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순자산 상위 10% 부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전후해 자산가격이 급등하던 시절에 중산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방식으로 금융자산을 운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산층은 주식·펀드 등의 투자를 크게 늘렸으며, 자산가 계층과 달리 자동차 자산가액이 크게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매일경제신문이 통계청의 2022년도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순자산 최상위 10%자산가 가구의 금융자산은 3억7693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 수치인 3억6673만원에 비해 약 1019만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순자산 규모로 뽑아낸 중산층 가구(순자산 규모 상위 20~80%)의 금융자산 증가폭은 평균 2073만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8038만원에서 2022년 1억111만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자산가 가구의 금융자산 규모가 더 큰데도 이 기간 중산층 가구의 금융자산 증가 폭이 자산가 가구를 뛰어 넘었다.
통계청은 매년 약 1만80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과 각종 행정 데이터를 복합시켜 소득·자산·부채를 조사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실시하는데, 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하는 분위별 통계는 통상 5분위별(전체 가구를 20%씩 분류) 수치까지다. 분위를 이보다 작게 쪼갤 경우 표본 숫자가 부족해 신뢰도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통계청은 자세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표본가구 숫자가 워낙 방대한 덕분에 상위 10%에 해당하는 가구 숫자만 해도 2022년 조사 기준 1641가구에 달하며, 이는 최상위 부자들의 소득·자산·부채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다.
비교 대상으로 삼은 중산층 가구는 순자산 규모 상위 20%에서 80% 사이에 있는 곳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2022년도 가계금융복지조사상 표본가구는 1만857가구에 달한다. 중산층으로 한데 묶기에는 그룹 안에서도 자산격차가 크지만, 최상위 10% 자산가 계층의 가구와 비교하는 용도로 일반 국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가능한 한 넓은 집단을 포함했다.
자산가 가구에 비해 중산층 가구의 금융자산 증가 폭이 커졌던 가장 큰 원인은 보험금액이었다. 순자산 상위 10% 자산가 가구의 저축성 보장성보험금액은 지난 2022년 평균 4887만원이었는데, 이는 2019년 6415만원에 비해 1528만원이나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중산층의 저축성 보장성보험금액도 하락세를 보였지만 자산가 계층에 비해서는 감소 폭이 훨씬 덜했다. 2019년 2278만원에서 2022년 2205만원으로 약73만원 줄어든 데 그친 것이다.
자산가 가구의 기타 실물자산이 이 기간 감소한 것도 보험금 감소 추세와 비슷한 원리로 해석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자산가 가구의 기타 실물자산은 5826만원으로 2019년도 7027만원에 비해 1200만원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가구에서는 2019년도 1832만원에서 2022년도 2074만원으로 소폭 증가세를 보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자산가 가구와 중산층 가구의 금융자산 운용이 커다란 격차를 보였던다른 항목은 주식·채권·펀드금액
이다. 순자산 상위 10% 가구의 2022년 기준 주식·채권·펀드금액은 9307만원으로 2019년 7429만원에 비해 1878만원(25.3%) 증가했다.
중산층 가구의 경우 2022년 주식·채권·펀드 금액이 797만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9년 347만원에비해 129.9%(450만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자산가격 급등기에 중산층 가구들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주식·채권·펀드 투자에 더욱 열을 올렸던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중산층·청년층 가구의 이른바 ‘영끌’ 부동산 투자도 많은 화제가 됐지만, 이미 수도권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가격이 워낙 높게 형성돼 있던 탓에 중산층 입장에서 부동산 투자에 손쉽게 나서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이 자산 급등기에 주식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간한 ‘2022 중산층 보고서’에서 나이가 젊은 계층일수록(30대 26.7%), 미혼일수록(30.4%)의 금융자산 비중이 전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빚투(빚을 내어 투자)’ 열풍에 따라 가계의 금융자산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NH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 자산 내 주식·펀드 등 금융 투자자산 비중은 2020년 14.5%에서 2022년 24.1%로 2년 새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30대 청년층의 금융 투자자산 구성 비율은 2020년 13.5%에서 올해 26.7%로 2배 가까이 뛰었다.
