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던 등산로나 출퇴근 길을 거닐 때 예전과 달리 숨이 가빠진다면 단순히 나이만 탓할 것은 아니다. 자동차 엔진과 트렁크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몸의 ‘엔진’인 근육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지방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체력과 폐 기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장지방이 많고 근육이 부족하면, 높은 고도를 만난 자동차처럼 숨이 쉽게 가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정영주·김홍규 교수 연구팀은 성인 1만 5000여 명의 복부 CT와 폐활량 검사 수치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골격근량이 많고 내장지방이 적을수록 폐활량이 높다’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근감소성 비만’, 즉 근육량이 적으면서도 내장지방이 많은 상태라면 폐기능저하율이 건강한 신체(근육 많고 내장지방 적은 그룹)보다 최대 4배나 높게 나타났다.
폐기능 저하율은 ‘한국인의 표준화된 폐활량 수치와 비교했을 때 80% 미만’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똑같은 연령과 성별의 일반적인 예측치와 비교해 내 호흡 능력이 80% 이하면 저하 상태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근감소성 비만 집단이 이런 기준을 크게 벗어난다는 점이다. 남성의 경우 근감소성 비만 그룹의 폐기능 저하율은 19.1%로, 근육량이 많고 내장지방이 적은 그룹(4.4%)을 훌쩍 뛰어넘었다. 여성은 각각 9.7%, 3.1%로 나타나 그 차이가 3배 이상 컸다.
반대로 근육량 상위 25%이면서 내장지방 하위 25%에 해당하는 ‘가장 건강한 신체’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의 폐활량 지표는 눈에 띄게 높았다. 이들은 근육량이 가장 적고 내장지방이 가장 많은 그룹과 비교했을 때 3~5% 수준으로 폐활량이 높았는데,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근육을 늘리고 지방을 억제할 경우, 호흡 능력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연구팀이 제시한 노력성 폐활량(FVC) 예측치 백분율을 보면, 건강한 근육이 많은 최상위 남성 그룹은 92.4% 수준을, 최하위 그룹은 88.7%였다. 1초간 노력성 호기량(FEV1)도 마찬가지로 각각 93.7%, 90.6%를 기록해, 근육량이 풍부한 그룹이 상대적으로 3%포인트 이상 더 좋은 폐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최상위 그룹은 95.6%의 노력성 폐활량을 보였으며, 1초간 노력성 호기량 역시 95.7%에 달했다. 최하위 그룹(각각 91.9%, 92.8%)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내장지방이 쌓일수록 흉곽의 용적이 줄어들어 폐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장지방이 가장 많은 남성 그룹의 노력성 폐활량은 88.1%로, 가장 적은 그룹(93.1%) 대비 무려 5% 낮았다. 여성도 내장지방 최상위 그룹과 최하위 그룹 사이에 3.4%의 차이가 나타났다.
이처럼 내장지방이 여러 인체 장기에 압박을 주고, 염증 반응까지 유발해 호흡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부각됐다.
연구를 이끈 정영주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는 “폐 기능을 향상하고 싶다면 내장지방을 줄이면서 지방이 적은 건강한 근육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유산소 운동 위주로 체지방을 줄이되, 근력 운동을 병행해 골격근을 강화함으로써 심폐 능력을 고루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홍규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도 “비만인 경우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함께 해 주는 것이 폐 기능에 도움이 되고, 비만이 아닌 경우라면 건강한 근육 증진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년 이후 건강관리를 할 때, 주로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육 감소와 내장지방 증가는 단순히 대사성 질환의 위험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호흡 능력 전반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로 추가 확인됐다. 이는 “폐 건강을 위해서는 금연이 최우선”이라는 통념에 더해, “체성분 관리 또한 필수”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유럽호흡기학회에 발표된 데 이어, 미국흉부의사협회(American College of Chest Physicians)의 국제학술지인 ‘체스트(Chest, 피인용지수 9.5)’ 최근 호에 게재됐다.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체성분(근육, 내장지방)과 폐 기능을 CT 영상으로 분석한 국내외 드문 연구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더 나아가 이번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경제·사회적 차원에서의 파급력이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년층의 근감소성 비만 문제는 의료비 증가와 직결된다. 동시에 호흡기 질환이 악화되면 입원과 치료가 잦아지기 마련이고, 생산 가능 인구의 건강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이 제안하는 근육량 증진과 내장지방 억제 방안은, 개인의 의료비 절감은 물론 전체 보건 정책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과학적 근거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직장 검진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도 활용 가능하다. 단순히 체중·체질량지수(BMI)만으로 건강 상태를 판단하지 않고, 근육량과 내장지방을 주기적으로 점검함으로써 사내 복지와 종합 건강증진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40~50대부터 본격적으로 감소하는 근육량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내장지방이 쌓이지 않도록 꾸준한 신체활동과 영양관리를 실천하는 것을 권장한다. 등산이나 조깅 등 유산소 운동과 스쿼트·푸시업처럼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근력 운동을 병행한다면, 체지방 감소와 폐활량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