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증시를 뒤흔들고 있는 것은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다. 지난 3월 18일(현지 시각)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8%포인트 폭등한 1.71%로 마감했다. 장중 1.75%를 넘어서기도 한 10년물 금리는 전날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에는 안정세를 보인 것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며 금리발작(Tantrum)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같은 날 미 30년물 국채 금리도 2.45%로 마감하면서 2019년 7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장 금리가 치솟으면서 미래성장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커진 대표적인 기술주들의 주가는 여지없이 내려앉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19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 대비 26.48포인트(0.86%) 내린 3039.53에 마감했다.
채권 금리의 상승은 경기 회복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작용한다. 최근 가파르게 상승세를 이어가던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도 7.1% 내리는 등 국제 유가도 크게 하락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 이날 유가 하락폭은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수준이었다.
▶하루 만에 뒤바뀐 증시 분위기
미 연준의 립서비스 약발 다했나
전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를 통해 “대부분의 연준 위원이 2023년까지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다고 예상했다”며 연준이 현재의 ‘제로(0)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
연준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로 경기 침체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자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1%포인트 인하한 바 있다. 당분간 테이퍼링(긴축 재정)을 시작하거나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는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듯 보였다. 같은 날 다우존스산업평균이 사상 처음으로 3만3000선을 돌파하고, S&P500 지수도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코로나19 사태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경제부문은 아직도 취약하지만, 완만한 경제 회복세에 이어 최근 경제지표와 취업상황 등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경제전망을 큰 폭으로 상향 조정했고, 이에 상응하여 노동시장 여건 개선이 빨라지며 물가목표로의 수렴이 다소 앞당겨질 것이라 예상했다. 다만 높은 물가상승폭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준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2월 예측치(4.2%)를 상회하는 6.5%로 전망했다. 물가상승률은 목표치인 2%를 넘어서는 2.4%가 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내년에는 다시 2%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연준은 장기금리를 억제하기 위해 매달 1200억달러에 달하는 자산 매입도 계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연준은 금리 억제와 경기 회복 지원을 위해 매달 800억달러 상당의 미 국채와 400억달러 상당의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매입하고 있다.
다만 파월 의장은 이러한 의사결정과 데이터가 개별 참여자들의 전망을 취합한 것이며, 연준의 공식적인 전망치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금리인상과 테이퍼링에 관한 가이던스는 실제 경기회복과 데이터의 진전이 가시화될 때까지는 현행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강조했다. 실제 그리고 그러한 기준으로는 ‘노동시장 여건이 연준이 평가하는 완전고용 기준에 부합할 것’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요인이 아닌 동력에 의해 일정 기간 2%를 소폭 상회(Moderately Above 2%)하는 것’ 두 가지를 수차례에 걸쳐 언급했다.
나중혁 하나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이번 3월 FOMC는 미 연준의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이벤트”라며 “이들이 제시한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6.5%) 수치는 최근 빠른 속도로 상향 조정되고 있는 블룸버그의 컨센서스(5.6%)를 가볍게 넘어선 만큼 실제 경기 회복이 눈에 보이는 현 시점에서 미 연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슈퍼 비둘기 스탠스를 유지한 궁극의 립서비스”라고 평가했다.
경제 평가를 제외하고는 지난 1월 성명서와 매우 유사할 뿐더러 최근 변동성이 커진 채권금리나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만큼 립서비스에 그쳤다는 평가다. 그러나 국채 금리 인상에 대한 대응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루 만에 분위기가 뒤바뀐 것이다.
연준이 미국 경제 전망치를 대폭 상향한 것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연준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1.8%에서 2.4%로 높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랠프 액설 미 금리 전략가는 “더 빠른 성장과 더 높은 인플레이션은 결국 더 높은 금리를 뜻한다는 것을 시장이 이해하기 시작했다”며 “연준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느끼면 확장(저금리) 정책을 접고 더 일찍 긴축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노 BNK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경제성장률 상향 조정과 맞물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동반 상승 중”이라며 “기저 효과를 감안하면 2분기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일시적으로 전년 대비 3~4%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2018년 최고치를 넘어서고 있는 등 상승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특히 연준이 조기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그는 “연준이 2023년까지 금리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점도표 중위수를 신뢰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개연성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미국이 계획대로 5월에 모든 성인 대상 백신확보를 완료하고 7월 무렵 집단면역에 도달하게 된다면 경제활동의 재개(Reopening)가 본격화될 요건이 된다”고 전제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그간 활동이 제약되었던 레저·여가, 운송 부문의 고용이 회복되고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실업률이 빠르게 떨어질 가능성이 커 올해 하반기부터 경기순환적 요인에 의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유발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준 은행 SLR 종료 결정
테이퍼링의 신호탄일까?