또 중산층에서 여유자금이 생긴다면 주식 및 금융상품에 투자한다는 비중이 28.3%로 가장 높게 집계됐다. 다음은 부채 상환, 저축, 노후 준비를 위한 연금, 부동산 투자 순이었다. 전체의 94.5%가 소비보다는 투자관련 목적에 관심이 컸다. 투자에 관심을 보인 연령층은 30대가 32.1%로 가장 높았다. 젊은층이 직장 월급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현실과 취업을 하더라도 고용 안정·평생 근로가 보장되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중산층의 68.9%는 주식 투자를 계획중이라고 답했다. 특히 30대 가구주는 4명 중 3명이 주식 투자 계획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고, 직업군별로는 공무원 가구(81.5%)가 제일 높았다.
주식 투자 연간 기대수익률은 21.2%(세전)였다. 2020년 이후 증시 호황으로 다소 높은 기대수익률이 형성된 모습이다. 주식 투자 기간은 평균 5.3년이었으며, ‘10년 이상 장기 투자하겠다’는 비중이 26.5%로 가장 높았다. 특히 장기 투자가 가능한 30대(31.7%)와 고용이 안정적인 공무원(50%)에서 ‘10년 이상 장기 투자’ 응답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금융자산 항목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기타 실물자산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금액 통계도 자산가격 급등기에 흥미로운 변동을 보였다.
순자산 상위 10% 가구의 자동차금액은 2022년 2486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9년도 2347만원에 비해 약 139만원 늘어난 수치다.
자동차금액 통계가 눈길을 끄는 것은 중산층 가구의 증가 폭이 자산가 가구의 증가 폭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중산층 가구는 2019년 평균 1087만원이었던 자동차금액이 2022년에는 1308만원으로 221만원이나 증가했다. 증가율로 비교하면 자산가 가구에서는 5.9%만 늘어났는데 중산층 가구는 20.3%나 뛰어올랐다.
자동차의 경우 보유하고 있던 차량의 값이 갈수록 떨어지는 구조여서 보유자산 수치가 늘어날 유인은 새로 고가의 차량을 구매하는 것뿐이 없다. 자산가격 급등기를 맞아 자금에 여유가 생겼다고 판단한 중산층에서 오히려 자산가 계층보다 차량 구매에 더욱 과감히 돈을 쓴 것이 통계로 나타난 셈이다.
다만 이를 놓고 중산층이 자동차에 과소비를 했다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산층은 자산가 계층에 비해 애당초 자금 여력이 부족했던 탓에 자산가격 상승으로 벌어들인 자금을 소비에 투입하는 비중이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중산층의 한계소비성향이 더욱 크다는 의미다. 자산가 계층에서는 어차피 좋은 자동차를 끌고 다녔던 탓에 투자가 성공하더라도 자동차에 더 많은 돈을 쓸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금융자산 하위항목 중 하나인 수시·적립·예치식 저축금액은 자산가 가구의 경우 2019년 1억5767만
원에서 2022년 1억6108만원으로 342만원 증가했다. 중산층에서는 2019년 2442만원에서 2022년 3062만원으로 620만원 늘었다.
다만 이 같은 수치는 2023년도 통계에서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금융복지조사가 해당연도 3월을 기준으로 작성되는 탓에 지난해 금리 인상기를 맞아 예적금 열풍이 불었던 것이 2022년도 통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27조 2986억원으로 집계된 바 있다. 전년도 연말에 비해 172조3627억원 늘었으며, 이는 2021년도 연간 증가분(40조5283억원) 대비 4배 많은 수준이었다.
이후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은행들의 예금금리가 인하되며 이 같은 ‘역머니무브’가 마무리된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인터넷은행과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고금리 상품이 다시 등장하며 예금 인기가 오르는 중이다. 이에 주요 시중은행에서도 고금리 상품들을 내놓으며 예금 증가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5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817조 5915억원으로 4월 말(805조 7827억원) 대비 11조 8088억원 증가한 것으로나타났다.
특판 적금 상품도 속속 출시되는 추세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초 5대 연금을 신한은행 계좌로 수령하는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해 최고 연 5.5% 금리를 적용하는 ‘신한 연금 저축왕 적금’을 출시했다. 우리은행도 같은 금리의 ‘우리 퍼스트 정기적금’을 선보였으며, 하나은행에선 직장인 적립식 상품인 ‘급여 하나 월복리 적금’을 통해 최고 연5.85%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매일경제 금융부 문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