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이진화 디자이너는 프랑스 전통 섬유도시 ‘숄레’에서 동양인 최초, 한국인 최초로 ‘자흐 당 드 베흐(Jardin de Verre·예술 퍼포먼스 공연장)’에서 단독 패션쇼를 개최했다.
숄레시의 100% 지원으로 진행된 이날 패션쇼에는 숄레시 관계자와 지역주민, ‘리세 드 라모드’ 패션스쿨의 교수진과 학생들이 초대됐다. 아름다운 성당이 많은 숄레의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지털 프린트하고 정제된 아방가르드함과 세련된 베이직 라인을 조화시킨 이진화의 의상은 “프랑스 고유의 지역 문화를 동양적 정서로 잘 풀어낸 독창적 의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패션쇼 피날레에선 우렁찬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이진화 디자이너(33)는 성신여대 서양미술과를 나와 미국 뉴욕 파슨스에서 5년간 패션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 현지 유명디자이너회사에서 인턴십을 마쳤다. 그 뒤 프랑스 국공립학교인 숄레지방의 ‘리세 드 라모드’에 가죽제품의 디자인과 제작 과정을 거쳤다. 현재 파리에 사무실 겸 디자인스튜디오를 오픈하고, ‘JHL’과 ‘JHL by JINHWA LEE’ 두 개 브랜드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이진화 디자이너를 서울 청담동 ‘이림패션’에서 만났다.
▶프랑스 장학생으로 전격 발탁
이림패션은 40년 넘게 한국의 오트퀴트르(고급 맞춤복)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이림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부티크이며, 이진화는 그의 딸이다. 이진화 디자이너는 2년 전 프랑스의 전통섬유도시 숄레에 위치한 ‘리세 드 라 모드’ 패션학교로부터 장학생 제의를 받았다. 뉴욕에 머물던 그에게 갑작스런 제안이었다. 당시 그는 프랑스에 숄레라는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다.
이 디자이너는 “숄레가 200년이 된 역사적인 도시이며, 남성들이 애용하는 행커치프가 세계 처음으로 만들어진 곳이고 그리고 저를 초청한 ‘리세 드 라 모드’가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에서 일하는 장인들을 배출하는 유명한 패션전문학교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라고 한다.
이진화에게는 프랑스의 국공립학교가 장학금까지 주며 오라는 게 낯설었지만, 이미 이 학교에서는 전·현직 교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그에 대한 신상과 활동사항을 파악하고 실사를 거쳐 선별하는 과정을 거쳤다. 프랑스 패션산업을 이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드세 드 라 모드’ 입장에서는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영향을 줄 외부인재 영입이 필요했다.
이 디자이너는 프랑스 명품의 장인정신을 체득하고 오길 바라는 스승이자 부친의 뜻에 따라 숄레로 향했다. 그는 “제가 들어간 반은 가죽을 다루는 장인 자격증(BTS)을 따기 위한 학생들로 구성됐는데, 40여 명 중 동양인은 제가 유일했습니다. 거기서는 회사에서 2주는 일하고, 2주는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공부하는 방식도 독특한데, 실제 루이비통 회사에서 사용하는 가죽이나 부속품들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고, 장인들이 나와 디자인이나 실물 제작을 도와주는 산학연계가 잘 이뤄지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라고 한다. 뉴욕 대도시와의 삶과는 천양지차인 프랑스 소도시에서 지내다보니 처음에는 언어도 서툴고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옷을 만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공기처럼 느끼고 자란 이진화에게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슐레의 패션스쿨이 점차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유일한 동양인을 낯설어하던 친구들도 그의 탄탄한 실력과 꼼꼼한 솜씨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씨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佛숄레시 지원으로 단독패션쇼
숄레시 지원으로 열게 된 단독패션쇼도 전폭적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준비기간이 3개월밖에 없었지만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었다. 이 디자이너는 “지난 2년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내재되어 있던 감성과 재능을 교수님과 친구들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고, 세계적 명품들이 탄생하는 곳에서 첫 해외 단독패션쇼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이 디자이너는 숄레시 패션쇼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본인은 서양적인 것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의상을 선보였는데, 현지인들은 지극히 동양적이며 자신들의 것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고 반응했다. ‘이진화’ 속에 동양적·한국적 정서가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한 가지 얻은 것은 협업이다. 패션쇼를 통해 디자이너 이진화가 얻고자 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점에 대해 다 같이 의논을 하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맡아 퍼즐을 맞추듯 일이 완성되어가는 걸 보면서 협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숄레시는 처음 선발한 한국인 장학생 이진화의 놀라운 실력 향상과 발전에 고무되어 있다. 이에 현재 한국 창원대학교와 정기적으로 학생 교환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디자이너가 가기 전 한국에 대해 잘 몰랐던 ‘리세 드 라 모드’ 학생들은 이제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고 싶어 한다. 파리로 거처를 옮긴 이진화는 프랑스를 거점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디자이너로서 원대한 꿈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스승인 부친과 한길 걷다
이진화의 영원한 멘토는 아버지 이림(이림패션 대표) 디자이너다.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를 갈 때도 독려했던 장본인이다. 이림 대표는 “전 딸이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출세지향적이죠. 디자이너가 되면 금방 이름을 날려야 하고요. 하지만 패션이나 예술은 정서가 오랫동안 쌓여야 실력이 나옵니다. 그런 정서를 접할 수 있는 곳이 프랑스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한다.
딸에게 아버지 이림 대표가 어떤 디자이너로 비춰질까 궁금하다. 그는 “언제나 본인이 가지고 있는 꿈이 있으세요. 거창하기보다는 아름다움 미를 추구하고 그것을 구현해 내려고 노력을 많이 하세요. 그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절제되어 있습니다. 제가 따라가기에 너무 먼 경지에 계시죠”라고 말했다.
이림 디자이너는 딸에 대해 “진화에게 고마운 건 항상 진지하다는 겁니다. 제가 강조해온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긴 자세를 딸이 따라와줘서 고맙죠. 하지만 진지함을 넘어서 젊은 날에 허용되는 치기 어린 도전이나 모험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라고 했다. 삶의 지향점을 향해 장인의 바늘땀처럼 진지하고 완벽하려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붕어빵 부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