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사모펀드 전성시대다. 불특정 다수가 투자하는 공모펀드는 수년 째 제자리걸음 중이지만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비공개로 운용하는 사모펀드 시장은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8일 기준 사모펀드 설정액은 161조원으로 작년 초에 비해 32% 증가했다. 반면 공모펀드 설정액은 2009년 말 224조원에서 현재 202조원으로 5년여 만에 10% 가까이 감소했다.
국내 자산가들로부터 사모펀드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공모펀드와 달리 주식 채권 외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굴려주는 전문가 ‘급’이 다르다는 점도 인기요인 중 하나다. 브레인자산운용의 박건영 대표,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의 구재상 대표, 신영자산운용의 허남권 부사장이 직접 운용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모집한 사모펀드들은 순식간에 투자자 49명이 채워지며 완판된 바 있다. 가치주, 배당주 펀드 일색인 공모펀드 시장과 달리 차별화된 투자전략으로 무장한 ‘희귀펀드’들이 많다는 점도 사모펀드의 매력 중 하나다.
공모펀드 시장이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이라면 사모펀드 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롱테일 시장으로 묘사된다.
절대수익 추구형 상품에 관심
‘대세 상승장이냐 박스권으로의 회귀냐?’
코스피 방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높고 시장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확대된 이 시점에 국내 자산가들은 어떤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있을까. 시장 관계자들은 “증시 방향성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고 보는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절대수익 추구형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답했다. 특히 개별 펀드 성과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사채(DLB)가 많이 발행됐다.
국내 롱숏펀드나 해외 하이일드채권형 펀드에 직접 가입한 투자자라면 시장 상황이나 운용 성과에 따라 이익을 볼 수도 투자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사모 DLB 상품에 가입하면 투자 원금은 보장받으면서도 펀드 운용 성과에 따라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지난 7월 삼성증권은 프랭클린템플턴 유로 하이일드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사모 DLB를 모집했는데 한 달 만에 12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하이일드 채권 고점 논란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펀드가 손실을 내더라도 투자자들은 최소한 원금을 건질 수 있고 펀드 운용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그에 비례하는 수익을 지급받는 구조다. 최근 신한금융투자가 판매한 사모 롱숏펀드 ELB는 연 평균 7% 이상, 투자시점에 따라 연 17%에 달하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7월 중국신용연계 사모 파생결합증권(DLS)을 5회에 걸쳐 사모상품으로 설정하고 약 325억원을 모집했다. 중국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DLS는 만기 3개월의 짧은 투자기간에도 연 3~3.25% 확정금리를 지급한다. 다만 중국 정부에 부도, 채무불이행 등 신용사건이 발생할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중국 정부에 신용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다”며 “투자위험 대비 우수한 수익률에 투자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몽골은행에 투자해 연 6% 약정금리를 주는 사모펀드도 절찬리에 판매됐다.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몽골 무역개발은행(TDB)이 달러화로 발행한 6개월 만기 양도성예금증서(CD)에 투자하는 구조로 펀드 운용은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이 맡고 있다. 국내 증권사 환매조건부채권(RP) 특판금리가 3~4%대이고 A등급 회사채 금리도 4%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조건이다.
외국인 매수세가 지속되고 하반기 코스피의 박스권 돌파에 대한 긍정적 전망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사모 주식형 펀드에 대한 자산가들의 문의가 많아졌다. 환매 요청이 지속되며 올 들어 6조8624억원이 빠져나간 공모 주식형 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로는 8883억원이 더 들어왔다. 주식형 펀드가 사모로 설정되면 운용상 제약이 적고 투자자 위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정부 경기부양책에 발맞춰 국내 대형주나 배당주에 투자하는 펀드들이 많이 설정되는 추세다.
‘미래에셋배당프리미엄50 사모펀드’는 배당수익과 커버드콜 전략(주식과 같은 기초자산을 보유하는 동시에 현재 주가보다 약간 높은 행사가격의 콜옵션을 매도하는 기법)을 통해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데다 절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자산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배구조 이슈에 따른 변화가 예상되는 종목에 미리 투자해 차익을 노리는 펀드들도 인기가 높다.
공모주 우선배정 및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도 국내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전체 펀드 자산 중 채권투자 비중을 60% 이상으로 하되 그중 신용등급 BBB+ 이하 채권에 30% 이상 투자하는 상품이다.
공모주 청약물량의 10%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고 투자자는 5000만원 한도 내에서 분리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공모펀드 시장에선 찾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의 사모 상품들도 눈에 띈다.
메자닌(Mezzanine) 펀드는 상장기업이 발생하는 전환사채 교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주식과 채권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되, 기대 수익률은 채권투자보다 높고 투자 위험은 주식보다 낮다는 것이 특징이다. 메자닌 투자자는 발행기업 주가가 낮을 경우 채권 고정금리에 해당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주가 상승 시에는 권리 행사에 따른 자본 차익을 받을 수 있다.
우선주 차익거래 사모펀드는 연 7% 내외 수익을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다. 우선주와 보통주 가격 차이를 활용한 차익거래 전략을 통해 안정적 수익을 얻는 것이 목표다. 펀드 순자산 50% 내외 수준까지 공모주 투자가 가능해 추가 수익 기회도 있는 데다 이익 대부분이 주식매매나 선물매매를 통해 발생함으로써 절세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시장 방향성과 관계없이 수익을 내는 시스템 트레이딩을 활용한 펀드들도 인기다.
‘KTB시스템트레이딩 사모펀드(주식혼합-파생)’는 쿼크투자자문의 알고리즘 시스템을 활용해 주가지수 선물 방향성을 예측하고 차익을 노리는 상품이다. 고배당주식과 채권 매매로 배당 및 이자수익을 얻는 전략도 사용한다.
사모펀드 어떻게 가입할까?
사모펀드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평소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자신의 투자 성향이나 원하는 상품을 미리 귀띔해 놓으면 투자기회를 얻기 쉽다. 사모펀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상품에 대한 광고나 마케팅을 할 수 없는 만큼 은행이나 증권사 PB센터를 통해 고객 자금을 모으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개별 금융사 별로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5억~10억원 이상 금융자산이 있어야 PB센터 고객이 될 수 있는 만큼 사모펀드 주 가입대상자는 자산가들이다.
사모펀드 설정을 위해 자금을 모을 당시 최소 투자금액을 1억원 이상으로 정하는 경우도 많아 소액 투자자들은 가입하기 쉽지 않다. 다만 49인의 투자자 한도가 차지 않을 경우 예외적으로 소액 투자자들을 참여시키는 일도 있다. 펀드 수수료는 공모펀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헤지펀드 등 고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은 성공 보수까지 적용해 수수료가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있지만 수익자가 소수로 한정되다 보니 공모펀드보다 낮을 때도 많다. 환매제한 등 조건도 공모펀드에 비해 자유로운 상품이 많고 시장상황에 따라 펀드 운용계획을 수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