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여름 보양식의 조건 | 양기를 보충할까, 영양을 채울까 아니면 고단한 몸을 편하게 할까
입력 : 2020.08.03 13:51:19
수정 : 2020.08.04 11:29:31
당나라 미인 양귀비는 풍만한 체형 때문인지 더위에 약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름이면 옥을 깎아 만든 물고기 인형을 입에 물고 그 서늘한 기운을 삼키며 땀을 식혔다고 한다.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은 시대와 환경,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겠지만 삼복더위에 시달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찾는 것이 보양식이다. 문제는 종류가 너무 많아 선택이 쉽지 않다는 것인데 전통적인 삼계탕부터 장어구이와 민어찜 등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전복 갈비찜에 삼겹살, 오리구이까지도 여름철 복날 보양식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았다. 과연 어떤 보양식을 먹어야 몸보신 제대로 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고단백에 비타민, 무기질 등 몸에 좋은 성분이 고루 들어있는 비싸고 영양가 높은 고급요리가 효과도 뛰어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보양식은 필요한 조건에 맞춰 먹어야 제대로 효험을 볼 수 있으니 보양식이라고 다 같은 보양식이 아니다. 이를 테면 복날 삼계탕을 먹는 것도 다 이유가 있고 예전에는 복날 챙겨먹지 않았던 갈비찜이나 삼겹살이 요즘은 보양식이라며 명함을 내미는 것도 까닭이 있다. 터무니없다 싶겠지만 심지어 시원한 팥빙수 역시 보양식이 될 수 있다.
보양에도 여러 유형이 있기 때문인데, 첫째가 보양(補陽)이다. 부족한 양기를 보충한다는 뜻이니 이 조건에 맞추려면 양의 기운이 가득한 음식이어야 한다. 둘째도 역시 보양(補養)이다. 이 경우는 양기와는 관계없이 부족한 기운을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보충한다는 의미다. 여름철 체력이 떨어졌을 때 먹고 기운 차릴 수 있는 음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 또한 보양(保養)이다. 이때의 보양은 몸을 편하게 해 건강을 잘 돌본다는 말이니 입에 맞는 음식, 체질에 맞는 음식을 맛있고 편하게 먹으면 된다.
발음은 모두 같은 보양이지만 의미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기에 보양식 또한 그 조건에 맞춰야 한다. 예컨대 복날 삼계탕은 부족한 양기를 채운다는 점에서는 최고 보양식이지만 영양보충을 위한 음식이라면 비싸고 더 좋은 음식도 얼마든지 있다. 반면 전복 갈비찜, 삼겹살, 돼지족발은 여름철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는 데는 훌륭한 보양식이 될 수 있지만 복날 양기를 채우는 보양식은 아니다. 소고기는 양의 기운이 부족하고 돼지는 오히려 음기가 많다. 전통 복날 음식 중에 돼지고기, 소갈비가 없었던 이유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 현대에 무슨 음양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복날이라고 특별히 보양식을 챙겨 먹는다면 음양 이치를 따진다고 타박할 게 못 된다. 복날 자체가 음양의 관점에서 비롯된 날로 장차 음기가 일어나려다 아직 남은 양기의 기세에 눌려 숨은 날이기에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복날이다. 때문에 전통 복날 음식은 몇 가지 조건을 맞추는 것이 기본이었다. 먼저 더위를 쫓아 여름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 그리고 음양의 조건에 맞춰 음기를 누를 수 있는 음식이다. 복날 자체를 음양으로 설명했으니 음식도 여기에 맞췄다. 더불어 주술적 의미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낼 수 있어야 한다. 복날의 기원과 민속적 성격 때문이다.
영양가 높은 음식은 많지만 음양 조건에 주술적 의미까지 만족시키는 음식은 흔치 않다.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하다고 아무 음식이나 전통 복날 음식이 되지 못했던 이유다. 예컨대 보신탕과 팥죽은 양기가 넘치는 데다 영양이 풍부해 먹으면 보신이 될 뿐 아니라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인 역귀가 팥과 개를 무서워했기에 복날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육개장도 복날 보양식으로 먹었다. 문제는 소고기는 영양은 많지만 나쁜 기운을 쫓는 능력이 없다. 때문에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빨갛게 끓였다. 역귀가 붉은 색을 무서워하니까 보고 도망가라는 뜻이다. 민속과 미신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 낸 음식문화였다.
