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래학자 도미니크 바뱅(Dominique Babin)이 한국을 찾았다.
바뱅은 미래의 모습 중에서 특히 포스트휴먼을 집중 연구해 ‘PH1(번역서 ‘포스트휴먼과의 만남’)’이란 책으로 30여년 뒤 다가올 모습들을 보여준 바 있다. 포스트휴먼이란 최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해 영생에 도전하는 신인류를 말한다.다음에 낼 책을 준비하려고 한국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바뱅을 서울프랑스문화원에서 만났다. 향후 발전할 나라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느껴보려고 한국에 왔다는 그는 스스로를 미래학자 그 이상이라고 했다.
“나는 미래학자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이상이다. 나의 관심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 현재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다. 약 15년 전부터 3~5년 주기로 세상이 변하는 것을 깨닫고 분석을 시작했다. 당시 기업과 광고회사를 위해 응용예측을 연구하다가 긴 주기의 사회변화를 관측하게 됐다. 또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게 과학과 기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과학과 기술 발달이 새로운 사회 형태를 좌우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보다는 긴, 다시 말해 5년 주기보다는 긴 세월에 대해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결과 나온 ‘PH1’은 30~40년 주기의 변화를 예상해 쓴 책이다.”
그는 공상과학 같은 PH1의 내용들이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다. PH1은 냉동했던 인간의 부활은 물론이고 머릿속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되찾아 쓰고, 고장 난 신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더 나아가 늙지 않는 인간, 불멸의 인간까지 그리고 있다.
“내 책에 나온 내용은 각 장 말미에 나온 이야기를 빼고는 모두 사실이다. 내 글은 에세이이기 때문에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썼다.”
그만큼 과학기술의 발전이 엄청나다는 얘기다. 지금은 80~90년 후 세계가 어떻게 될지를 연구하는 중이라고 밝힌 그는 워낙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라서 다음 작품은 에세이(사실에 근거한)로는 내지 못하고 소설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인간과 포스트휴먼 정의하기 달려
그에게 뇌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인공장비로 대체했을 때 이를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지, 역으로 신체의 다른 부분은 멀쩡한데 뇌만 대체할 경우 역시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것은 인간과 포스트휴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내 할아버지는 작고했는데 생애 말기 거의 사이보그 상태로 지냈다. 할아버지는 심장 심실에 문제가 있어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판막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남아공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단거리 선수인데 의족에 의존해 달린다. 그러면 그가 인간인가 포스트휴먼인가.”
그는 지금 인간의 변화가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고 했다.
“장기가 약해졌는데 제때 이식하지 못해서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 신장이나 간 등을 이식하면 살 수 있는데 그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유전공학이 발전해 돼지에 인체 유전자를 넣어 생산한 신장이나 간을 이식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반은 돼지이고 반은 사람이다. 이게 인간인가 포스트휴먼인가.”
뇌에 대한 연구도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뇌는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뇌에도 전선을 심을 수 있다. TMS라는 게 있는데 6~7년 전부터 개발이 시작돼 지금 엄청난 변화가 있다. TMS를 쓰고 뇌파를 보내면 뉴런의 전기 자극으로 뇌의 여러 부분이 활성화한다. 뉴런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헬멧을 쓰고 뇌의 특정부분을 자극하면 뇌가 활성화돼 머리가 좋아지고 학습능력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를 이용해 외국어를 배우려고 헬멧을 쓰고서 뇌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 미래엔 이것을 이용해 질병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뇌파를 활성화함으로써 정신질환 치료가 가능하게 된다.”
지금 유전자 기술은 개를 복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사람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 후 복제한다고 할 때 사망한 사람의 생각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객체일까.
“복제로 태어났다면 생물학적으로 쌍둥이 상태이다. 복제해서 자궁에 이식해 생명체로 키우게 된다. 여기서 체세포는 스스로 진화해 발달해 간다. 그렇게 생명체가 태어나면 생물학적으로 쌍둥이인데 생각은 달리하게 된다. 복제개나 복제양 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복제 결국은 일어날 것
최근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각국이 인간복제를 금지하고 있는데 산업 또는 기술로서의 인간복제가 그(윤리적) 한계를 넘어설 것인가. 이에 대해 바뱅은 쉽지는 않지만 결국 그런 날이 올 것으로 보았다.
“인간복제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기술적으로 실제 실험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금 원숭이까지는 복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서구에선 법적으로 인간복제를 금지했다. 한국은 그런 것을 금기시하는 여론이 적은 것 같다(이 부분은 작가가 한국의 실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인간복제가 위험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법적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금기시하고 법적으로 금지했기에 누구도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이면에서 작업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는 특히 인간이 이성적 판단을 넘어서 극단적으로 간 선례들을 지적했다.
“기술적으로 복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나치즘은 사람들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규격화했다. 클론이니 사이보그니 인간복제와 관련해 우리는 이미 그런 극단을 많이 봤다.”
