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⑩ 천재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선율을 만나다
입력 : 2019.11.07 14:10:01
수정 : 2019.11.07 14:10:20
오스트리아를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그가 죽은 지 2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하루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환승역에서 작품번호 ‘kv525 세레나데 3악장’이 울려 퍼지고, 종착역에선 ‘피아노 소나타 11번’이 이별을 알려준다. 소설가이자 출판 편집자인 필립 솔레르스는 그의 작품 <모차르트 평전>에서 “현대인은 누구나 모차르트 음악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모차르트의 음악이 우리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태어나기 전에는 그의 ‘마술피리’를, 성장하면서는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와 ‘피아노 소나타’를, 연인이 생기면 ‘피가로의 결혼 K.494’ 중 ‘사랑의 그리움 그대는 아는가’를, 죽음을 앞에 두고는 ‘레퀴엠’의 선율을 듣는다.
가을빛 몇 줌이 살포시 내려앉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달려가면 한 폭의 수채화나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아름다운 도시가 눈앞에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영혼의 울림이 일 년 내내 울려 퍼지는 땅, 잘츠부르크. 도시 한가운데로 잘자흐 강이 흐르고, 삼면이 숲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체코의 프라하와 함께 ‘북쪽의 로마’라 불릴 만큼 중세의 건축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소금의 산’이라는 뜻의 잘츠부르크는 소금을 유럽 전역에 공급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종교와 예술을 화려하게 꽃피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잘츠부르크가 세계 역사의 중심지로 발돋움한 이유는 모차르트라는 걸출한 천재 음악가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소금의 도시’라는 명성보다 ‘음악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훨씬 유명해졌다는 점이 이 도시의 이미지를 말해준다.
구시가지는 마치 중세시대를 거닐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잘자흐 강을 중심으로 북동쪽에는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미라벨 정원이 있고, 강 건너편에는 대성당, 잘츠부르크 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구시가지의 중심은 모차르트 부자가 작곡가로 근무했던 잘츠부르크 성이다. 도시의 터줏대감처럼 늠름하게 버티고 있는 성 밑으로 중세의 멋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길과 바로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의 독특한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첫 장면을 장식하기도 하는 성은 1077년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독일의 공격을 대비하여 만든 것으로, 17세기에 완성되었다.
모차르트는 빈으로 떠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성에서 대주교의 궁정 작곡가로 일하며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누나 난네를에게 쓴 편지에서 “꼬마 볼프강은 작곡할 시간이 없어. 사실은 작곡할 게 아무것도 없거든. 벼룩과 씨름하는 개처럼 방안을 빙빙 돌고 있을 뿐이야”라고 말했다. 그가 이곳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버지의 강요로 성을 떠날 수 없었던 모차르트는, 싫은 내색 없이 음악을 작곡했지만 뜨거운 열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대주교의 명령에 따라 음악을 작곡하는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게 느껴질 때마다 성곽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꿈과 음악에 대한 상상을 펼쳤다.
이처럼 성에는 모차르트의 젊은 시절의 고민과 방황이 묻어 있어, 이곳에 들어서면 가엾은 볼프강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의 처지와 상관없이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잘츠부르크의 풍경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도시를 쉼 없이 가로지르는 잘자흐 강, 모차르트의 선율이 배어있는 대성당, 봄부터 가을까지 황홀한 꽃향기를 피워내는 미라벨 정원, 수천 년에 걸쳐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구시가지, 노란 단풍과 어우러진 알프스 등 그야말로 잘츠부르크가 가진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성을 등지고 구시가지로 내려오면 닫혔던 작은 골목길이 새로운 길로 안내하고, 그 길이 닫힐 즈음이면 또 다른 길을 내놓으면서 사람들을 점점 더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한다. 더욱이 구시가지에서 가장 번화한 게트라이데 거리에 들어서면 이 도시의 활기를 가득 느낄 수 있고, 카푸치노 한 잔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곁들이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 거리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곳은 9번지의 노란색 건물이다. 이곳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다간 모차르트가 태어난 생가다. 잘츠부르크를 찾는 대부분 여행자는 천재 음악가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을 거쳐 간다. 모차르트는 12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 3층에서 1756년 1월 27일 태어났다. 그는 25세가 될 때까지 잘츠부르크에서 살았는데 그중 17년을 이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1917년 국제 모차르테움(Mozarteum)협회에서 이곳을 사들인 후 기념관으로 개조했고, 1층에서 4층까지 모차르트와 그의 가족이 사용했던 바이올린, 피아노, 그가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편지, 침대 등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그가 태어난 3층과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할 때 사용했던 소품을 모조품으로 만들어 전시한 2층이다. 또 중산층이었던 모차르트 가족이 사용했던 가구와 생활 도구들, 복도 중간에 수북이 쌓인 여행 가방 등도 눈길을 끈다.
생가를 다 본 후에도 모차르트의 흔적을 더 느끼고 싶다면, 태어나면서 세례를 받은 곳이자 오르간 연주자로 있었던 대성당, 1767년 열 살의 나이로 자신이 작곡한 ‘오라토리아’가 연주되고 열두 살에 그의 첫 오페라가 공연된 레지덴츠, 1783년 ‘C단조 미사곡’을 지휘했던 성 페테 성당, 그리고 열일곱 살에 생가를 떠나 1777년부터 빈으로 가기 전까지 살았던 ‘모차르트 하우스’를 둘러보면 된다. 이 집은 그의 가족이 생가를 떠나 새롭게 마련한 집이자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1787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1995년에 복원된 이곳에서는 모차르트의 음악, 가구와 악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와 모차르트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잘츠부르크. 그리고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태어나 1791년 12월 5일 자신이 좋아했던 겨울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연주 여행을 떠난 모차르트. 그는 미완성의 작품을 남겼지만, 우리와 완전한 이별을 고하지는 않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과 함께 모차르트의 음악은 영원히 푸른 하늘 밑을 맴돈다.
“나는 내 재능을 다 펼치기 전에 생을 마치게 되었다. 인생은 너무나 아름답고 내 생애는 무척이나 전도유망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운명을 바꿔 놓을 수 없고, 누구도 자기 죽음을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될 것이다. 이제 나의 생을 마감한다. 여기 내가 미완으로 남겨서는 안 되는 ‘레퀴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