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8) 근대 종교개혁 | 영화 `루터`와 절대 권력과의 투쟁
입력 : 2020.08.03 15:20:33
수정 : 2021.08.11 14:20:03
종교개혁은 중세 유럽인들을 지배했던 가톨릭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등장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며 근대 유럽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톨릭교회의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선각자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은 구교에서 신교로 이행하면서 교황이 지배하던 세상을 왕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꾸었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다.
▶종교개혁 시대를 체감할 수 있는 영화 <루터>
에릭 틸이 감독하고 조셉 파인즈가 열연한 영화 <루터(2003)>는 면죄부 판매에 ‘95개조 반박문’을 제시하고 교황에 맞섰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 중세 가톨릭교회의 권력이 얼마나 독점적이고 강력했는지, 16세기 독일지역에서 종교개혁은 왜 발생했고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종교개혁이 당대의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루터(2003)
영화 <루터>는 천둥 번개가 무섭게 치던 날 루터가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자신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성직자가 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죄 짓게 만들고 평생토록 그 죄를 탓하시며 저주받은 우리를 심판하고 지옥의 불길로 위협만 하신다며 괴로워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심부름을 간 로마에서 너무나 타락한 기독교를 본다. 성직자 전용 매음굴이 있는가 하면, 돈을 내고 오르면 조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계단이 있고, 세례 요한의 두개골이나 유다의 동전 등 진짜인지도 모르는 성유물이 돈벌이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더욱 비탄에 빠지고 믿음에 대한 회의가 짙어져갔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2013)
▶‘심판의 하느님’이 아닌 ‘사랑의 하느님’
고해신부였던 슈타우피츠 신부의 도움으로 루터는 비텐베르크로 보내지고, 그 마을의 주임사제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루터는 사랑의 하느님을 느낀다. 신도들에게는 자신도 하느님을 지옥 불에서 죄인을 벌하시는 섬뜩한 분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틀린 것이며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설교한다. 더불어 지옥 불에서 우리를 심판하는 하느님으로 사람들을 겁주면서 가짜 성물을 돈벌이로 삼는 종교계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루터의 설교는 교황청에 반대하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바티칸 성당 건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고 일부 성직자들은 구매를 자극하기 위해 섬뜩하고 무서운 모습의 하느님을 강조했다. 저주받은 영혼들의 처참함을 생생하게 표현한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지옥 장면이나 단테의 <신곡>에 나온 끔찍한 지옥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판매술에 능했던 이가 데첼 수사였다. 그는 면죄부가 사람들을 지옥 불에서 구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또한 조상들이 연옥의 불길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며 현세의 후손들이 면죄부를 사지 않으면 자식들을 원망하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죄책감을 자극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얘기지만 교회 성직자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런 거짓된 선전에 말려 너도나도 면죄부를 구매했다. 루터와 잘 알고 지내던 가난한 과부도 면죄부를 사게 되면서 루터의 분노 또한 극에 달했다. 루터는 면죄부에 반대하는 95개 논제를 성당 문에 붙였고, 그것은 다시 인쇄소에 보내져 프린트된 뒤 독일 전역에서 읽히게 되었다. 구텐베르크 이래 독일에서 일어난 인쇄 혁명이 제 몫을 톡톡히 한 것이다.
▶성서 독점을 무너뜨린 인쇄술과 독일어 성서 번역
루터는 시골 농가에 피신해 은둔하면서 라틴어로 된 신약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이 성서는 인쇄소를 거쳐 전 독일로 퍼지게 된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과 인쇄 기술을 통한 확산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이전까지는 성서를 소수만 보유할 수 있었고 더욱이 라틴어로 쓰여 극소수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신의 대리인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신을 독점하고 위선과 거짓을 퍼뜨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독일어 성서의 인쇄를 계기로 성서가 일반인에게도 퍼지면서 교회의 성서 독점이 무너졌다. 독일어 번역 성서를 선물로 받은 프리드리히 제후는 이 책으로 인해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가 영원히 끝날 것이라고 예단한다.
