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는 연간 2000만원 한도로 5년간 최대 1억원을 투자했을 때 나오는 소득 200만원까지 비과세, 200만원을 넘는 금액은 9.9% 분리과세로 세금을 깎아주는 ‘절세’ 계좌다. 1인당 한 계좌만 틀 수 있다. 고객이 직접 투자할 상품을 고르는 ‘신탁형’과 금융회사가 알아서 좋은 상품을 골라서 투자해 달라고 맡기는 ‘일임형’ 두 가지 중 선택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성적표는 금융회사들이 알아서 굴린 일임형 ISA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이다. 금융사들이 고객 돈을 얼마나 잘 굴렸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증권사 일임형 ISA에 가입했던 투자자들이 은행 상품을 선택한 투자자들에 비해 지난 3개월간 2배 이상 수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ISA 모델포트폴리오(MP) 수익률 상위 30개 명단에 은행권 MP 1개를 제외하곤 모두 증권사 상품이 올랐다. 이 때문에 현재 ISA 계좌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는 은행 고객 중 일부가 증권사로 이동할지도 관심이다.
특히 고위험 MP 상품일수록 증권사와 은행 간 수익률 차이가 컸다. 증권사들이 은행보다 자산을 적극적으로 잘 굴렸다는 얘기다. 국내외 주식형펀드, ELS, 파생결합증권 같은 원금 손실 위험이 크지만 그만큼 기대수익도 높은 위험한 상품에 베팅해 수익을 냈다.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3%가 넘는 수익률을 낸 곳은 메리츠종금증권이었다. 초고위험 유형에서 메리츠 ISA 고수익지향형B가 3.58%, 고위험 유형에서 메리츠 ISA 성장지향형B가 3.18%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박희한 메리츠종금증권 영업추진팀 차장은 “베트남 등 이머징마켓에 최고 30%까지 배분한 전략이 수익률에 도움이 됐다”며 “7월부터는 글로벌리츠, 중국, 글로벌자산배분 펀드를 새롭게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HMC투자증권 등 증권사가 내놓은 10개 MP가 2%대 수익률을 기록했다. 회사별 평균 수익률은 메리츠종금증권 2.37%, HMC투자증권 2.2%. NH투자증권 1.9%, 유안타증권 1.59%, SK증권 1.58% 순으로 나타났다. 대형 증권사 중에서는 NH투자증권의 평균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윤영준 NH투자증권 상품기획부 이사는 “원유 상장지수펀드(ETF)를 편입해 적절한 시기에 차익을 실현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전부터 유럽 펀드 비중을 줄인 것이 꾸준한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윤 이사는 “MP 구성의 정교함이나 자산 매매 타이밍을 결정하는 데 있어 증권사가 은행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면서 “ISA 도입 2년 전부터 전문 인력을 충원하고 리서치를 강화해왔다”고 덧붙였다.
위험도가 높은 MP일수록 금융회사 간 수익률 차이가 최대 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베팅에 실패하면 그만큼 손실도 커질 수 있다. 초고위험 부문에서 우리 일임형 국내우량주 ISA(공격형)·대신 ISA 국내형 초고위험랩이 -1.38%, 고위험 부문에서는 신한은행 일임형 ISA MP(고위험 A)가 -1.46%, 대신 ISA 국내형 고위험랩이 -1.49%로 가장 큰 손실을 봤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브렉시트 결정으로 북미·유럽 펀드가 급락하면서 7월 11일 기준 3개월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지만 최근 선진국 증시가 반등해 손실분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유형별로는 중위험 MP 수익률이 0.63%로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삼성전자 주도의 강세장이 펼쳐지면서 중위험 MP가 편입한 배당주 펀드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상장지수펀드(ETF)가 수익률 좌우
상장지수펀드(ETF)를 담은 증권사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모델 포트폴리오(MP)가 일반 펀드를 담은 MP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일반 펀드보다 장중 매매가 자유롭고 보수도 저렴한 ETF가 ISA 수익률을 높이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금융회사 중에서 MP 평균 수익률이 가장 높은 NH투자증권의 초고위험 QV공격A형이 1.85%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브렉시트 충격에도 원유 ETF가 20% 상승하면서 선방할 수 있었다.
박득현 NH투자증권 랩운용부장은 “원유 ETF를 적시에 매매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며 “ETF는 일반 펀드보다 환매가 자유롭고 보수도 싸서 수익률을 관리하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위험도별로 펀드와 ETF를 섞은 멀티형, 펀드만 담은 펀드형을 각각 운용하고 있는데 멀티형의 수익률이 펀드형보다 1%포인트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같은 고위험군에서 멀티형 MP의 3개월 수익률이 1.16%로 펀드형(0.72%)보다 0.44%포인트 높았다. 중위험군에서도 멀티형 MP 수익률이 1.26%로 펀드형(0.45%)보다 0.81%포인트 높았다.
신긍호 한국투자증권 고객자산운용부 상무는 “일반 해외 펀드는 환매하고 새로 매수하는 데 기간이 오래 걸려 적절한 타이밍에 매매하기 어려운 반면 국내에 상장된 해외 ETF는 장중 바로 매매할 수 있어 리스크 관리에 유리했다”며 “국내 펀드도 최근 삼성전자 독주로 액티브 펀드들의 성과가 부진해 상대적으로 ETF 성과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HMC투자증권도 선진국 A1형과 신흥국 대안투자 B1형에 각각 60%와 100% ETF를 담아 2%가 넘는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ETF로만 운용되는 B1형의 총보수는 0.5%로 다른 MP의 3분의 1 수준이다. 권지홍 HMC투자증권 이사는 “꼭 트레이딩을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ETF로 자산 배분이 가능한 데다 보수까지 저렴해서 고객이 실질적인 수익률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신한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 ISA 계좌는 ETF 거래가 불가능하다. 신한은행 ISA만 그룹 계열사인 신한금융투자와의 연동 계좌를 통해 ETF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ETF는 상장증권으로 증권사 계좌로만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삼성증권과 제휴를 통해 오는 4분기부터 ETF를 운용할 예정이다.