복날 보양식을 대표하는 삼계탕은 복날 음식에 필요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한여름에는 영양가 높은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이열치열의 조건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새벽닭이 울면 귀신이 물러가니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복날 닭고기가 좋은 이유는 따로 있다.
<주역>에 닭은 양의 기운이 넘치는 새(陽鳥)라고 했다. 삼계탕은 이런 닭에 인삼을 비롯한 각종 한약재를 넣어 끓인다. 인삼은 몸을 덥히는 양의 기운이 강한 약재이니 그렇지 않아도 양조인 닭고기와 어우러져 양기를 더욱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삼계탕이 최고의 복날 보양식이 된 배경이다. 하지만 옛날 보양식이라고 다 음양을 따지고 역귀를 쫓는 액땜을 강조했던 것은 아니다. 여름철 몸보신에 관념적인 음양철학이 웬 말이냐는 사람들은 보양(補養)에 초점을 맞췄다. 맛과 영양에 입각해 현실적으로 몸보신을 강조한 보양식도 많았으니 일품 민어, 이품 도미와 장어구이라는 전통 영양보충 음식이 그런 것들이다. 현대판 여름 보양식인 전복죽에 갈비찜, 삼겹살 등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몸보신 음식이야 경제력에 따라, 그리고 각자 입맛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종류도 수없이 많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보편적 보양식 중 하나는 장어와 추어탕이다. 추어탕은 우리 고유 음식 같지만 형태만 다를 뿐 일본과 중국에서도 많이 먹는 여름 보양식이다. 미꾸라지는 힘이 좋기 때문인지 한·중·일 모두 물속에 사는 살아있는 인삼이라고 여겼다. 일본 추어탕은 도쿄 향토음식으로 미꾸라지를 우엉과 함께 끓인 후 계란을 풀어 스키야키처럼 먹는다. 중국에서도 농민과 서민들은 추어탕으로 더운 여름을 이겨낸다. 중국 농민들은 여름 보양식으로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가 으뜸”이라고 한다.
장어 역시 한·중·일 삼국에서 공통으로 먹는 여름 보양식이다. 추어탕이 주로 농민의 음식이었다면 장어는 중산층의 보양식이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여름에 장어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까지 있어 일본인은 한여름에 우리가 삼계탕을 먹듯 반드시 장어덮밥을 먹는다. 중국도 비슷해서 송나라 때 발행된 <태평광기>라는 문헌에는 여름날 역병에 걸려 죽어가는 여인에게 며칠 동안 장어를 먹였더니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장어를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보양식으로 보았다는 소리다. 대중적 몸보신 음식인 추어탕과 장어처럼 여름철 보양식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아무나 먹기 힘든 비싼 고급 요리가 아닌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음식으로 몸보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꾸라지나 장어처럼 민간에 전해지는 속설이 됐건 아니면 과학적인 근거가 있건, 먹으면 힘이 솟는다는 식품이 보양식 재료가 됐다. 고단백의 영양식을 먹고 여름철 건강을 지키자는 뜻이다.
여름철 건강 챙긴다고 양기를 보충하거나 영양가 높은 음식을 찾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몸을 편하게 해 건강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니 이럴 때 먹는 것이 보양(保養)의 보양식이다. 이 보양식은 특별할 것이 없으니 얼핏 이게 왜 보양식인지 꼽기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전통적으로 많이 먹던 여름 별미가 여기에 해당된다. 얼핏 특별할 것 별로 없어 보이는 오이, 콩나물 냉국이나 콩국수 수제비 등을 여름에 보양음식으로 먹었던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는 팥빙수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현대판 보양 음료가 될 수 있다. 더위에 지친 몸을 편하게 해주니 보양인 것이다.
다양한 보양식의 조건을 이야기했지만 보양(補陽)이 됐건 보양(補養) 혹은 보양(保養)이 됐건 옛 사람이 강조했던 진짜 보양식은 따로 있다. 중국 최고 미식가면서 양생법을 설파한 송나라 시인 소동파도 한마디를 남겼는데 그럴 듯하다. “배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기 전에 멈춘다”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먹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선 초, 세조의 주치의를 지낸 전순의 역시 건강에는 음식이 으뜸이고 약은 다음이라고 했다. 어떤 음식이라도 즐겁고 맛있게 먹으면 그것이 바로 보약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