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 산업은행 이끌 새 선장 이동걸 회장 기업 구조조정·자회사 매각 해결사 될까
정지성 기자
입력 : 2016.03.10 14:30:22
수정 : 2016.03.10 14:57:03
이동걸 산업은행 신임 회장이 지난 2월 취임했다. 산업은행 새 선장으로 선임된 이 회장에 대해 다양한 금융 실무 경력을 갖춘 베테랑이라는 호평과 정책 금융·구조조정 경력이 전무한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엇갈리고 있다.
이 신임회장은 지난 2월 12일 여의도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62년 국내 정책금융을 이끌어 온 산업은행의 수장이 된 것이 기쁘면서도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국내 최대 정책 금융기관이다. 218조9436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을 5% 이상 출자한 비금융 자회사만 377개에 달한다. 특히 글로벌 경제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 국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막는 방파제로서 한계기업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 증권사에서 잔뼈 굵은 금융인
이 회장이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재정 건전성 확보, 산은 조직 재정비 등 산적한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느냐 여부에 따라 국가 경제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이 신임회장의 책임이 막중하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이 신임회장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회장이 인사 논란을 불식시키고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임 초기부터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구 출신인 이 회장은 경북사대부고와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1970년 한일은행에 입사했다. 이후 2002년 신한은행 부행장을 거쳐 신한캐피탈 사장,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 사장,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등을 지냈다.
이 회장은 신한은행에서 일한 15년을 포함, 30여 년을 은행에서 보낸 만큼 은행 경영 측면에서는 확실한 베테랑이다. 문제는 그가 정책 금융 경험이 없고 구조조정 관련 능력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증권 업계에 몸담으면서 투자은행(IB) 업무를 경험하긴 했지만 당시 성과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이 회장은 2006년 2월부터 증권사 CEO로 일할 당시 증권사 최초로 해외 부실채권(NPL),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였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소형 증권사에서 당기순이익 1500억~1700억원대를 기록하는 업계 3~4위권의 증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퇴임 이듬해 투자 자산의 부실률이 높아지면서 당기순이익이 400억원대로 급감하는 등 심각한 부침을 겪기도 했다.
이 회장은 매일경제와 전화 통화에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은행 업무는 ‘10전 10승’이 당연하겠지만 투자 리스크가 큰 IB업무는 ‘7승 3패’ 정도만 되도 실패한 것이 아니다”라며 “구조조정 경력이 부족하단 지적도 있지만 은행·캐피탈·증권사에서 일하면서 민간 측면의 구조조정 업무는 충분히 경험했다”고 밝혔다.
▶산적한 과제 해결할 수 있는 추진력 보여야
새로 출범한 ‘이동걸 호’가 빠른 시일 내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인사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이 회장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대표적인 ‘친박’ 금융계 인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금융인들의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주도하는 등 현 정부 출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따라서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자회사 매각 등 과제를 강력하게 추진해 주위의 우려를 씻어낼 필요가 있다.
이 회장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은이 해운·조선·철강 등 부실 업종의 기업 구조조정이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3조원 이상의 추가 손실이 드러나면서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미루기 어렵게 됐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등 세계 경제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이에 부실 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특히 현대상선·대우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이들 산업은 물론 철강과 건설을 포함한 ‘중후장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고 강하게 이를 추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정부와 기업의 소통창구 역할은 물론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를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막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 더불어 정부의 정책 금융 개편 방안에 따라 기존 중후장대 산업 지원에 치중했던 산업은행의 역할을 미래성장 산업 지원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당면 과제다. 산은의 역할 개편에 따라 향후 국내 산업의 판도가 바뀌는 만큼 이 회장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이 회장의 주요 과제 중 산업은행의 자회사 매각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산업은행의 비금융 자회사가 377개에 달한다.
정부는 투자 기간 5년 이상 됐으며 15%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 중 구조조정이 마무리돼 정상화된 곳 등의 조건을 따져, 매각 대상을 선별해 2019년까지 우선 매각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매각되는 자회사는 ▲대우조선해양(지분율 31.5%) ▲한국항공우주산업(KAI·26.8%) ▲한국GM (17.02%) ▲아진피앤피(18.25%) ▲원일티엔아이(16.7%) 5곳이다.
앞서 홍기택 전 회장이 자회사 매각을 담당할 ‘투자관리부서’를 신설하는 등 매각을 위한 발판은 마련돼 있다. 다만 정부의 매각 압박 속에서 정상적인 가격을 받고 자회사를 매각하는 문제는 이 회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
특히 대우조선의 경우 기업 정상화가 진행 중이며, KAI는 국가 산업이라는 점, 한국GM은 경영권이 없다는 점은 물론 최근 시장이 악화일로에 있는 상황이어서 자회사를 제값 받고 파는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재정 건전성 개선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산은은 국책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시중 은행에 비해 재정 건전성 부문에서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말 산은의 부실 채권 비율은 2.35%로 신한은행 0.8%, KB국민은행 1.1%, KEB하나은행 1.15%, 우리은행 1.47%, NH농협은행 2.27%에 비해 비교적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비금융 자회사 377개 처리 주목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 인사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경영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 회장이 은행부터 캐피탈, 증권 등 금융 업계의 전반적인 현안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혁신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 회장에게는 한계기업 구조조정 및 자회사 매각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앞서 산은 내부 조직을 정비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등장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회장의 취임 초기 행보에 따라 향후 3년간 그의 성과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함께 직원들의 임금 인상분 전액 반납 결정을 끌어내는 등 조직 쇄신을 단행했다. 그러나 홍 전 회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AIIB 부총재로 떠나게 되면서 이 회장에게 조직 쇄신의 후속 조치가 과제로 남았다. 특히 377개에 달하는 자회사 처리와 함께 임금 반납은 물론 여론의 질타에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문제가 시급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내외적인 상황이 어려운 때에 국책 은행의 수장 자리에 오른 만큼 이 회장의 고심이 깊을 것”이라며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결단력 있게 추진해 대우조선 사태로 인해 실추된 산은의 자존심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