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1세대 초고층 주상복합이라는 상징성에 더해 인근 양재천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큰 관심을 끌었다.
사실 그 전부터 ‘양재천 벨트’는 이미 서울 주요 부촌 중 하나였다. 타워팰리스가 지어지기 전에 강남에서 처음 10억원을 넘긴 아파트가 대치동 우선미(우성·선경·미도)였고, 학계·법조계 등 지도층 인사들이 양재천에 인접한 대치동·개포동 일대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서울 재건축의 대명사인 은마 아파트도 인접해 있다.
이 ‘양재천 벨트’가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대 노후 단지의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대치 은마와 미도, 개포 경남·우성3차·현대1차(경우현) 등 대단지들이 최근 인허가 첫 관문을 넘었고, 양재천 이남의 개포주공 5~7단지는 시공사 선정을 마쳤다. 탄탄한 학군과 교통·생활 인프라스트럭처에다 쾌적한 주거환경 까지 갖춘 ‘양재천 벨트’가 압구정·반포 등 ‘한강벨트’와 견줄 수준으로 떠오를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우선미’로 불리는 개포우성1차와 선경, 미도는 양재천 벨트의 핵심이다. 지하철 3호선 도곡·대치역과 학원가 인접성, 양재천을 남쪽으로 보는 조망, 초·중품아라는 점 등 실질적으로 이 일대에서 입지를 견줄 만한 단지가 많지 않다.
특히 대치미도가 최근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2021년 강남권 신속통합기획 1호 단지로 선정됐고, 지난 7월엔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2014년 안전진단을 통과하며 재건축을 본격 추진한 지 11년 만에 거둔 성과다. 1983년에 준공된 대치미도는 현재 최고 14층, 2436가구 규모다. 재건축을 통해 최고 49층, 3914가구 규모의 ‘매머드급 단지’로 재탄생하게 된다. 전체 물량의 46.5%(1820가구)가 전용 85㎡ 초과 중대형 평형으로 구성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개포우성1·2차(1983년 준공·1140가구), 선경1·2차(1983년·1034가구)도 정비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성의 경우 정비구역 지정과 추진위원회 설립을 위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 또 조만간 신속통합기획 자문(패스트트랙)을 신청할 계획이다. 최근 도시정비법 개정으로 정비구역 지정 전 추진위원회 설립이 가능해진 만큼 속도가 더욱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우선미는 양재천을 남향으로 볼 수 있고 규모와 평형이 커 미래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은마 아파트는 서울 강남 재건축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각종 규제와 주민 갈등 등으로 사업이 장기 표류했다. 대치동에서도 손꼽히는 입지를 자랑하지만 재건축을 둘러싸고 ‘시끄러운 단지’로도 유명세를 탔다. 이곳은 최근 재건축 정비계획 변경안이 통과됐다. 재건축이 추진된 지 30년 만이다. 변경안에 따르면 은마 아파트는 지상 49층 높이의 5893가구로 재건축된다. 강남구에서는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 아이파크(6702가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단지가 될 전망이다. 계획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치동 학원가 쪽과 학여울역 인근 2곳에 지역 주민을 위한 공원이 들어선다. 대치동 학원가의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학원가 방향 공원 지하에 400대 규모 공영 주차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학원생들을 위한 개방형 도서관도 설치한다. 대치역 일대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4만㎥ 규모의 저류조를 설치할 예정이다. 단지 중앙에 남북 방향으로 폭 20m의 공공보행통로도 조성한다. 이 보행통로는 은마 남측에 있는 미도 아파트의 공공보행통로와 양재천을 가로지르는 입체보행교와 연계되면서 대치와 개포의 생활권을 연결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조합 측은 연말까지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통합 심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사업시행인가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은마 아파트는 현재 30평대(전용 76·84㎡) 중형으로 구성됐지만 재건축을 거쳐 40평대 이상의 중대형 단지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 조합 측이 조합원 대상으로 선호하는 평형을 설문조사한 결과 중대형 평형 선호가 두드러졌다.
‘우쌍쌍(우성1차·쌍용1차·쌍용2차)’은 은마나 우선미 못지않게 강남구 대치동 대표 재건축 단지로 꼽힌다. 양재천·탄천이 가까운 데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을 끼고 있어 주변 단지와 비교해도 입지가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초등학교(대현초)가 길건너로 상대적으로 멀다는 사실이 단점이지만 인근 다른 단지보다 빠른 사업 속도가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로이 단지들은 사업시행인가를 이미 받은 상태에서 계획만 변경하고 있다.
