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의 일이다. 결혼 5년차로 두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가장이 전화를 했다. 신혼 초부터 재정 상담을 하며 인연을 맺었는데 전세금을 너무 많이 올려 달란다며 펀드나 저축통장을 깨야 할지, 아니면 대출을 받는 게 좋은지 알려달라고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의 자산을 보니 금융위기 때 가입한 펀드는 수익이 났고, 자녀들을 위한 변액유니버셜 보험과 노후 대비 변액연금도 있었다. 그래서 대출 받지 말고 펀드를 해지해 전세금을 올려주라고 했다. 그는 3년에서 5년 정도 기간을 잡고 투자한 펀드가 예상보다 수익이 많이 났지만 지수 2500을 내다보는 증권사 리포트들이 잇따라 나오자 망설였던 것이다. 이후 유럽 재정위기와 경기침체로 주가가 떨어졌으니 그로선 도움이 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시적 도움보다 재무설계의 원칙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무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다. 철학적 이야기 같지만 자산에는 현금이나 부동산, 주식, 채권 같은 외적인 것 외에 신뢰감이나 끈기, 성실성, 에너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자산도 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라이프 플래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킨더는 돈이 주는 고통의 본질은 어떤 사람보다 부자여야 한다거나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들이 유학 보내니 나도 그래야 하고 남들이 10억원 정도는 있어야 노후가 풍족하다고 하니 나도 10억원을 모아야 한다는 식의 재무 목표는 스스로에게 고통만 준다는 것이다.
자녀를 어떻게 교육하든, 어떤 집을 사든, 또 언제 은퇴하든 시기에만 차이가 있을 뿐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라이프사이클에 맞추어 재무 목표를 세우는데 그 이유는 우선 돈을 모을 수 있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간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게 추구하는 기대수익률도 나온다.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플랜이나 은퇴·상속 플랜 등을 짜게 되고 그것에 맞게 전략적 자산배분도 할 수 있다.
전략적 자산배분에선 기간이 중요한데 그 기간에 따라 우리가 대비해야 할 위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년 안에 결혼자금이 필요하다면 수익성보다는 결혼할 때 쓸 수 있어야 하고, 더불어 안정성도 갖춰야 하므로 적금이나 CMA, 우량채권 등이 적합하다.
3년에서 5년에 걸쳐 주택마련을 위해 돈을 모은다면 주식이나 주식 관련 상품 등에 투자할 수 있는데 이때 위험은 변동성이다. 적립식 투자라면 주식의 저가 매입을 진행함으로써 변동성을 상쇄시킬 수 있다. 은퇴자금이나 자녀 교육자금 같은 투자의 위험은 인플레이션이다. 20년 전 점심값을 생각한다면 장기 투자에서는 변동성을 겁내기보다 인플레이션을 넘어설 수익성을 추구하는 게 옳다. 이런 목적이라면 수수료와 세금 등을 고려해 변액보험을 추천할 수 있다.
이처럼 기간을 통한 전략적 자산배분을 하고 장기적으로 재무 목표를 세워야 매일 쏟아져 나오는 경제뉴스나 자산가격 급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요즘 내비게이션 덕에 길치인 나도 목적지까지 쉽게 찾아간다. 내비게이션에 출발지와 목적지만 제대로 입력한 뒤 따라가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재무 목표도 마찬가지다. 돈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중심으로 돈과 삶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민해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 뒤 목표대로 따라가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100점짜리 인생 중심 재무설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