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파트도 예뻐야 한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건설업계가 최근 ‘디자이너스 아파트(Designer’s Apartment, 유명 디자이너가 아파트 설계 및 디자인에 참여한 아파트)’에 주목하고 있다. IS동서, 한라건설, 포스코건설이 디자이너스 아파트로 설계한 분양물량을 모두 판매하며 ‘완판 아파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들 3개사들이 아파트 설계 초기부터 해외 유명 건축사들과 협업을 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거장의 손을 거치면서 비슷비슷한 아파트가 아닌, 독창적인 디자인이 가미된 아름답고 특별한 아파트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디자이너를 통해 완판에 성공한 아파트는 의외로 상당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대박이 났던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불리는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역시 해외 디자이너의 손길을 담아 분양에 성공했다.
거장의 손길을 담아 완판된 후에도 지역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있는 디자이너스 아파트들. 건설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디자이너스 아파트를 살펴봤다.
(위)충북 청주 용정 한라비발디, (아래)현대건설 목동 힐스테이트
디자인 거장과 손잡자 ‘완판’
올 상반기에 건설업계 최대의 이슈 메이커는 IS동서였다. 시공능력 순위 80위권인 이 회사가 부산에서 분양에 나선 1500여 가구의 주상복합 아파트 ‘더블유(W)’가 무려 3.5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완판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IS동서의 더블유가 이처럼 높은 성공을 거둔 배경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해외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지목했다. IS동서는 더블유의 설계에 앞서 국제 설계공모전을 개최했는데,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프랑스 건축협회장인 ‘로랑 살로몽(Laurent Salomon)’ 교수가 수상하며 일을 맡게 됐다.
살로몽 교수는 부산 용호동 더블유를 일반적인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와는 다르게 거실 정면의 너비를 측면보다 길게 설계해서 탁 특인 조망을 강조했다. 부산 앞바다를 거실에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IS동서 더블유는 대형평형 위주로 구성된 1500여 가구 대규모 단지임에도 분양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바다 조망이 가능하고, 실제보다 넓어 보이는 설계, 그리고 거장의 명성까지 더해지면서 벌써부터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6월 입주를 시작한 충북 청주시 용정동의 ‘한라비발디’ 역시 IS동서와 유사하게 분양에 성공했다. 한라건설은 용정 한라비발디의 디자인을 미국 ‘데스테파노앤드파트너 사(Destefano&Partners)’와 협력해 완공했다. 기존 아파트 담벼락과는 다른 입체적인 돌담 디자인을 적용했고, 녹지율도 50% 이상으로 끌어올려 쾌적함을 더했다.
2011년 한화건설이 서울 뚝섬 서울숲 앞에 선보인 ‘갤러리아포레’ 역시 거장의 손길을 통해 완판 아파트로 거듭났다. 이 아파트 인테리어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참여해 분양 당시 3.3㎡당 4300만~4400만원대라는 최고 분양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해외 디자이너들의 설계가 적용된 곳은 외관부터 차별화되기 때문에 인지도가 상승하고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며 “부동산 호황기에는 고급화의 일환으로 해외 디자인 적용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입주민들의 주거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선진 설계를 차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단지 전체를 디자인하는 아이파크
일회성이 아닌 연속적으로 같은 건축가에게 디자인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이미 완공된 단지와 통일성을 가져갈 수 있으면서 랜드마크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수원 권선동 일대에 완공한 수원 아이파크시티가 대표적이다.
현대산업개발은 2009년부터 수원 아이파크시티 1차 분양 당시부터 세계적인 건축가인 네덜란드의 ‘벤 판 베르켈(Ben van Berkel)’과 손을 잡았다. 그는 과거 갤러리아백화점의 외관디자인을 맡아 한국에 이름을 알렸다. 베르켈이 설계한 아이파크시티는 기존의 아파트 디자인과는 완전히 다른 더블 스킨 공법을 적용해 독특하고 새로운 아파트를 선보였다. 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시티 4차의 설계도 그에게 맡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 아니다. 부산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해운대아이파크는 미국 그라운드제로의 ‘프리덤타워’ 디자인과 설계를 담당한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했으며, 대구 달서구 유천동 월배택지지구 내의 월배 아이파크 1, 2차 디자인은 세계적인 건축 그룹 ‘UN studio’가 맡았다. UN studio는 독일 벤츠전시장, 대만 스타플레이스백화점, 일본 루이비통 플래그십스토어 등을 설계했다. 시공능력 순위 1위의 현대건설 역시 프랑스 시각디자이너 ‘장 필립 랑클로(Jean Philippe Lenclos)’와 손을 잡았다. 랑클로는 현대건설이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분양 예정인 ‘목동 힐스테이트’에 다양한 패턴을 적용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이미 분양 중인 경남 창원의 ‘창원 감계 힐스테이트 4차’에는 컬러테라피 디자인을 적용하며, 평택 안중읍 ‘송담 힐스테이트’의 외관에는 ‘송담(소나무 숲 속 연못)’의 물결 패턴을 설계에 반영했다.
포스코건설도 세계적인 명성의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인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와 협업을 하고 있다. 그가 참여한 경기 안양시 동안구 1500여 가구의 ‘평촌 더샵 센트럴시티(지난해 11월 분양)’가 분양 20여 일 만에 완판됐으며, 경기 하남미사지구의 ‘미사강변도시 더샵 리버포레’ 역시 그가 디자인을 맡는다.
IS동서 부산 용호동 더블유
외관 디자인 넘어 조경에서 벽지까지 다양
건물 전체가 아닌 조경과 인테리어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삼성물산이 분양을 준비 중인 ‘래미안용산’과 화성개발의 ‘비산화성파크드림’이 대표적이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용산 전면 3구역에서 분양 예정인 ‘래미안 용산’은 주변에 용산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이 용산공원(약 242만6866㎡) 설계에 세계적인 조경가인 네덜란드의 ‘아드리안 구즈(Adriaan Geuze)’가 참여한다. 한국 최초 국가공원인 용산공원은 국제 공모 심사결과를 통해 진행돼 향후 일대 지역 가치를 한껏 높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화성개발이 경기 안양시에 공급하는 ‘비산화성파크드림’에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명성이 높은 ‘베라 왕(Vera Wang)’이 직접 디자인한 고급벽지를 사용한다. 유명한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의 작품이 사용된 만큼 수요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청약률 100%를 기록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디자이너스 아파트는 삶의 공간이자 예술작품으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 단지 가치까지 제고할 수 있어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디자이너스 아파트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 주의도 당부했다. 건설사마다 디자이너스 아파트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프리미엄이 유지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디자이너스 아파트는 부동산시장의 한 트렌드로 보인다”며 “트렌드는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 측면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