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일, 한 중소 제조업체의 시무식 현장에서 노사 간에 내기 한판이 벌어졌다. 거창하게 노사랄 것도 없는 단출한 분위기였지만 식을 마치고 서로 떡국 나눠 먹으며 덕담처럼 건넨 사장의 한마디가 내기를 키웠다.
“올해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각오로 뛰어봅시다. 위 캔 두 잇 아시죠?”
사장이 말버릇처럼 강조하는 ‘아이 캔 두 잇, 위 캔 두 잇’을 반복하자 듣고 있던 한 직원이 넌지시 한마디 했다.
“사장님, 그런 각오로 직원 모두가 직접 바다 위를 걸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 정말 바다 위를 걷겠다는 겁니까. 허허, 만약 성공한다면 전 직원 소고기 파티,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내기는 단 1분 만에 성립됐다.
1월 중순 무렵 신년 인사를 건넨 자리에서 이 중소기업 사장은 음력 설 전에 소 한 마리 잡기로 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무식을 마치고 그 다음 주 토요일 오전에 전 직원이 강화도로 향했습니다. 직원들이 강화도로 방향을 정했다기에 속으로 썰물 때 갯벌이나 걷자는 건가보다 했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이거 원, 해안가에 바닷물이 허옇게 얼었더군요. 눈이 뭉친 자리에 바닷물이 스며들면서 제대로 걸을 수 있게 얼었더라고요. 나 참,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 위를 직접 걸으면서 직원들과 함께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래도 그 덕에 직원 모두 코에 바람도 쐬고 근처 논두렁에서 썰매도 탔어요. 내기에 졌으니 당연히 할 건 해야죠. 하지만 새해 첫 달부터 제대로 분위기 탄 것 같아 올해는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된다, 된다, 된다는 생각이 성과를 부르는 거 아니겠어요.”
강화나들길 트레킹은 순전히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는 호기심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욕심이 더해져 속도가 붙었다. 첫걸음을 내딛고 보니 눈앞에 보이는 길은 아기자기했고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방대했다. 얼음이 버석거리는 바다 위에 서 보니 저절로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유 캔 두 잇? 아이 캔 두 잇!”
서울 도심에서 김포를 지나 강화도 초입인 초지대교까지의 거리는 90분 남짓, 생각보다 지척에 자리한 이곳은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자, 민족의 영산인 마니산(摩尼山·468m)을 품은 역사의 고장이다.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고구려 영토였던 400년경에는 혈구(穴口)·갑비고차(甲比古次)라 했고, 신라 영토였을 땐 해구군(海口郡)·혈구진(穴口鎭)이라 했다. 1973년에 면에서 읍으로 승격된 후 1995년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된 강화도는 고려시대엔 몽골항쟁의 근거지였고, 조선시대엔 병인양요(丙寅洋擾)·신미양요(辛未洋擾)의 격전지였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니산 정상에 마련했다는 참성단(塹星壇)에선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채화되고 있다.
바다와 함께 걷는 길, 손꼽히는 해넘이 명소
이름도 정겨운 강화 나들길이 조성된 건 2009년. 그해 3월에 4개 코스가 이름을 알렸고, 현재까지 19개 코스 20개 구간 총 310.5㎞에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중 7코스는 ‘갯벌 보러 가는 길’이다. 총 20.8㎞ 구간을 어른 걸음으로 약 6~7시간 걷는 길인데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산과 바닷물이 빠져나간 너른 갯벌, 겨울이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수만 마리의 철새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살짝 고백하면 화도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해 버드러지마을, 일몰 조망지, 북일곶돈대, 갯벌센터, 마니산청소년수련회를 돌아 다시 화도공영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전 코스 대신 바다를 곁에 두고 도는 약 절반의 코스를 택했다. 장화리 낙조마을에서 출발해 일몰 조망지, 북일곶돈대, 갯벌센터를 거쳐 다시 낙조마을로 돌아오는 길인데, 이곳저곳의 경치를 구경하며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면 약 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안면도, 변산반도와 함께 서해안 3대 낙조로 손꼽히는 ‘장화리 낙조마을’에 차를 대고 둘러보니 오르막길 중간쯤에 7코스 강화 나들길 이정표가 고개를 들고 섰다. 나들길로 접어드니 평지와 언덕을 가리지 않고 경치 좋은 곳은 호텔이요 펜션이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인데, 덕분에 차가 다니는 도로는 뻥 뚫렸고, 주변 산과 들, 바닷가 산책로도 말 그대로 때 빼고 광낸 듯 수려하다.
