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시장 개방 1년이 지난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해외 로펌은 어디일까.
재계에서는 국내 진출 1호 글로벌 로펌인 ‘폴헤이스팅스’를 첫 번째로 뽑고 있다. 전 세계 20개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보유 변호사만 1000여명이 넘는 폴헤이스팅스가 지난 6월 ‘롯데케미칼(구 호남석유화학)의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사실 폴헤이스팅스는 재계에서는 친숙한 해외 로펌에 속한다. 지난 1970년대 구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의 첫 번째 미주지점 개설을 폴헤이스팅스가 맡아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후 1994년 기아차의 미주 서부지역 판매망 구축부터 아시아나항공의 첫 미주취항, 비교적 최근인 삼성전자의 씨게이트 인수합병까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국기업들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굵직굵직한 국제 소송을 맡아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한항공의 독과점 관련 집단소송, LG디스플레이의 독과점 관련 소송, 코오롱인더스트리와 듀퐁의 1조원대 기업비밀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3대 로펌의 하나로 국내 진출 1년을 맞은 폴헤이스팅스의 김종한 대표변호사를 지난 9월 5일 을지로에서 만났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소송이 늘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들에 대한 소비자 집단소송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소송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준법제도, 감사부서란 의미도 있으며 담합에 대한 처벌을 뜻하기도 한다)’ 관련 소송이다. 미국기업들은 경쟁업체들에 소송을 자주 제기하는데, 한국기업들의 경우 ‘견제 차원’의 소송을 당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두 가지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소송을 통해 미국 시장 진출과 시장점유율을 막을 수 있고, 두 번째는 합의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기업들은 이런 이유로 소송을 돈을 버는 방법, 즉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국내기업들이 의외로 ‘빌미’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의 소송 대부분이 이런 종류인데, 의도적으로 범법 행위를 한 것이 아닌 실수로 컴플라이언스 제도를 어긴 경우가 많았다.
국내 기업에도 ‘준법감시인’ 제도가 있는데
사실 국내기업들에게 있어 컴플라이언스는 아직 낯선 제도다. 그러다보니 자꾸 오해와 소송의 빌미를 제공한다. 물론 국내기업들 역시 컴플라이언스 제도인 ‘준법제도’와 ‘준법감시인’을 도입한 곳이 많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운영이 되는 곳은 찾기 힘들다. 이 제도를 정확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로펌에서 이와 관련된 양식을 요청하고, 내용을 회사 상황에 맞게 고친 후 허울뿐인 제도를 도입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제도가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CEO부터 인턴직원까지 모두가 컴플라이언스 제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에만 최소 1~2년이 걸리며, 회사의 모든 시스템을 처음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교육인 셈이다. 국내기업들이 컴플라이언스 제도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위험에 모두 노출됐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그렇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모두 노출돼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들이 소송은 당하지는 않는다. 미국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미국 회사들이 특허소승을 걸면 사업이 잘 된다는 증거”라는 말이 있는데, 이처럼 미국시장에 진출한 이후 높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기업들에만 주로 국제 소송이 제기된다. 잘 안 되는 회사에 굳이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법률적인 문제가 회사 경영에 큰 변수로 작용하는데도, 한국기업들의 법무팀은 여전히 그룹 내에서 찬밥신세다. 어떤 대기업의 경우 아예 법무팀 예산이 없는 경우도 있다. 흔히 ‘병이 생기는 것보다 예방이 좋다’고 하는데, 쉽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왜냐면 국내기업들은 대부분 CEO들이 결정을 하는데, 이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 느슨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정작 소송을 당해 수백억씩 비용을 지출해야만 이 부분에 대한 투자를 고민한다.
그 밖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경영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해외 M&A 역시 국내기업들의 불안요소다. 국내기업들은 90년대 초반부터 해외 M&A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걸음마단계라고 볼 수 있다. 성공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두산그룹이 진행했던 밥캣 건이 겨우 체면치레를 한 정도다.
내 일의 대부분은 M&A와 관련돼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기업들이 미국 직원들을 데리고 일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사고로 미국 회사를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해당 지역 특유의 문화가 있는데, 대부분의 우리기업들은 이 부분을 등한시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배하려고 하다 보니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M&A가 ‘파도타기’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사실 2007년에 외환위기 이전에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M&A팀을 급하게 만들어서 대규모 인수합병 준비를 한 적이 있다. 특히 두산그룹의 밥캣 인수가 성공사례로 불리면서 대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M&A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내가 여러 케이스를 맡았는데, 정작 성공한 케이스는 없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올스톱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이 너무나 큰 M&A를 원하고 있다. 과거 SKT가 US링크와 합작해 힐리오라는 회사를 세운 적이 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정리됐다. 클라이언트들이 이처럼 대부분 ‘조’단위 딜을 원하고 있었다. 경영방법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규모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번은 대기업 CEO가 ‘이 딜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내 답은 “덩치가 너무 크다. 작은 규모로 시작해 자신감과 요령을 얻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결국 다른 이유로 인해 딜이 진행됐고, 결과는 실패였다.
경영진 역시 M&A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대부분의 CEO들은 딜의 성공 이후 경영방침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보다 피인수기업이 갖고 있는 매력, 즉 특허기술이나 점유율에만 관심을 보인다. 당장은 그게 가능하다해도 경영이 꾸준하게 뒷받침 되지 못하면 결국은 시너지가 아닌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다. M&A를 하고 싶다면 작은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