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이 사라진다?’
시중에서 ‘신사임당’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5만원권이 한국은행에서 나가면 반쯤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5만원권 환수율은 전년보다 13.1% 포인트 떨어진 48.6%를 기록했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1년 59.7%, 2012년 61.7%를 기록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확 떨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재미교포들이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부터 첫 시행되는 미국의 해외금융계좌납세협력법(FATCA; 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때문이다.
FATCA는 해외에 일정액 이상 금융자산을 예치한 미국 시민권자, 영주권자, 주재원, 장기체류자 등의 계좌내역을 금융회사가 신고하는 제도다.
개인의 경우 5만달러가 넘거나 연중 최고액이 7억5000만달러를 넘을 경우 신고대상이 된다. 저축성보험의 경우 25만달러를 초과하는 상품을 가입했을 때 신고 대상이 된다. 이를 제공하지 않는 금융회사는 미국 내 원천소득의 30%를 징수당하기 때문에 불성실 신고 시 해외 영업에 큰 타격을 볼 수 있다.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에 따라 국세청은 금융회사로부터 보고받은 금융계좌 정보를 내년부터 미국 국세청에 제공하게 된다. 역외탈세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이 제도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해외금융계좌신고(FBAR;Report of Foreign Bank and Financial Accounts) 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FBAR은 미국에 납세의무가 있는 사람들의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1만달러 이상 해외계좌를 신고해야 하는 제도다.
미국 시민권자, 영주권자 뿐 아니라 일정 기준에 따라 최근 3년간 183일 이상 미국에 체류한 사람도 지켜야 한다. 사실 이 제도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주재원 등으로 근무하는 사람은 신고대상이라는 것조차 모를 때가 많다. 교포 중에는 과거 신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 신고를 차일피일 미룬 사례도 상당수다.
이렇게 FBAR 제도를 멀리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꼼짝없이 금융 거래 정보가 드러나게 생겼다. FBAR가 납세자 개인이 신고하는 제도라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었지만 FATCA는 금융회사들이 국세청을 통해 관련 자료를 일괄적으로 넘기기 때문이다. 보고대상에는 이자, 배당, 기타 원천소득까지 포함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FBAR 규정에 따르면 국외 계좌 미신고분이 발견되면 가산세가 부과된다. 부주의나 태만에 대해서는 500달러가 부과되고, 고의가 아닐 때는 최고 1만달러가 부과된다. 고의일 때는 최고 10만달러 또는 미신고 금액 50% 중 큰 금액이 부과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상 책임까지 지게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계좌를 해지하고 아예 현금으로 대여금고에 재산을 보관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 자산가들은 1kg짜리 골드바를 사들이고 있고, 달러화 엔화 등 외화를 모으고 있다. 산업은행, 우체국 등에 예금하면 보고 대상에서 빠진다는 헛소문이 돌아 고액 예금주들이 우왕좌왕하는 일도 벌어졌다.
아예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3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최근 귀국한 사업가 정 모 씨(72)는 “나이 들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서 귀국했는데 FATCA 제도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며 “한국 내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금 회피를 위해 악의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경우에는 국적포기세(Expatriation Tax)가 부과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아래의 사례들은 FBAR 제도 위반으로 문제가 된 경우들이다.
#1 199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A씨. 당시 한국 떡을 만드는 가게에 취직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기에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3년간 열심히 일하여 영주권을 받았다. 그 후 뉴저지에 세탁소를 열었는데 하루 열 시간씩 휴일도 없이 일해서 최근에는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깜짝 놀랄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안정되면 가져오려고 한국에 남겨둔 금융계좌가 문제라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세무수정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이미 가산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 대기업 협력사에 근무하던 2000년 미국 자회사로 발령이 난 B씨. 5년간 근무할 예정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아파트를 전세 놓고 전세보증금을 은행계좌에 입금시켜놓고 미국을 왔다. 이자수익으로 재산세 등을 충당할 목적이었다. 미국에서 한국 내 전세보증금은 자기 자신의 돈이 아니므로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신고로 페널티를 물게 됐다.
#3 대기업 1차 협력업체로 2006년 대기업과 함께 미국에 진출한 중소기업 대표인 C 씨. 투자자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업무를 보던 C씨는 사업규모가 커지자 아예 미국 현지법인 CEO로 취임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세무신고를 했으나 미 국세청에 한국에 있는 금융계좌 신고를 하지 않아 심각한 페널티가 부과될 예정이라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