FOMC 다음날 연준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도입한 은행 자본규제 완화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연준은 3월 말로 종료 예정인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완화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SLR란 총자산 2500억달러 이상인 미 대형은행들이 자기자본을 자산의 3% 이상 유지하도록 의무화한 규제를 말한다. 전체 금융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상위 은행들에는 이 비율이 5% 이상으로 올라간다.
이 제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되어 지난해 3월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금융시장 불안을 더 부채질한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연준은 지난해 4월 1일부터 1년간 SLR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 자산에서 미 국채와 지급준비금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완화한 바 있다. SLR 산정 계산식의 분모가 줄어든 만큼 대형은행들로서는 3% 또는 5%의 비율을 맞추기 쉬워진 것이다.
지난 FOMC에서의 완화적 기조와 상반되는 조치에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은행과 헤지펀드, 외국 중앙은행들이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미 국채와 그 밖의 채권을 대량 매도할 경우 미 국채 금리가 치솟을 개연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완화 조치가 끝날 경우 은행들이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보유 중인 국채를 투매해 미 국채 금리 급등 현상이 빚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채권시장의 기준이 되는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할 경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비롯한 시장 금리가 따라서 오르고, 은행이 대출을 꺼리는 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
다만 연준은 은행들의 현재 자본 상태가 건전한 만큼 SLR와 같은 예외 조치가 종료되더라도 지급준비율을 맞추기 위해 미 국채를 투매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연준은 SLR 종료와 함께 성명을 통해 “일부 대형은행은 1조달러에 이를 정도로 충분한 자본금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새 기준에 맞추기 위해 국채를 내다 팔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경제 성장과 함께 금융시장이 건전성을 유지한 만큼 특별 조치를 없애더라도 시장에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다만 연준은 “경제 성장과 금융 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앞으로 SLR 기준을 어떻게 설계하고 조정할 것인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며 상황에 따라 제도를 손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이번 조치에 대해 시장이 연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의 전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제롬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은 아직 멀었다”고 강조했음에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릭 라이더 글로벌 채권담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이 이르면 6월 FOMC 회의에서 ‘올해 말쯤부터 자산매입을 축소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대신 그에 맞춰 연준이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도입할 수 있다고 봤다.
▶금리 인상·테이퍼링 불확실성 높아
경기민감주·인플레이션에 베팅해볼까
당분간 미 연준은 제로금리를 유지하며 테이퍼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 셈이다. 다만 시장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연준이 금리인상과 긴축재정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점치며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다. 제도적인 불확실성과 별개로 경기회복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의 수혜를 입는 섹터로는 원자재 등을 다루는 기업이나 금리 상승으로 이익이 늘어나는 은행 등이 꼽힌다. 원자재의 경우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가격 상승분을 상품 가격에 전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종은 인플레이션에 따라 매출과 이익이 증가한다. 대표적인 원자재로는 원유와 금속자원이 꼽힌다.
구리, 니켈, 아연, 알루미늄 등과 관련된 금속산업은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수혜주다. 특히 구리는 가장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지표로 활용된다.
이 외에 금융주는 금리 인상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는 투자처로 꼽힌다. 연준을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은 아직까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경기회복속도가 가속화되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은 한층 힘을 얻고 있다. 금융주 가운데 은행주와 보험주는 대표적인 금리 인상 수혜주로 꼽힌다. 은행주의 경우 금리 인상에 따른 이익 증가가 전망되고 있다. 보험주 역시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등 자산운용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수익성이 개선되고 사망보험금과 연금을 지급하기 위한 보증준비금 부담도 줄어들면서 자본확충 여력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한편 중요한 통화정책 이벤트를 통과한 주식시장의 관심이 점차 실적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경기민감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금리 변동성으로 인해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레벨 하락과 지난해 부진했던 경기의 회복에 대한 기저효과가 더해져 실적개선이 뚜렷한 경기민감주에 대한 투자가 유효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시장의 실적과 예상치 상향, 밸류에이션 부담 완화에 따라 가격 조정 시 매수 대응이 유리하다”며 “반도체, 자동차 등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 비중을 유지하는 가운데 실적 상향 중인 민감주 위주의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