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후텁지근한 여름철. 이런 날씨엔 상다리 부러질 만큼 잘 차려 먹는 것보다 가볍지만 신선한 음식에 시원한 와인이나 샴페인을 곁들이는 게 제격일 것 같다.
마침 도자기 작가 이윤신 씨의 ‘이윤신의 이도’가 강남구 도산공원 가까운 곳에 브런치 & 다이닝 레스토랑을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잘 됐다 싶어 여름철에 어울릴 샴페인과 로제와인을 들고 ‘세라즈마노’를 찾았다. 수공예로 만든 멋진 도자기 그릇에 담긴 신선한 음식들은 눈부터 즐겁게 했다.
이날 와인은 여름철에 맞게 디켄터가 보르도의 가장 신뢰할 만한 와이너리로 꼽은 두르뜨의 뉘메로엥(N ° 1) 로제와 KGB란 별칭으로 불리는 3대 샴페인 중 하나인 고세의 그랑 로제 브뤼였다. 세라즈마노에선 두르뜨 로제와인엔 새우버거를, 고세 샴페인엔 들깨소스의 묵은지 샐러드를 각각 준비했다.
먼저 가볍게 두르뜨의 뉘메로엥 로제로 입가심을 했다. 마개를 따니 가벼운 장미향에 잘 익은 살구의 향을 섞은 듯한 아로마가 다가왔다. 한 모금 머금으니 신선한 과일향이 입안에 가득 찼고 이어서 살짝 고소한 너트의 맛으로 다가와 심심치 않은 와인임을 알리는 듯했다. 로제와인이 드믄 보르도에서 두르뜨 오너가 자신들이 마시려고 만든 와인답게 제법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기다란 사각 접시에 담긴 새우버거가 나왔다. 시장하던 참이라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다.
“아! 맛있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구운 빵의 안쪽에 스테이크 대신 새우를 넣었는데 새우 특유의 강한 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고소한 맛으로 다가왔다.
보통의 새우라면 맛이 튀어 다른 재료의 향미를 누를 수도 있을 텐데 전혀 튀지 않고 부드러워 곁들여 들어간 재료의 맛들이 하나하나 그대로 살아났다. 워낙 신선한 새우로 만들어서인지 새우를 구울 때 보통 느껴지는 강한 냄새가 아니라 싱싱하면서도 꼬들꼬들한 게 입안에 착 감기는 기분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더니 부드러운 새우의 맛이 오히려 음식 전체를 잘 살려낸 것 같았다. 아주 맛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떤 재료도 도드라지지 않게 멋진 조화를 이룬 접시였다. 곁들인 칩도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가벼운 음식을 우아하게 꾸며줬다.
거기에 두르뜨의 로제 와인을 곁들이니 맛은 한결 살아나면서도 입안 역시 개운했다. 음식이 강하지 않기에 가벼운 와인 한 잔으로도 입안을 싹 씻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를 그윽하게 채운 샴페인 아로마
다음 요리에 앞서 고세 그랑 로제 부뤼를 땄다. 마개를 열자마자 그윽한 샴페인의 아로마가 피어올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기분이 달아오를 정도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살짝 한 모금 머금으니 아주 미세한 버블이 입안 전체를 기분 좋게 자극했다. 그 기분을 느끼며 묵은지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깨끗이 씻은 뒤 잘게 썬 배추김치에 절인 배와 밤, 대추, 부추, 볶은 쇠고기, 오이 등을 넣고 겨자를 곁들인 들깨소스로 버무려냈다는데 신선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재미있었다. 아주 살짝 매콤함이 느껴졌지만 맵다는 생각보다는 단순하지 않고 입맛을 살리는 맛이라고 여겨졌다.
김치의 상큼함을 살려낸 한식 샐러드라서인지 개운한 데다 고소하고 또 살짝 달달함까지 갖춰 외국인들도 즐길 만했다. 소스는 겨자가 들어갔다지만 들깨와 들기름의 고소함이 어우러져서인지 강한 머스터드 맛은 숨고 아주 부드럽고 고소한 맛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높은 산도 때문에 신선하면서도 살짝 구은 빵 냄새가 날 만큼 고소한 느낌까지 드는 고세 샴페인과 멋지게 조화를 이뤘다. 음식에 곁들여 나온 빵은 향신료를 넣은 듯 허브향이 느껴져 역시 신선했다. 가벼운 식사였지만 기분 좋은 맛에 신선한 와인까지 더해져 기분은 한껏 달아올랐다.
세라즈마노도산공원 건너 편, 학동사거리 가까이에 있는 퓨전 레스토랑이다. 이윤신 작가가 작품 홍보를 겸해서 운영하는 만큼 멋진 그릇에 담긴 요리를 만나게 되며 가격도 합리적인 편. 한식 재료를 가미한 이탈리안 식단이라 누구든 반길 만하다. 1~2층이 레스토랑이며 3층엔 작품 전시판매장이 있다. 다수의 와인을 갖추고 있는데 산지를 가리지 않고 5만원, 8만원과 프리미엄 와인으로 구분해놓아 손님들이 편하게 고를 수 있게 했다. 1599-5263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