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더힐 등기 600건 전수조사 해보니… 실거래가 63억~84억 ‘명불허전’ 셋 중 한 가구, 부모·자녀 공동소유
추동훈 기자
입력 : 2019.10.31 14:50:06
수정 : 2019.11.04 14:02:19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한남더힐’의 평균 거래 가격은 얼마일까. 매일경제가 6월 중순 기준 600개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분석한 결과 미분양 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집들의 평균 거래가액은 34억50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30억원이 넘는 집 자체가 희소한 상황에서 한남더힐은 ‘평균’이 30억원을 넘은 것이다. 더구나 이는 600가구 중 133가구를 차지하는 소형 면적 전용 57㎡를 포함시킨 수치다. 소형 면적 133가구를 빼고 대형 500가구만 가지고 계산해 봤을 때는 평균 거래 가격이 43억6400만원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 아파트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숫자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공동주택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된 케이스도 한남더힐에서 나왔다. 올해 1월 한남더힐 전용 244㎡가 84억원에 거래되면서 기존 기록인 2018년 하반기의 81억원(전용 244㎡)을 다시 경신한 것이다. 2015년 이후 한남더힐은 단 한 번도 ‘그해 가장 비싸게 거래된 아파트’ 자리를 다른 곳에 내주지 않았다. 강남구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공동주택인 ‘삼성동 아이파크’ 전용 196㎡ 62억원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높은 가격이다.
2~11위 모두 한남더힐이 휩쓸었다. 전용면적 243.201㎡, 240.23㎡, 240.305㎡ 아파트가 각 73억원(3위), 66억원(5위), 64억5000만원(8위)에 거래되는 등 한남더힐의 실거래가는 전체적으로 63억∼84억원 수준이었다. 단위면적당 가격도 한남더힐이 높았다. 반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195.388㎡)와 성동구 성수동1가 갤러리아 포레(241.93㎡)는 각 62억원(12위), 57억원(13위)에 매매됐다. 뒤이어 삼성동 상지리츠빌카일룸(237.74㎡·53억3000만원)과 강남구 청담동 효성빌라 청담101 B동(226.74㎡·53억원),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7차(245.2㎡·52억원), 갤러리아 포레(241.93㎡·50억원)도 50억원 이상의 실거래가로 뒤를 이었다.
▶자식에 증여·지분거래도 많아
대형 467가구 매매 5년간 20건
특히 1위 아파트의 면적에 미미한 차이(2018년 244.783㎡·2019년 244.749㎡)가 있지만, 집값을 잡기 위한 각종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거래 최고가 한남더힐 아파트의 가격은 1년 사이 3억원 정도 더 올랐다. 거래 시점도 2018년 11월, 2019년 1월로 차이가 3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에 9·13 대책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각 단지의 최고 거래 가격을 공급면적 3.3㎡당 가격으로 계산해보면 한남더힐은 3.3㎡당 9000만원이 넘어 삼성동 아이파크의 8500만원보다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기존 부동산 대책이 고가 아파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하다”며 “고가 아파트의 높은 시세가 다른 집값 상승에 연쇄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정부차원에서도 관심을 갖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옛 단국대 터에 지은 한남더힐은 13만㎡ 규모 부지에 지하 2층~지상 최고 12층, 32개 동, 59~249㎡ 600가구로 조성됐다. 금호산업과 대우건설이 공동 시공해 2011년 1월 입주를 시작했다. 2009년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일반분양이 아닌 민간 임대주택으로 공급했는데 당시 240㎡ 이상 대형 가구는 보증금만 25억원을 웃돌았다. 세대 수가 적어 조용한 데다 일부 가구는 한강조망권이 확보돼 선호도가 높다.
한남더힐은 용산구 전체의 고가 주택 평균가액도 끌어올리고 있다. 부동산 정보 서비스 업체인 직방이 올해 상반기 아파트 거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거래된 아파트 중 거래 가격 기준 상위 100위 아파트 가운데 한남더힐이 1위부터 10위까지를 모두 싹쓸이했다. 이 때문에 상위 100위 아파트를 자치구별로 분류하니 강남구나 서초구보다 용산구의 거래 건당 평균 가격이 훨씬 높았다. 상위 100개 아파트 중 용산구만 추려 평균을 내면 50억1591만원에 달했는데, 강남구는 43억4681만원, 서초구는 40억4974만원이었다.
매입자 연령대는 1950~1960년대생이 가장 많았다. 50~60대가 한남더힐 구입의 대세인 것이다. 공동명의 포함 전체 843명의 소유주 가운데 1950년대생이 241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28.6%)을 차지했고, 그 뒤를 1960년대생(226명, 26.8%)이 바짝 쫓았다. 그다음은 40대에 접어든 1970년대생(174명, 20.6%)이 이었고, 노년층으로 분류되는 1930~1940년대생도 109명이나 돼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1980년대생은 84명으로 전체의 10% 남짓이었고, 20대인 1990년대생은 9명에 불과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한남더힐은 예상외로 거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기존에 이 집을 소유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파는 타인 간 매매거래보다는 대부분 시행사가 보유하고 있던 물량이 소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한남더힐을 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집을 넘긴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한번 소유하면 좀처럼 팔지 않는 ‘안전자산’ ‘부자 아파트’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평가다.