한때 ‘우쌍쌍’으로 불리던 단지들답게 통합 재건축을 시도했지만 이제 ‘쌍(쌍용1차)’ 하나를 떼고 ‘우쌍(우성1차·쌍용2차)’으로 뭉쳐 1300여 가구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쌍용1차는 단독 재건축을 선택했다. 대치우성1차와 쌍용2차는 최고 49층 1332가구 규모로 재건축된다. 공공주택 159가구가 포함됐다. 통합재건축을 통해 공급 규모가 기존 계획에서 60가구 늘었다. 올해 초 통합 재건축 정비계획 결정·정비구역 변경안을 서울시에 접수했고, 지방자치단체 심의가 끝나면 조합 통합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비업계에서는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된다면 이르면 올해 말 시공사 선정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쌍용1차는 기존 5개동·15층·630가구에서 6개동·최고 49층·999가구 규모의 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올 8월 정비계획 변경안이 통과됐다. 심의안엔 양재천을 연결하는 녹지네트워크 조성 방안이 담겼다. 단지 내 소규모 공원과 오픈스페이스 조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양재천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쾌적한 수변친화 생활환경을 만든다. 영동대로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도 도입한다. 지역 주민을 위한 개방형 시설인 서울형 키즈카페, 다 함께 돌봄센터, 어린이집을 계획해 아이를 키우기 좋은 주거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단지들은 양재천 북측에 있다. 하지만 남측 개포동 쪽에도 주목할 단지가 상당히 있다. 가장 관심을 받는 곳은 경우현(개포 경남·우성3차·현대1차)이다.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인데 양재천을 앞에 두고 맨 앞에는 개포경남이 위치해 있고, 바로 뒤로 개포현대1차와 개포우성3차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바로 뒤 블록이 현재 개포동 대장주로 꼽히는 디에이치 퍼스티어아이파크(옛 개포주공1단지)이고, 대각선 방향으로 뒤쪽에 있는 곳이 개포래미안포레스트로 재건축된 시영아파트다. 양재천을 끼고 있는 경남, 우성, 현대의 입지가 뒤 블록 단지들보다 낫다는 얘기다.
이들 단지는 모두 규모가 중소형급이라 문제였다. 하지만 3개 단지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해 대규모 단지로 거듭나게 되면서 입지적 장점을 유지하게 됐다.
경우현은 현재 1499가구 규모다. 재건축 계획에 따르면 최고 49층, 2343가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통합 재건축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적용받아 49층 동이 4개나 들어서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내년 1월께 추진위가 꾸려질 전망이다.
다만 주민들 간 갈등 봉합이 과제로 남았다. 현재 경남아파트 일부 주민은 경남 1차(156%)와 2차(204%)간 용적률이 다르다며 독립정산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독립정산제는 단지별로 수익과 비용을 따로 정산하는 개념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주민 간 갈등이 깊어지면 조합설립추진위원회 등 후속 절차가 지연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개포동역~대모산입구역 라인에 걸쳐 있는 단지는 시공사 선정 절차까지 밟았다. 최고 35층, 2698가구 규모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개포주공6·7단지(1983년·1960가구)는 5월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정했다. 현대건설은 개포 최초의 지하철역 직통 연결 단지를 선보일 방침이다. 개포주공5단지(1983년·940가구)는 대우건설이 품었다. 지상 35층, 1279가구 규모의 ‘개포 써밋 187’로 거듭날 예정이다.
경우현 옆 단지인 개포현대2차는 최고 49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558가구가 1122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수인분당선 구룡역 역세권인 개포현대3차와 개포우성8차는 통합 재건축을 재추진 중이다. 양재천 북쪽에 있지만 3호선 매봉선 역세권인 개포우성4차와 개포한신도 재건축 기대주다.
‘양재천 벨트’로 일컬어지는 서울 대치·도곡동 일대는 흔히들 학군지로 인식한다. ‘전국구급’ 학원가와 탄탄한 입시 실적을 내는 학교들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을 단순히 학군지로만 간주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 코엑스부터 잠실종합운동장에 이르는 국제교류복합지구를 비롯해 세텍(SETEC) 컨벤션센터 등 손꼽히는 대형 개발 사업들이 주변에서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 프로젝트다. 올 상반기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이 마련되면서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국제교류복합지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부터 송파구 잠실운동장까지 177만㎡에 이르는 지역을 뜻한다. 코엑스와 잠실운동장,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콤플렉스(GBC), 서울의료원 용지와 옛 한국감정원용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선 서울시는 이 일대를 업무중심, 상업업무복합, 도심서비스, 교류·문화복합시설 등 4개 구역으로 나눠 관리하기로 했다.
업무중심 구역은 코엑스와 현대차 GBC 용지, 서울의료원과 옛 한국감정원 용지, 테헤란로변, 잠실 MICE 민투사업 용지 등이 모두 해당한다. 지구 지정 취지를 살려 국제업무 환경 조성과 전시·컨벤션 기능을 강화하고, 기반시설 확보가 전제된 적극 개발을 유도하기로 했다. GBC 용지를 중심에 두고 봉은사로와 테헤란로 맞은편에 위치한 중소규모 필지들은 상업업무복합 구역에 속한다. 이 지역은 중소 업무 기능을 확충하고, 노후 건축물 리모델링과 복합개발을 유도한다.
서울시는 코엑스에서 탄천을 건너 잠실 한강공원까지 이어지는 보행축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코엑스, GBC, 옛 서울의료원 용지 등 거점 시설을 통과하는 보행축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보행자 전용도로와 보행자 우선도로를 신설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 일대에 국제업무 기능이 집약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개발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업무중심 구역엔 권장용도로 업무시설과 문화 및 집회시설 중 회의장, 관광·생활숙박시설을 넣기로 했다. GBC 건립 계획도 진행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GBC를 105층 1개동에서 54층 3개동으로 변경하는 개발 계획 변경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층수 하향에 따른 공공기여 등 재협상을 서울시와 현대차그룹이 벌인 뒤 내년에 변경 착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근처 서울무역전시장(SETEC) 용지도 복합개발 된다. 서울시는 이곳과 잠실 국제교류복합지구를 연계할 수 있는 복합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서울 동남권 도시 공간이 국제교류·MICE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호반그룹은 또 SETEC 근처 대치동 코원에너지서비스 본사 용지를 매입하고 복합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손동우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