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기자의 패션人사이트] 김 훈 ‘칼 라거펠트’ 수석디자이너 | 세계 패션계 코리아커넥션 대표주자
김지미 기자
입력 : 2016.03.17 16:37:10
세계 패션계에 ‘프렌치 커넥션’이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디자이너들이 전 세계 패션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코리아 커넥션’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유명 브랜드마다 한국이나 한국계 디자이너들이 활약하고 있어서다. 타고난 재능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잠재되어 있는 끈기와 노력으로 유럽과 미국 패션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김훈 ‘칼 라거펠트’수석디자이너(49)는 코리아커넥션 중심에 서 있는 대표주자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뉴욕의 유명 패션스쿨 FIT에서 수학한 그는 지난 25년간 엘리타 하리, 랄프 로렌, 아베크롬비 앤 피치, 타미힐 피거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샤넬 디자이너면서 세계 패션계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칼 라거펠트의 본인 이름 브랜드 ‘칼 라거펠트’의 수석 디자이너로 전격 발탁됐다. 지난 1월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에서 그는 호평받아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시장조사차 방한한 김 훈 디자이너를 만났다.
▶디자이너에게 연극 시키는 이유
김훈 디자이너에게 해외에서 성공한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불쑥 연극 얘기를 꺼낸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박물관 겸 건축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연극수업을 듣도록 하더군요. 학교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으니 학생들이 취업 후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도록 미리 연극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라고 귀띔해줬습니다”처음 미국 패션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는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프레젠테이션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본인이 작업한 디자인을 설명할 때 수줍고 긴장해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다. 말을 잘 못한다고 누가 뭐라고 한 건 아니지만 다른 동료에게 기회가 넘어가는 걸 보면서 이를 악물고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했다. 점차 나아지면서 성취감과 함께 원하던 기회와 승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외국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연습을 통해서라도 꼭 갖추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고 조언했다.
김 디자이너의 첫 직장은 ‘엘리타 하리’였다. 미국의 대형 패션회사 리미티드그룹에 속한 ‘엘리타 하리’에서 소비자 니즈에 맞는 디자인을 얼마나 빠르게 디자인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공급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타미힐 피거’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바이어들에게 신상품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터득했다. 4년간 근무한 ‘랄프 로렌’에서는 미국 패션 역사와 함께 해온 랄프 로렌과 작업하며 거장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랄프 로렌과 일하는 동안 한번도 ‘싫다’거나 ‘안 좋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좋다’ ‘아주 좋다’라고 긍정적인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그와 일할 때는 직원들이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할 때가 많았는데, 랄프는 종종 ‘바닥에 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겠다’고 농담을 하곤 했죠”라고 말한다. 랄프 로렌과의 작업은 언제나 철저한 준비 아래 진행됐다. 예를 들어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시즌이 되면 박물관 못지않는 규모의 회사 내 아카이브에서 테니스와 관련 의상과 자료를 찾아 디자인 작업공간을 꾸몄다. 그러면 랄프 로렌이 와서 뺄 것을 빼고 더할 것은 더하도록 지시를 했고, 몇 번의 비슷한 작업을 거쳐 랄프로렌의 시즌 컬렉션이 만들어진다. 개별 디자이너가 보유한 방대한 아카이브가 신기하고 대단했다고 한다.
