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뚫고 올라간 데 이어 역사상 최고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JP모간은 코스피가 2년 내 5000선에 도달할 것이란 깜짝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자본시장 개혁이 진행됨과 동시에 경기가 회복되면 코스피가 지금처럼 우상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가운데 AI(인공지능) 시대 대장주로 불리는 SK하이닉스가 주목을 받는다. SK하이닉스 주가가 역사적 최고점을 찍으며 시가총액 200조원을 돌파했다.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증시에서 200조원을 넘은 2번째 사례로 등극했다. 덕분에 코스피 시장 전체 몸집도 커지고 있다. 지금도 주가가 크게 오른 상황이나 국내외 금융 투자업계에선 SK하이닉스에 대한 눈높이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선 기술력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시총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6월 24일, SK하이닉스의 시가 총액은 202조 7487억원으로 2021년 1월 처음 100조원을 돌파한 이후 약 4년 6개월여 만에 2배가 됐다. 현재 국내 주식 시장에서 200조를 넘어선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다. 주가도 이미 30만원 선을 돌파했다. 2012년 SK그룹 산하 SK텔레콤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 이후 지난 7월 14일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장중 30만 6500원을 찍었다. AI 반도체 수요가 계속될 것이란 기대감이 유입되며 큰손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은 결과로 해석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6월 2일부터 7월 11일까지 약 1조 6000억원의 SK하이닉스 주식을 순매수했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은 현대전자산업이다. 현대전자산업은 1983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1999년 LG반도체를 품었다. 하지만 이후 경영난을 겪게 돼 채권단 관리를 받았다. 당시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꾸고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가 됐다. 2012년 SK그룹이 인수를 하면서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됐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글로벌 반도체 제조업체인 AMD와 함께 업계 최초로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D램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미래엔 전산 처리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선제적으로 개발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비쌌고, 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고객사들이 HBM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세계 최초로 HBM 양산에 돌입한 이후 생성형 AI 서비스가 활발히 사용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HBM3, 2024년 HBM3E 12단을 연달아 출시하며 HBM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엔비디아의 블랙웰 GPU에 5세대 HBM인HBM3E 12단을 독점 공급하며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 주자로 자리잡았다.
SK하이닉스는 현재도 고사양·고품질의 HBM을 개발 중이다. 지난 3월 엔비디아에 세계 최초로 6세대 HBM인 HBM4 12단 시제품을 공급했다. HBM4 12단은 초고성능 AI 연산을 지원하는 최신 D램으로 기존 HBM3E보다 연산 처리 속도와 용량이 대폭 향상됐다. 기술적으로 초당 2테라바이트(TB) 이상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구현해 HBM3E 보다 60% 이상 빨라졌다는 평가를받는다. HBM4는 엔비디아뿐 아니라 구글, AMD, 퀄컴 등의 기업들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AI 모델이 대형화되면서 초고속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만큼 HBM4의 성능 검증과 상용화 속도가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할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HBM이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뒤바꾼 만큼 메모리반도체 업체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D램보다 5배 비싼 HBM 덕에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매출 기준 1위를 기록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 36%, 삼성전자 33.7%,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24.3%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삼성전자가 1위 자리를 내려놓은 것은 33년 만에 처음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는 D램과 낸드플래시를 포괄한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분기 매출 155억 5000만달러를 기록해 공동 1위에 올랐다.
