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데이를 아시나요?”
국제자동차연맹(FIA)의 인증을 받은 서킷을 자신의 차량으로 달리는 ‘트랙데이’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취미 활동이다. 특히 국제 공인 규격의 서킷을 임대해 달리는 행사인 만큼, 소수의 자동차 마니아들과 국내 자동차 업체들만이 진행하고 있다. 이런 트랙데이를 과감하게 일반에게 공개한 이가 있다. 바로 플레이그라운드의 김종남 대표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플레이그라운드’는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일회성으로 그쳤던 트랙데이 행사를 연 단위로 개최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연 단위 서킷 주행 일정을 공개해 놓고 있는 업체는 플레이그라운드가 유일하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CJ그룹으로부터 국내 최대 규모의 모터스포츠 대회인 CJ오쇼핑 레이싱의 운영 대행을 맡아 모터스포츠 산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6년생, 올해 29살이란 어린 나이에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종남 대표를 지난 6월 전남 영암의 코리아인터내셔널 F1 서킷에서 만나봤다.
유학 시절 취미가 사업이 되다
“모터스포츠를 처음 접한 것은 유학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트랙데이를 자주 다녔었죠.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뒤에도 기업에서 개최하는 이벤트성 트랙데이는 가끔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는 완전히 달랐죠.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서킷에 비해 F1 경기장도 갖추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시설을 가진만큼,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즐길 만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가 할 일이라면 내가 제대로 해보자’라고 결심하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29살이란 나이보다 휠씬 더 어려 보이는 김종남 대표는 자신이 트랙데이를 시작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로체스터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갔을 때 접했던 트랙데이를 한국에서도 즐겨보자는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준비하던 그의 나이는 고작 27살이었다. 서킷 관리를 맡고 있는 관공서와 콧대 높은 모터스포츠 업체들 사이에서 트랙데이 행사를 짜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영암 F1 서킷은 전남도청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임대를 하려면 공무원들과 얘기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걸림돌이었어요. 갑자기 나타난 꼬마(?)가 연 단위 임대 요청을 하자 믿지 않으셨죠. 하지만 트랙데이 프로그램과 연간 단위 스케줄 등을 꼼꼼하게 준비해 보여드렸죠. 사업 초기에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일했는데, 6개월 동안 자동차 주행 거리만 8000km를 넘을 정도였습니다.”
서킷 임대라는 한 고비를 넘자 이번에는 고객 모집과 홍보라는 또 다른 벽이 그를 가로막았다. 당시만 해도 민간 업체가 트랙데이를 개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동차 회사나 관련 업체들이 트랙데이를 간간이 개최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고객 행사로 활용됐기 때문에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연간 단위 스케줄에 대해서는 모두들 낯설어 했다.
“2년 전만 해도 트랙데이는 기업체가 여는 행사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마니아들조차 행사가 과연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품었죠. 이때 주변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국내 유명 튜닝숍 사장님들이 저희가 운영하는 트랙데이를 홍보해 주셨습니다.”
어려움 이겨내고, 새로운 놀이문화로 확산 중
많은 난관을 뚫고 트랙데이 첫 행사가 개최되던 날 김 대표는 감격스러웠다. 그는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며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는 “초기에 진행했던 트랙데이 15회 중 절반 이상이 적자였다”고 말했다. 직원 월급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것은 물론, 건물 관리비조차 내지 못한 적도 있었다.
특히 그는 주변 사람들의 오해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힘든 일도 많았고, 주변에서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려웠던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플레이그라운드는 서서히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한 번 왔던 참가자가 다음에는 자신이 속한 동호회를 데려오고, 그 동호회원이 또 다른 참가자를 데려오는 식으로 참가자가 늘어났다.
“지난해에만 6000여 명이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등록된 정회원 역시 2000여 명을 넘어서면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방문율이 35%나 됩니다.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실제 그는 지난 6월 트랙데이 행사에서 서킷 행사 최초로 바이크 라이딩 타임을 적용했다. 안전장비를 모두 갖추고 서킷에서 제대로 바이크 라이딩을 즐기는 프로그램을 추가한 것이다. 그는 “바이크 라이딩은 처음 시도해 봤는데 반응이 좋아서 계속 진행할 생각”이라며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플레이그라운드의 문화를 유지할 계획이다. 그는 “취미가 사업으로 변한 것처럼, 플레이그라운드 역시 자동차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것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좋은 서킷에서 자신의 차량으로 최고의 주행을 즐기자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오시는 분들은 참가비 외에도 많은 비용을 스스로 지불합니다. 이분들 외에도 더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놀이터(플레이그라운드)’라는 저희 회사의 이름처럼 우리도 즐겁고 재미난 트랙데이를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