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바이오社 뭘 믿고 투자하나… 대주주 지분 및 재무구조부터 꼼꼼히 살펴야, 시총 1조 이상 기업 중 이익 늘어나는 곳 주목
문일호 기자
입력 : 2019.10.30 14:37:29
수정 : 2019.11.02 14:28:21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올해 바이오 업체 주식을 매매한 투자자들의 심경이다. 바이오주는 지난 4월부터 줄줄이 폭락하며 올 상반기 국내 주식시장의 약세를 이끌었다.
지난 6월 에이치엘비 임상 관련 데이터가 오염됐다는 임상 ‘쇼크’에 이어 7월 한미약품 신약 개발 제동, 신라젠 항암제 무용성 평가 실패 등이 잇따라 나오며 하반기까지 투자 심리 부진이 이어졌다.
급전직하하던 바이오주는 뜻밖의 업체 소식에서 불씨가 살아났다. 한때 ‘꺼진 불’로 치부되던 에이치엘비의 신약 물질이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이 종목 주가는 지난 9월 말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급등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호재가 없는 또 다른 신약개발 업체 신라젠의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
눈 딱 감고 롤러코스터를 탄 채 버틴 ‘승객’들이나 다시 올라타려는 투자자들도 앞으로의 바이오주 행보가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임상 발표에 따라 춤추는 바이오주, 탑승할까 말까. 전문가들은 이제 바이오주들의 동반 상승이나 동반 하락 현상이 수그러든 만큼 임상 결과가 중요한 신약 개발업체와 바이오시밀러(복제약)·제약 업체로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약 개발사, 대주주 움직임 잘 살펴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에이치엘비의 주가는 지난 9월 30일 상한가(29.9% 상승)를 기록했다.
이 업체의 항암 신약물질 ‘리보세라닙’이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효능을 입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를 갖고 에이치엘비는 향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신약허가신청(NDA)을 위한 사전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에이치엘비의 상한가에도 코스닥 시총 상위 바이오주는 대거 하락했다.
코스닥 시총 1위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직전 거래일 대비 1.2% 떨어진 가운데 메디톡스(-5.2%), 휴젤(-2.6%), 헬릭스미스(-9.7%), 셀트리온제약(-2.1%), 신라젠(-8.5%) 등 주요 바이오 종목 모두 동반 하락했다.
코스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각각 1.2%, 1.3% 떨어지면서 에이치엘비와 반대 행보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는 0.6% 올랐는데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포함된 코스피 의약품 업종 지수는 1% 하락하며 대조를 이뤘다.
특정 종목의 호재가 곧바로 같은 업종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바이오주 급등 공식’이 깨진 것이다.
반대로 특정 바이오 업체의 악재는 그 종목 주가 하락으로만 이어지면서 바이오 업종의 ‘각자도생’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오 업종 차별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한두 종목의 호재가 있으면 다 같이 움직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 종목의 성공이 저 종목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고, 바이오 산업 전체가 세분화되면서 향후에도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관은 이날 에이치엘비(3억원 순매수)만 샀을 뿐 다른 시총 상위 바이오주들은 대거 내다 판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은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각각 59억원, 15억원의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최근 유의미한 임상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한 헬릭스미스에 대해선 이날 62억원어치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기관들이 한 종목 호재를 근거로 다른 바이오주까지 사는 매매 패턴도 사라진 셈이다. 통상 해당 업종의 향후 주가 전망을 할 때 기준이 되는 데이터는 최근 실적과 향후 실적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주의 상당수가 적자 기업이다. 향후 신약 개발이 성공하면 기업가치는 급등하겠지만 현재 실적 기준으로는 리스크가 큰 ‘도박’에 가깝다는 평가다.
지난 10월 11일 기준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선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바이오주가 모두 15곳이 있다. 코스피 7곳, 코스닥 8곳이다. 이들은 대형 바이오주로 불리지만 이 중에는 적자 기업이 4곳이나 포함돼 있다.
항암 신약 ‘리보세라닙’의 성공에 모든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에이치엘비의 시총은 4조3355억원에 달하지만 이 업체는 작년에 29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전년(2017년·-261억원) 대비 적자 규모가 더 늘었다.