▶칼, 첫 대면서 “이제는 한국 시대다”
세계적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와의 첫 대면은 작년 말 파리 시내 센 강 부근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칼은 그에게 가장 먼저 “불어 할 줄 아느냐”고 물었고 “잘 못한다”고 하니 “그럼 영어로 대화하자”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김 디자이너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양과 달리 편하게 대해 주고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하지만 준비해간 디자인을 볼 때 하나하나 디테일을 언급하는 게 굉장히 정확했어요. 요즘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디자이너도 많은데 제가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다고 하자 무척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고 말했다. 칼 라거펠트는 지금도 디자인을 할 때 종이를 쌓아두고 컬러펜으로 직접 그린다. 젊은 세대들이 컴퓨터의 편리함만 생각해 종이에 손으로 그려 표현하고 입체화시키는 경험을 갖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한편 ‘칼 라거펠트’브랜드는 타미힐피거 그룹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 약 10년 전 칼 라거펠트로부터 브랜드권을 사들였으나 영업이 활발하진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에 새로운 CEO가 부임하면서 브랜드 재건과 사업 확장에 나섰고 그 구심점 역할을 김훈 디자이너가 맡은 것. 그가 만드는 ‘칼 라거펠트’가 궁금하다. 그는 “제가 아닌 그분 이름이 들어간 브랜드라 ‘칼 라거펠트’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연구하기로 했죠. 사진을 모아 벽면에 붙여놓고 보니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고 말했다. 칼 라거펠트는 평소 반듯한 정장을 즐겨입지만 재킷에 반짝이 장식이 들어가는 반전 스타일을 하기도 한다. 엄격한 듯 유머러스하고, 까탈스러워 보이지만 온화한 면모가 그가 평소 입고 다니는 옷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분석한 것을 토대로 한 디자인을 칼이 흡족해 했다. 김 디자이너는 “작년에 한국서 열린 샤넬 크루즈 패션쇼에 다녀간 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셨어요. 쇼에서 한국의 전통 보자기와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옷들을 선보인 것만 봐도 그렇죠. 저에게 “이제 일본이 아니라 한국 시대”라고 하셨습니다”고 전한다.
김 훈 디자이너는 ‘입을 수 있는(웨어러블)’옷을 추구하고 있다. 옷이란 게 예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보거나 입기에 힘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꼼데 가르송은 예술적인 성향이 강한 옷이지만 동양인들이 입으면 멋스럽고 서양인들이 입으면 어색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옷은 입는 사람이 편안하고 몸에 잘 감기느냐가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칼 라거펠트’옷을 디자인할 때 그는 본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을 떠올린다. 그 여성이 아침에 뭘 입을까, 점심에는 무슨 옷을 입고 누가와 식사를 할까, 저녁 이브닝파티에는 어떤 옷을 입고 갈까 등을 고민한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컬렉션에 대한 윤곽이 잡힌다.
▶“아랫사람에 잘해라” 아버지 말씀 마음에 새겨
김훈 디자이너가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 그는 “아버지께서 늘상 ‘윗사람에게 잘하려고 하지 말고 아랫사람에 잘해라. 항상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잘 돌보고 위해 줘라’고 하셨습니다”고 회상한다. 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상사들과는 거침없이 의견대립을 하는 그이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나 부하직원에겐 한없이 약하다. 특히, 일을 열심히 하고도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직원이 있으면 백기사를 자청하고 나서 도움을 준다. 김 디자이너는 미국 뉴욕에 거주지가 있지만 암스테르담에 있는 작업실과 칼 라거펠트가 거주하는 파리를 돌며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파쏘나블’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까지 도맡아 그 회사가 있는 프랑스 니스를 가는 여정이 추가됐다. 해외를 돌며 바쁘게 사는 그에게 본인 이름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론칭할 생각은 없는지 물어봤다. 그는 “아예 젊었을 때 시작했다면 가능했겠죠. 오랫동안 패션계에 몸담고 보니 디자이너란 직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디자인 작업 말고도 경영까지 신경쓸 게 많지요. 특히, 미국 패션계의 경우 점차 거대 회사들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 디자이너가 성공하고 자리를 잡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며 “거장들과 함께 일하고 훌륭한 브랜드를 맡아 일하는 지금이 만족스럽습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훈 디자이너와 같이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하고 성공하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거예요. 외국서 학교를 마치고 나면 일년이란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제한적 기간이 주어지죠. 회사 입장에선 외국인에게 취업 비자를 내주려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자국 인력을 쓰려고 합니다. 그들이 돈을 들여 비자를 내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도록 굉장히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규모가 큰 회사에 들어가길 원한다면 더욱이 그렇죠”라며 “무대에 선 연기자가 되었다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잘 세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