▶농민 봉기로 이어진 종교개혁과 루터의 책임
루터는 교황의 착취가 특히 심했던 독일에서 여러 지역의 제후뿐 아니라 농민으로부터도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다. 농민들은 루터를 영웅으로 생각하며 자신들을 착취해온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반란을 일으킨다. 루터는 농민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불을 지르고 반대자들을 살해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맹렬하게 비난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소설의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도 농민 반란에 반대하는 루터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영주의 부당한 횡포를 못 이겨 봉기를 일으킨 상인 콜하스와 논쟁을 벌이며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미하엘 콜하스는 자신의 세력을 해산시키지만 권력자에 의해 참수 당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당시 루터의 활동은 봉건 사회의 모순에 대한 농민의 항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표적인 것이 토마스 뮌처가 주도한 농민전쟁이었다. 이들은 지배계급 처단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선포하며, 노예제와 십일조 폐지 등의 경제적인 요구는 물론 신분제의 철폐,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 정치적 요구까지 내세우며 사제와 영주의 성을 습격했다. 루터는 살인과 폭력을 저지르는 농민들을 강력하게 비난하며 이런 반란은 주님의 뜻이 아닌 만큼 제후들은 이들을 죽여도 된다고 선언했다. 영주들은 군대를 일으켜 농민들의 반란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토마스 뮌처는 전투 끝에 처형당하고 만다. 농민 봉기는 황제와 제후의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진압되고 10만 명 이상의 농민 처형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루터는 농민들이 흘린 피가 자신 때문이라며 책임을 인정했지만 수많은 희생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의 여지가 있다. 영화에서는 루터가 수많은 농민들의 처참한 죽음 광경을 보고 대학살이라며 비통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종교의 자유와 결혼 개혁
영화 후반부에는 황제가 제후들을 모아 루터 문제를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가톨릭 제국을 건설하려는 카를 5세는 루터를 이단으로 처치하고 싶었지만 루터의 개혁운동을 신봉하는 독일 제후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제후들은 차라리 자신의 목을 치라며 무릎을 꿇었고 결국 독일 황제는 아우구스부르크 종교 회의를 거쳐 루터교를 정식으로 인정하게 된다. 영화는 루터의 성서 번역이 독일 표준어의 초석이 되었다는 내용과 그가 수녀원에서 나온 카타리나 폰 보라라는 수녀와 결혼해 6명의 자식을 낳았다는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당시 교황에 대한 루터의 비판이 확산되면서 남녀 수도자들은 수도원에서 자진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루터는 이들을 위해 수사의 경우 대부분 목사로 전향시키고 수녀들은 시집보냈다고 한다. 그에게 결혼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혼도 가능하다고 주장해 가톨릭교회와 다른 입장을 가졌다.
▶절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럽 기독교는 통일성이 깨지고 로마 가톨릭 구교와 프로테스탄트교인 신교로 나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개혁은 종교를 떠나 절대 권력의 부패를 지적하고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영화 속에서 카예탄 추기경은 성서의 해석 권한은 교황에게 있고 그 해석은 틀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루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주장에 반박한다. 교황의 특권은 교황의 권세로 보장받는 게 아니라 교황의 신용과 성서에 명시된 가르침에 의해 유지되며, 교황이 성서를 해석할 수는 있어도 그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추기경은 동쪽 국경에서 투르크가 군사를 모으고 있고 서쪽에선 이민족이 활개를 치고 있어 기독교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면죄부는 신도들에게 위안을 주는 전통이라고 말하지만 루터는 위안이 아니라 진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대화 장면을 보면 독재 정권들이 전쟁과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며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자에 대해서는 사회혼란을 조장한다며 진실을 억누르는 방식.
흥미로운 사실은 독일의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이 다른 나라의 개신교 개혁에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교황의 절대 권력이 왕의 절대 권력으로 이양됐다는 점이다. 절대 권력을 쇄신하려는 노력이 또 다른 절대 권력을 불러온 것이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종교개혁으로 진행된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 결국 프랑스 위그노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독일의 30년 전쟁과 같은 종교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허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다. 절대 권력은 언제든 존재할 수 있고, 우리는 이를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