는데 반드시 경사 지붕을 올려야 하는 건축법이 문제였다. 경사 지붕을 올리면 옥상이 없어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는 지붕을 거실과 이어지도록 하고 지붕에 거실과 같은 바닥재를 사용했다. 마치 지붕이 야외거실처럼 이어졌고 이른바 ‘지붕 소풍’이 가능한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법이 줄을 서라고 하면 대개는 일직선으로 서지만 옆이나 사선으로 설 수 있고, 심지어 번호표를 나눠주면 줄을 안 서도 되죠. 건축법이나 중력처럼 건물을 짓는데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독창적으로 생각합니다.”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켜야 좋은 건축
곽희수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 궁금하다.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중재하고 조화시키는 건축이죠. 건축주의 이익에 충실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세계 건축계를 리드하는 건축은 다 그렇죠.” 개인 소유의 건축이라도 공공의 이익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는 계속해서 “건축물의 내부는 개인 소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외관은 공공의 것입니다. 건축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낭만을 느낄 수 있고, 생각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도시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할 수도 있고, 그 지역의 성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고 말한다. 강원도 정선의 원빈 집은 42번 국도변에 바싹 붙여서 지었다. 건물이 처음 지어질 당시 그곳은 알려지지 않은 외진 시골이었다. 이 집이 들어서고 나서 이 지역이 덩달아 유명해졌다. 좋은 건축은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곽희수 대표는 건축가가 되고 난 후 노출 콘크리트 공법만을 고수한다. 그가 이 공법을 고집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콘크리트는 인간이 사용하는 건축 자재 가운데 가장 친환경적이다. 오히려 내·외부에 본드로 벽돌이나 나무나 철을 붙이고 페인트를 칠하면 그만큼의 유해 물질을 사용하게 된다. 또 노출 콘크리트는 건축가로서 진검 승부, 맨몸 승부라 할 수 있다. 건축의 구조 자체로 승부하는 거다. 콘크리트는 또 회색의 중성적인 소재다. 그래서 주변 경관이 들어올 여지가 많다. “가평의 ‘장동건·고소영 주택’ 주변이 산입니다. 자연의 나무와 돌보다 더 멋진 마감재가 있을까요. 그 집 외피를 인공의 나무나 벽돌로 장식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