▶60대 이상이 ISA에 돈 많이 맡겨
지난 7월 중순 금융위 집계 결과 ISA 총 잔고는 2조 5000억원 수준인데 은행 계좌가 70%에 달했다. 전체 계좌의 90% 가까이가 신탁형이다. 일임형 상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도가 부족한 데다 창구에서도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는 탓으로 분석된다.
ISA는 펀드 랩어카운트(이하 펀드랩)의 일종이다. 펀드랩은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맞춰 금융회사가 알아서 여러 개의 펀드에 투자하고 주기적인 펀드 교체(리밸런싱)를 통해 자산 관리하는 계좌를 말한다.
그동안 일반 증권사들이 펀드랩 상품을 내놨지만 최소 가입금액이 수천만원 이상으로 가입문턱이 높아 일반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웠다. ISA는 연간 2000만원 한도에서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어 일반인들도 소액·적립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정부가 위험도 유형별로 편입할 수 있는 상품 비중을 정해놨기 때문에 철저한 자산배분 원칙을 지켜서 운용된다. 예를 들어 한 모델 포트폴리오에서 같은 상품을 자산 총액의 30%를 초과해 편입할 수 없게 돼 있다. 신긍호 한국투자증권 고객자산운용부 상무는 “ISA는 특정 상품에 많이 투자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대규모 손실이 날 위험이 적다”며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ISA 계좌 절반 이상의 잔고가 1만원 이하일 정도로 아직 ISA는 실질적인 재산형성 상품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제도 시행 초기 판촉을 위해 신규 계좌를 다량 만들었지만 실제로 운용되는 자산은 얼마 안 된다는 의미다. 특이한 점은 연령이 높을수록 ISA계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대별로 ISA 활용 현황을 살펴봤을 때 연령별 계좌별 평균 잔고는 60대가 250만원 수준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이 50대(151만원), 40대(96만원) 순이었다. 연령별 가입자 수는 40대가 70만 좌로 가장 많았으며, 30대(65만), 50대(49만) 순이었다. ISA의 가입 자격이 소득이 있는 자로 제한돼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경제활동 인구가 많은 30~50대가 가장 많이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ISA 평균 잔고는 정작 은퇴 인구가 많은 60대 이상이 가장 많았다. 은퇴 이후를 대비하려는 수요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30~40대의 평균 잔고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소득 대비 교육비 등 지출 규모가 커서 저축 여력이 낮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은퇴 이후 소득이 없는 노년층도 ISA에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입기간, 모델 포트폴리오
수수료 따져봐야
이번에 공개된 수익률은 고객에게 약속한 모델 포트폴리오의 수익률로, 실제 가입한 고객의 수익률과 일부 차이가 날 수 있다. 가입 시기나 추가 적립 여부 등에 따라 개별 고객의 수익률은 각자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델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해당 은행이나 증권사의 자산 관리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금융사들은 수익률 관리를 위해 3개월에 최소 한 번 이상 투자 상품을 변경하게 된다. 금융회사의 자산관리능력을 판단하는 데 3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이긴 하다. 예상치 못한 시장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수익률이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수익률이 안 좋다면 자산 재분배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ISA에 가입하기 전에 인터넷 홈페이지 ‘ISA 다모아(isa.kofia.or.kr)’에서 금융회사별 모델 포트폴리오와 수수료, 수익률을 꼼꼼히 따져보자. 5년간 맡겨놨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면 절세는커녕 원금조차 보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느 금융회사에서 ISA 계좌를 틀지 결정했다면 언제 얼마나 가입하는 게 유리할지 판단해야 한다. ISA는 3년 시한부 상품으로 2018년 12월 31일까지만 판매한다. 한번 가입하면 5년간 유지해야 하는데, 중도에 인출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5년간 묶여도 상관없는 돈을 ISA로 굴리는 게 유리하다.
또 이왕이면 금융회사가 모델 포트폴리오를 언제 재조정할지 시기를 가늠해 편입 상품을 바꾸는 타이밍에 가입하는 게 보다 유리하다. 금융사들은 매월 혹은 분기별로 정기 회의를 통해 최적의 상품 배분안을 만들고, 기존 투자 상품을 교체한다. 전문적인 용어로 ‘리밸런싱(자산재조정)’이라고 한다. 고객 입장에서 예측하기 쉽지는 않지만, 리밸런싱이 일어날 때 가입하거나 추가 증액하는 게 가장 유리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ISA는 본인이 원하면 자유롭게 다른 금융사로 계좌를 갈아탈 수 있다. ISA 다모아 비교공시 시스템에서 금융기관별 ISA 상품의 수수료와 수익률을 비교해본 후 자유롭게 계좌를 옮길 수 있다. 본인이 가입한 ISA의 수익률이 불만족스럽다면 바꾸고 싶은 금융사를 찾아가 계좌이동 신청을 하면 된다. 최근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계좌이동제 시행에 발맞춰 경품, 특판 이벤트를 펼치고 있으니 참조하면 좋겠다.
9월부터는 온라인으로 더 간편하게 ISA 갈아타기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ISA를 이동하더라도 기존 계좌에 부여된 세제혜택은 그대로 유지되며, 가입기간도 기존 계약 체결일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다만 계좌를 갈아탈 때는 기존 계좌가 투자하던 상품을 파는 과정에서 환매수수료 같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예적금은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지하면 약속한 이율보다 낮은 이율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