헬릭스미스는 2017년 69억원 적자였는데 작년에 212억원 적자로 1년 새 3배 이상 적자가 증가했다. 올해 실적에 대해선 컨센서스(추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증권사 3곳 이상이 올해 실적에 대한 추정치를 내놔야 하는데 증권사들은 해당 업체의 신약 개발 가능성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단심실증 치료제 ‘유데나필’ 개발 호재가 남아 있는 메지온의 적자도 같은 기간 168억원에서 219억원으로 증가했다. 면역부작용 치료 약물을 연구 개발하는 신약기업 제넥신도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오로지 신약 개발 여부에 따라 향후 실적과 주가가 움직이는 구조다. 문제는 증권가 전문가들이나 투자자들 모두 이들 업체의 임상 관련 발표만 갖고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룩시마
일각에선 신약 개발 업체의 경우 최근 수년 동안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회사 사정에 정통한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의 지분 보유 변동 현황이나 재무 지표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헬릭스미스 최대주주인 김선영 대표 처남의 부인과 딸은 미국 임상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오기 직전인 지난 9월 23일 각각 2500주와 500주를 17만6000원대에 장내 매도했다. 증권가에선 임상 결과가 나쁠 것을 미리 알고 차익 실현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신라젠 문은상 대표는 2017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총 156만2844주를 1주당 평균 8만4815원에 매각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에이치엘비의 최대주주 진양곤 회장은 올 들어 주식 보유 물량 변동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진 회장은 2008년 에이치엘비 인수 이후 단 한 주의 주식도 매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바이오 업체의 재무지표가 중요한 이유는 특정 업체가 신약 물질에 대해 임상 3상까지 끌고 가려면 수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자가 지속돼 자기자본이나 보유 현금을 까먹는 상황이라면 신약 개발 이전에 회사가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헬릭스미스의 부채비율은 지난 6월 말 기준 121.83%다. 자본보다 부채가 더 많아 재무재표상 우량한 지표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사의 경우 실적 개선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 변동이나 부채비율 등 재무지표에 유의해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적 개선되는 바이오 업체 투자 관심
꾸준한 영업이익을 내며 기업가치를 증명한 바이오주 중심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엔 셀트리온으로 대표되는 바이오시밀러 업체와 녹십자 등 전통적인 제약 업체가 포함돼있다.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올해 영업이익 개선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바이오주로는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휴젤, 녹십자, 대웅제약, 한올바이오파마 6곳으로 좁혀진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신약 개발 업체보다 예상 수익률이 낮을 수 있지만 주가가 급락하는 등 투자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올해 실적(에프앤가이드 기준)으로 보면 바이오시밀러 ‘투톱’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셀트리온의 올해 영업이익은 4026억원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작년(3387억원)보다 19%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557억원에서 306억원으로 45% 급감하는 것으로 나온다. 분식회계 논란 등 소송비용이 증가하며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셀트리온은 유럽과 미국시장 출시를 앞둔 의약품 생산 증가에 힘입어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이 종목 목표주가를 27만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11일 기준 셀트리온 주가는 18만1500원이다.
이 증권사 한병화 연구원은 “셀트리온은 자가면역질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SC의 유럽 판매, 유방암·위암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의 미국 판매를 위한 선주문으로 올 3분기 실적이 개선됐을 것”이라며 “바이오시밀러 생산이 증가하는 내년에는 성장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셀트리온은 올 3분기에 매출 2964억원, 영업이익 1056억원을 냈을 것으로 추정됐다. 2018년 3분기보다 매출은 28%, 영업이익은 43% 증가한 것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증가한 것은 2018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램시마SC의 유럽 진출과 트룩시마의 미국 출시를 앞두고 생산물량이 증가한 것이 3분기 실적 증가의 요인이다. 또 글로벌제약사 테바의 편두통 치료제인 ‘아조비’의 위탁생산(CMO) 매출도 증가세다.
내년 이후 실적 전망도 밝다. 항암제인 트룩시마와 허쥬마가 2020년 1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에 판매되면서 생산량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램시마SC의 생산은 2020년에도 지속되고 아조비도 미국에 이어 지난 4월 유럽에서 판매허가를 받아 생산물량을 늘려야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수요 증가에 따른 램시마 생산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램시마는 최근 미국 최대 민간 보험회사 가운데 하나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UNH)의 ‘선호의약품’으로 등재되면서 시장 점유율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연구원은 “신약 개발 바이오기업들이 임상 실패와 기술수출 반환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셀트리온은 개발, 출시와 관련해 계획을 어긴 적이 없다”고 밝혔다.
셀트리온 성장과 함께 바이오시밀러 산업 1위 판매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실적도 덩달아 늘어날 전망으로, 작년에는 252억원 적자였지만 올해는 912억원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보톡스 제조업체 휴젤 역시 실적 개선과 함께 긍정적인 주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휴젤은 보톡스 등 미용 관련 의약품과 바이오화장품 등을 생산한다. 주요 제품인 보톨리눔톡신의 수출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점이 투자 포인트다.
김슬 삼성증권 연구원은 “휴젤은 국내에서 매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고 수출실적도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1분기 보툴리눔톡신 수출 감소는 리스크 관리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일시적 악재”라고 설명했다. 휴젤은 중국 정부의 규제로 1분기 보톡스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절반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2분기부터 대만으로 보툴리눔톡신을 수출하기 시작하고 태국 수출도 확대되면서 전체 수출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휴젤의 풍부한 현금성자산(5000억원)을 근거로 외형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휴젤의 영업이익은 675억원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작년(602억원)보다 12.1% 증가한 수치다. 녹십자 역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7.5% 증가한 590억원으로 예상된다.
내수 혈액제제와 백신제제사업부에서 원가율이 낮아지면서 실적 개선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혜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녹십자의 3분기 실적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영업가치 기준 이익지표인 선행 12개월 세전영업이익(EBIT)에 연구개발(R&D)비용을 더한 지표가 기존보다 6% 상향된 점을 반영해 목표주가를 높였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지표 개선 이유로는 내수 혈액제제부문에서 낮은 단가의 혈장원료가 쓰이는 등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신제제부문에서는 독감백신의 평균 판매단가(ASP)가 높아져 실적에 보탬이 되고 있다.
향후 중국 시장에서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최근 녹십자가 품목허가를 신청한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를 우선 심사대상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헌터라제가 내년 상반기에 ‘퍼스트 무버’ 제품으로서 허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웅제약의 올해 영업이익은 녹십자와 같은 590억원으로 추정된다. 다만 작년(246억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이 업체의 보톡스 제제인 ‘나보타’는 미국, 유럽 등 수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