임대가 끝나고 분양이 시작된 2014년 이후 약 5년간 전체 600가구의 78%(467가구)에 해당하는 초대형 면적의 ‘손바뀜’은 20건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거래는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71건이나 이뤄졌고, 작년에도 98건의 거래가 성사됐다. 이는 대부분 거래가 시행사로부터 주택을 사들이면서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한번 한남더힐을 산 사람은 좀처럼 팔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손바뀜 된 경우에도 한남더힐의 특정 동에서 다른 동으로 이사 가는 경우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남더힐을 보유하고 실거주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매매거래를 분석해본 결과 투자수익률은 의외로 낮았다. 대형의 경우 차익이 가구당 평균 5억원 정도였다. 액수 자체는 작지 않지만 거래 금액대가 40억~80억원대로 높은 점과 2016년 이후 작년까지 계속된 서울 부동산 시장의 폭등장을 감안하면 크게 오른 편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한남더힐의 한 입주민은 “투자수익을 남기려고 이곳을 선택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철저히 현재의 실거주, 혹은 미래의 실거주, 증여 등을 염두에 둔 것이 대부분일 것 같다”고 말했다.
손바뀜은 적었지만 부모와 자녀 간 공동 소유나 증여, 지분거래 등은 꽤 됐다. 부부간 공동명의나 부모와 자식 간 공동명의 비중이 전체 중 30%가 넘었다. 일단 부모 명의로 해놓고 자식에게 지분을 증여하거나 아예 소유권을 넘긴 사례도 꽤 됐다. 타인 간 매매거래가 적었던 것과 비교된다. 전용면적 206㎡ 한 가구의 경우 부부와 자녀로 추정되는 3인이 4대4대2의 비율로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가, 1993년생인 어린 자녀 둘에게 부모 중 한 명의 지분을 나눠서 증여했다. 전용면적 233㎡ 한 가구는 부자가 공동 소유했다가 매매 6개월 후 아버지가 자신의 지분 절반을 아들에게 증여한 사례도 있었다.
일반 아파트 거래 시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핵심이지만, 한남더힐에선 다른 세상 얘기였다. 전체 대형 면적 467가구 가운데 담보대출 등 대출을 낀 사례는 절반도 채 안 되는 190가구에 불과했다.
▶대출 낀 집은 190가구 불과
거래가 이뤄진 시점과 등기이전까지 완료한 시점의 격차가 크다는 것도 한남더힐의 특징이었다. 최근 한남더힐 전용 233㎡ 주택을 61억원에 전액 현금으로 매입해 화제가 된 배우 소지섭 씨도 계약은 작년 11월에 했는데, 등기이전은 올해 4월 말에서야 완료했다. 통상 아파트의 경우 계약 체결 2~3개월 후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바로 이전하지만 한남더힐의 경우 워낙 고가이다 보니 계약일과 잔금일의 시차가 큰 점이 한몫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이다.
한남더힐 등기부등본상 기재된 집주인들의 이력도 화려했다. 아파트 명성에 걸맞게 소유자 중엔 재계와 연예계를 대표하는 유명인들이 대거 포진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 중엔 대표적으로 구광모 LG그룹 회장(전용 233㎡)을 비롯해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전용 233㎡) 등이 한남더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그룹의 경우 고동진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2017년 전용 233㎡ 한 채를 43억2000만원에 매입한 데 이어 올해 한 채를 더 구입해 방탄소년단(BTS)의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전세를 줬다. 또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총괄, 김명수 삼성물산 사장 등이 2017년에 나란히 한남더힐에 입주했다. 연예인 중엔 BTS 멤버 ‘진’이 전용 57㎡ 한 채를 작년 18억7000만원에 매입한 뒤 1년여 만에 되팔고 전용 233㎡를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외에도 배우 김태희, 가수 이승철, 배우 안성기 씨 등 유명 연예인들이 실거주 목적으로 한남더힐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면적과 달리 133가구가 마련된 전용 57㎡ 소형의 경우 손바뀜이 40건가량 일어났고 초기 분양가 대비 가격이 2배 이상 오른 19억원 가까이에 거래됐다.
평균 30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한남더힐은 부자들의 인기 상품이지만 한정적 수요로 여전히 공실률 1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기준 등기부등본 600개 중 90가구가량이 거래 기록 없이 코리아신탁이나 무궁화신탁 등 신탁사 소유로 돼 있는 미분양으로 확인됐다. 이후 9월까지 추가로 미분양분이 팔려 나가면서 추가 소진이 됐지만, 등기까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숫자로는 잡히지 않은 케이스가 다수였다.
▶프라이버시 보호되는 단지
연예인·재벌 실거주 많아
고가주택 전문 한 공인중개사는 “고가주택은 가격 특성상 완판까지 통상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면서 “다만 교통 문제나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집값 하락이 우려돼 집이 팔리지 않는 일반적인 공동주택의 미분양 사태와는 그 결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역시 ‘부자들의 리그’에 속하는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 레지던스’도 2017년 분양을 시작해 입주 3년 차를 맞았지만, 전체 223개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주인을 찾고 있다. 해당 단지는 지난해 기준 국세청 기준시가 통계에서 1㎡당 914만4000원으로 전국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평균 판매 금액은 40억원대로 한남더힐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한남더힐은 이보다 훨씬 이른 2011년도 ‘임대 후 분양’ 형태로 입주를 시작해 2014년 본격 분양이 단행돼 시그니엘 레지던스보다는 오래된 주택이다. 또 대형만 있는 시그니엘 레지던스와 달리 전용 59㎡ 중소형 면적 가구 수가 133가구로 전체의 22%나 차지한다.
가격대가 낮은 전용 59㎡ 미분양 물량은 93가구 중 17가구 정도다. 공실 대부분이 대형 가구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남더힐의 미분양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개인 투자용 또는 상징성이 큰 한남더힐을 보유하고자 하는 법인 등 기업 니즈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공실률 문제로 접근할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