그러면서 이미 윤리적 극단에 부딪칠 상황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은 사람은 아주 많다. 그런데 이것도 허용을 어디까지 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서구에선 동성 결혼을 허용했다. 아직도 반대가 많은데 그렇게 결혼한 이들이 아기를 가지려면 대리모를 통해 가져야 한다. 과학적으로 가능하지만 사람들의 머리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명연장과 죽음, 어느 게 행복인가
종교가 없다는 그에게 생명연장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졌다. 인간이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한다고 할 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인가.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바뱅은 역으로 질문을 했다.
“그러면 죽는 게 행복인가.”
고 김수환 추기경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자 바뱅은 그런 연령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했다.
“식물인간 상태로 삶을 연장하는 것은 고통이다. 프랑스에선 노령을 난파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선 생명연장이 행복이 아닐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바뱅은 다른 의미에서 죽음이 축복이란 게 맞는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다. ‘죽음은 삶이 만들어 낸 유일한 최고의 발명품인 것 같다. 죽음은 삶을 대신해 변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죽음은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할 수 있다. 히드라나 메두사 같은 불멸의 생명체도 있으나 그들은 무성생식을 한다. 그들은 진화하지 못한다.”
죽는 존재라야 진화할 수 있기에 (인류 차원에서 볼 때) 죽음이 축복일 수 있다는 발상은 서구적 합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유성생식은 두 개의 DNA가 만나 진화하고 변화한다.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벌레 같은 상태를 연상해야 한다. 인간은 섹스를 통해 태어나는데 (새로운 객체로 나타나는 순간) 죽음을 예상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할 갑옷을 입은 갑각류도 아니고 치아도 별로 없는 그 유약한 존재가 진화하고 발전해 지적능력을 이용할 정도로 발달했다. 인간은 지적능력으로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했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함으로 인해 죽음까지 인식하는 것은 비극이다.”
바뱅은 놀라운 지적능력을 바탕으로 생존전략을 획득하고 여기까지 진화해온 인간이 이제 지구상의 승자가 되어 더 이상 진화가 필요 없는 존재가 됐다고 한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볼 때 영생이나 불멸을 추구할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종교의 입장도 이해한다.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아니란 것을 인식하면서 고통스럽게 됐기에 종교는 그것을 벗어나는 대안을 제시했다. 가톨릭은 죽음 뒤에 천국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불교는 열반에 들어 환생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이데올로기 불멸의 약속
바뱅은 불멸의 약속은 이제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고 했다. 영생불멸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자본주의자들인데 이들이 지금 종교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발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삶의 연장을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로비스트들과 자본가들이 모여들고 있다. 투자자들은 로비스트나 자본가뿐 아니라 연구가들도 많은데 특히 연구가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하려고 의욕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오래 살려면 지금 죽지 말고 (신기술이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의 노령화 연구가인 오브리 드 그레이 SENS연구소 소장의 입을 빌려 생명연장 연구가 진행돼 150년에서 200년 살 사람은 이미 태어났다고 했다. 신기술이 계속 나오면 수명 탈출속도도 빨라져 1000살까지 살게 될 날도 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 그런 날이 올 것인가.
바뱅은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한 ‘Singularity Is Near’란 어구를 예로 들면서 “여기서 가깝다(Near)는 것은 30년을 뜻한다”고 했다. 앞으로 30년 뒤인 2045년 쯤이면 인류가 영생을 논할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과학기술 발전을 예상하는 바뱅이지만 스마트폰이 인간관계의 단절까지 초래할 정도로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한국의 현실은 의아하다고 했다.
“한국은 특히 스마트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웃음) 전철이나 길가에서도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선 그렇지 않다. 한국이 특히 그런 현상을 겪는 것 같다.”
다만 그런 단절 속에서 그는 새로운 형태의 연결고리도 찾아냈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고립됐다고 할 수 있으나 전화하면서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 요즘 친구는 옆에 있는 친구뿐 아니라 외국인 친구도 있고 게임을 하면서 만나는 전혀 보지도 못한 사이버 친구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립과 개방의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기억까지 꺼내서 복제할 수 있는 날이 왔다는 바뱅은 “포스트휴먼이 자연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면서 “지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은 미안한 일이다”라고 했다.
“인구가 영생을 하면 지구의 죽음까지 가져올 수도 있고 다른 행성으로 가는 상황까지 생각할 수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과학발전을 통해) 지구의 파괴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히드라와 메두사
히드라는 그리스 신화에선 머리가 아홉 개인 뱀으로 나오나 실제 히드라는 강장동물의 일종으로 잘라도 죽지 않고 부분객체로 계속 증식한다. 메두사 투리톱시스 뉴트리클라(medusa turritopsis nutricula)는 해파리의 일종으로 회춘과 노령화를 반복하며 영생한다.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는 늙지 않고 무한히 재생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