국내외 금융투자업계는 SK하이닉스가 견조한 실적을 낼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면서 주가에 대한 눈높이를 올리고 있다. SK하이닉스에 대한 국내 증권사들의 목표주가는 대부분 30만원을 상회한다. ▲BNK투자증권 35만원 ▲LS증권 36만원 ▲NH투자증권 34만5000원 ▲다올투자증권 35만원 ▲대신증권 30만원 ▲삼성증권 34만원 ▲상상인증권 37만원 ▲신영증권 33만원 ▲신한투자증권 38만원 ▲한화투자증권36만원 ▲현대차증권 32만5000원 ▲흥국증권 35만원 등이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HBM3E 12단 출하도 본격화되는 만큼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현재 개발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내년 HBM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의 경쟁력 우위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AI 시장의 성장성과 주요 공급사들의 보수적인 공급 계획, HBM4 전환에 따른 웨이퍼 사용량 증가 등을 고려한다면 큰 그림에서의 성장을 의심할 필요가 없고 그간 약점이었던 재무구조도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손인준 흥국증권 연구원도 “내년 AI 가속기 및 HBM TAM 규모에 대한 기대감 상승, HBM 시장 점유율 축소에 대한 우려 감소, 국내 증시 재평가(리레이팅) 기조 및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감안해야 한다”며 “하반기 스마트폰, PC 수요에 대한 기대감은 지속해서 약화되는 가운데 AI 서버의 차별적 성장이 지속되며 HBM 시장 점유율이 D램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점차 커질 것”이라고 했다. 손 연구원은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36조 6000억원으로, 시장 기대치(36조 2000억원)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계 투자사들도 SK하이닉스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이다. ▲CLSA증권 35만원 ▲JP모간 36만원 ▲노무라증권 36만원 ▲맥쿼리증권 36만원 ▲번스타인 31만원 등으로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그중 미국계 IB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씨티증권)은 최근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35만원에서 43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목표주가를 40만원 이상으로 제시한 건 국내외 증권사 중 씨티증권이 처음이다. 씨티증권은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계속해서 주도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봤다. AI서버와 GPU 수요가 증가하면서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인 HBM 시장이 구조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프리미엄 D램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중국 AI 딥시크의 등장으로 GDDR 수요가 증가하고 애플 아이폰17에 탑재될 고성능 반도체가 요구되기에 SK하이닉스의 HBM이 여기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에 대한 대부분 증권사들의 투자 의견은 ‘매수’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에선 최근 급격한 주가 상승으로 현시점에서의 진입을 조심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래에셋증권은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주가를 24만 4000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최근 경쟁사의 HBM3E 12단 고객사 납품 지연에 따라 반도체 업종 상승 모멘텀을 독식하며 적정 주가에 예상보다 빠르게 안착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내년 SK하이닉스의 예상 영업이익은 45조 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증익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ROE(자기자본이익률)는 37.6%를 고점으로 내년부터 30% 초반대로 점차 낮아질 것”이라며“현금성 자산이 많아지고 있지만 내년까지는 ROE를 높일 만한 투자 집행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평가 가치 수준이 추가로 상향되기 위해선 HBM4E 이후에서의 점유율이 유지되거나 추가적인 주주환원이 집행될 필요가 있다”며 “SK하이닉스는 순현금 전환을 우선 기조로 삼았는데, 연내 순현금 구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추가 환원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현 코스피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심리는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HBM3E 12단의 엔비디아 납품이 지연된 데다 파운드리의 경우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잠정 매출액은 74조원, 영업이익은 4조 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기대치는 6조 2000억원대로 이보다 한참 못 미친다. 실적 부진의 주 요인은 HBM 물량 관련 일회성 비용 발생, 대중국 AI 반도체 제재에 따른 재고 충당, 예상보다 더딘 파운드리 가동률 개선 등으로 꼽힌다. D램은 판가 상승에도 개선 전 HBM 제품 관련 일회성 비용으로 전분기 감익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3분기 연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80조 2000억원, 7조 9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4분기엔 MX, DS 부문 이익이 감소하면서 전사 영업이익이 재차 위축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시장 수익률을 크게 하회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의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매력이 크고 3분기부터 실적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지난 2분기 실적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경쟁 반도체 회사들 대비 실적이 지나치게 부진하다는 점에서 주가 재평가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다만 국내 증권사는 삼성전자가 여전히 스마트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범용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수’ 접근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아울러 3조 9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따른 수급적 효과와 향후 소각 등을 통한 주주환원을 기대할 수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각 증권사들이 제시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는 ▲NH투자증권 7만 9000원 ▲KB증권 8만 2000원 ▲DB증권 7만 9000원 ▲LS증권 8만 3000원 ▲다올투자증권 7만 1000원 ▲유진투자증권 7만 2000원 ▲삼성증권 7만 4000원 ▲현대차증권 7만 1000원 ▲한화투자증권 7만 9000원 ▲하나증권 8만원 등이다.
[홍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