구렁이마냥 구불대는 산길을 10여 분간 돌아 나가니 이번엔 탁 트인 바다에 눈이 시원하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구간인데, 산길 아래 바다가 이어지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염없이 내리는 햇빛을 온몸으로 반사하는 갯벌은 본래 모습과 달리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랑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강화도 남단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 전체 면적이 약 353㎢나 되는데 그중 여차리~동막리~동검리를 잇는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될 만큼 펄의 비율이 90% 이상인 생명의 보고다. 갯벌에 먹을거리가 지천이니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 겨울 철새가 이곳을 찾는 이유도 결국 먹고 살기 위한 자연스런 일상이자 반응이다.
보초를 서고 있는 해병대가 폐타이어로 길을 닦아 오르막이 비교적 편안하다.
산길 주변엔 해병대가 지키고 선 초소가 여럿이다. 보초를 서던 길을 개방했는지 길을 걷다보면 무장한 군인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수고한다는 격려에 돌아오는 웃음이 푸근하다.
수려함의 반은 볕이요 반은 물빛이라
산길을 벗어나면 바닷가 갯벌에 둑을 쌓은 방죽이 가지런하다. 잘 닦인 둑방길을 걷다보면 곳곳에 허옇게 얼어붙은 바닷물이 선명한데, 이곳이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포인트다. 들은 얘기도 있고, 살짝 장난기가 발동해 갯벌로 내려서니 밟히는 느낌이 마치 빙수처럼 서걱서걱하다. 몇 걸음 더 옮겨보니 정말 바다가 얼었는지 살짝 살얼음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 뒤로 펼쳐진 갯벌은 시선을 멀리 둘수록 더 멀리 치고 나간다. 썰물이 나간 자리가 어찌나 넓은지 배가 필요한 섬도 걸어서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방죽을 따라 좀 더 내려서면 무대처럼 꾸며놓은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일몰 조망지다. 강원도 정동진에서 뜬 해가 정서진인 강화도로 떨어지는데, 그 일몰의 풍광을 보려는 이들이 꼭 한 번 들른다는 명소다. 매년 12월 31일 즈음이면 카메라를 이고진 이들이 장사진을 친다는 이름난 출사지다. 또 하나 겨울철에 이곳을 찾는 이유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때문이다.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2400여 마리만 남은 희귀종인데, 하얀 몸통에 검정색의 다리와 부리가 멋스러운 겨울 신사다. 워낙 남은 수가 적어 직접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운을 시험해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자 이벤트다.
바닷가 반대편의 논 자락엔 ‘추억의 논 썰매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섰다. 겨울철이면 쉬는 논에 물을 대 얼린, 옛 방식 그대로의 얼음 썰매장이다. 재미도 재미지만 마니산과 바다를 앞뒤로 끼고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만만치 않다. 썰매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맛보는 뜨끈한 어묵이나 강화 특산품인 속노랑고구마 맛도 일품이다.
북일곶돈대 1679년 숙종 5년에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3도의 승군 8000여 명과 경상도 군위어영군사 4300여 명이 동원돼 쌓은 돈대 중 하나다. 미곶돈대, 장곶돈대, 검암돈대와 함께 장곶보에 속했다. 작시각형 구조로 둘레 122m.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곳과 치첩 32개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