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이 아지랑이 사이로 서서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땅과 얼음이 녹아내리는 계곡과 계곡 사이에는 벌써부터 실개천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이파리 하나 없이 황량해 보였던 산천은 천천히 녹색 물결을 준비하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애초부터 봄은 새로운 생명을 의미했다. 그래서 봄은 예술가들에게 언제나 충만한 영감을 제공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하고 따뜻한 작품들 역시 봄과 관련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서울옥션이 제135회 미술품 경매를 진행하며 ‘봄’과 ‘꽃’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대거 준비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최고의 미술품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이 준비한 봄 향기 가득한 작품들을 살펴보자.
정성화 무제
김환기, <산월(1960)>
자연을 주제로 한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출품작인 <산월> 역시 구름과 달, 바다와 섬을 선택해 낭만적이면서 유려한 선묘로 우아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특유의 푸른 바탕에 붉은 색감을 덧입히고, 화면 상당을 유연하게 교차하는 황금빛 노란 색 선과 중앙의 높이 솟은 산 위의 달 등이 석양이 질 무렵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보여준다. 여기에 마티에르가 돋보이는 반추상으로 자연 형태와 자연 소재들을 겹겹이 비켜 사용하면서 그의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작품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김종학 <꽃과 새(2004)>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 우리는 색깔의 아름다움에 예민한 민족이다.”
화사한 핑크빛 덧칠 속에 간간이 보이는 짙은 나뭇가지와 그곳을 평화롭게 나다니는 색동 색의 새들이 화려하면서도 평온한 모습이다. 큰 캔버스를 화려한 핑크로 가득 채운 이 작품은 보는 순간 색상과 보색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핑크 덧칠들은 봄을 맞아 만개한 벚꽃 잎들처럼 여겨진다. 봄의 꽃인 벚꽃을 통해 생동하기 시작한 생명력을 새를 통해 표현해 화려함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정상화 <무제(1976)>
정상화 화백은 두꺼운 물감을 바른 화면을 사각형으로 구획하고 이들을 해체했다가 다시 붙이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네모난 균열들을 하나씩 떼어낸 후 다시 물감으로 채워놓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공간들은 하나의 색과 모양을 완성해 간다. 이처럼 독특한 작업을 거쳐 깊이 있는 정서를 추구하고, 전통적인 창과 담을 연상시키는 격자의 화면 균열은 은은한 백자 빛의 색감을 내며 가장 한국적인 미를 드러낸다.
박수근 <여인과 아이>
“나의 그림은 유화지만, 동양화다”라는 박수근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손꼽힌다.
박 화백은 당시 일본 유학파들처럼 모더니즘의 기표 아래 작품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삶의 지층을 다지듯이 물감을 쌓고 굳히고 두껍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었다. 또 이런 독창성이 한국인의 서민적인 생활상과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해냈다.
그의 소재 역시 이런 점에 닿아 있다. 가난한 이들의 어진 마음과 진실한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 그는 자신이 자란 시골집과 나무, 절구질하는 아낙네, 집 지키는 노인, 아기 업은 소녀 등 서민들의 삶을 이처럼 아름답게 화폭에 아로새겼다.
유영국 <작품, oil on canvas(1966)>
추상예술의 선각자였던 유영국 화백은 차가운 논리와 뜨거운 표현, 그리고 이를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움을 표현한다. 차갑고 뜨거운 돌의 성질을 모두 녹여 자연이 갖고 있는 원시적인 생명력과 구조를 모두 담아내려 노력했으며, 단순한 형태들이 강렬한 색채를 만나 어우러지는 유동적인 색면 공간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