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추석이 다가온다. 모두가 바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이날만큼은 가족 친지가 한데 모여 한상 가득 차려놓고 풍요로운 시간을 나누게 된다. 그 자리에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곁들이면 분위기는 절로 달아오른다. 오랜만에 만났더라도 와인 얘기부터 꺼내면 대화는 술술 풀릴 것이다.송편엔 크리미한 질감의 샤르도네
송편은 찹쌀 아닌 멥쌀로 만들어 담백한 맛을 낸다. 거기에 해콩이나 팥, 통깨, 삶은 밤 등 들어가는 소에 따라 고소하거나 살짝 달콤하기도 하다. 솔잎으로 쪄내면 특유의 향긋한 풍미를 풍기는데 살짝 바른 참기름이 특유의 고소함을 더한다. 기름기가 있는데다 설탕으로 맛을 낸 케이크와는 다른 은은한 단맛엔 어떤 와인이 맞을까.
과일향이 풍부하면서도 약간 상큼한 적당한 산도의 와인을 찾아보자. 샤르도네 중에서도 오크통에 숙성해 살짝 바닐라향이 나면서 크리미한 터치라면 제격일 듯. 샤르도네의 과일향이 송편의 달콤함을 풍부하게 하고 상큼한 산도는 송편의 담백한 맛을 돋보이게 할 것이다.
쿠지노 마쿨 안티구아스 리제르바 샤르도네는 파인애플과 멜론향에 살짝 바닐라와 토스트한 풍미가 더해져 송편과 곁들이기에 좋다. 특히 토스트한 여운은 송편의 기름기를 덮어줘 담백한 맛을 살려낸다. 그냥 마셔도 좋은데 뚜껑을 연 뒤 30분 정도 두면 망고와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의 향이 피어오른다. 갖가지 소를 넣은 송편과 함께 하면 그때그때 색다른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잡채엔 온갖 재료의 맛 살려주는 깔끔한 화이트 와인
이름 그대로 온갖 다양한 재료들이 만나 오밀조밀 사이좋게 서로의 맛을 살려주는 잡채. 진짜 잘 만든 잡채라면 당면이며 고기며 버섯 등 어느 하나라도 튀지 않아야 한다. 들어가는 재료들이 각각의 맛을 낼 때 복합적인 풍미가 살아있기 때문. 그러기에 팬에 볶아내되 기름이 강해도 안 되고 양념이 너무 세서 다른 재료의 맛을 눌러도 안 된다. 살짝 담백한 느낌의 풍미가 최선이라고나 할까.
거기에 곁들일 와인 역시 들어가는 각각의 재료와 궁합을 이뤄야 한다. 그러기에 너무 강하거나 진하지 않으면서 연한 꽃내음을 풍길 듯 부드러운 풍미의 화이트 와인이 제격일 듯하다. 자칫 살짝 두른 기름 때문에 입안에 남을 수 있는 느끼함까지 말끔히 제거해 다음 젓가락을 가볍게 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의 토종 품종인 투르비아나로 만든 화이트 와인 제나토 루가나는 풍부한 산도가 상큼함을 더해주는 고급 화이트 와인. 은은한 허브 아로마에 아몬드 맛이 더해져 잡채의 고소한 참기름향과 조화를 이룬다.
불고기엔 탄닌… 카비네 소비뇽&피노누아
추석에 자주 접하는 불고기는 단순한 고기가 아니다. 배와 간장 양파 등 다양한 양념을 곁들여 복합적 풍미를 풍기는 우리 고유의 요리다. 그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맛엔 역시 화려하고도 복합적인 풍미의 와인이 제격. 게다가 한 잔 마셨을 때 고기 특유의 잡냄새를 말끔히 씻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보통 불고기는 얇게 저민 쇠고기 안심이나 등심을 양념에 충분히 재워 숙성시킨 후 굽기에 구수함이나 달콤함이 고기의 육질만큼이나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래서 레드 와인이되 너무 무겁거나 강한 것보다 중간 정도 바디감에 균형이 잘 잡힌 게 좋다. 매끄럽게 넘어가면서 살짝 과일향이 살아 있는 카비네 소비뇽이나 피노누아라면 고기 맛을 살려주면서도 뒤에 남을 느끼함까지 씻어줄 것이다.
베르누스 카비네 소비뇽은 카비네 소비뇽과 시라, 쁘띠 베르도 품종의 포도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처음엔 체리나 자두 등의 과일향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목으로 넘기면 백리향 같은 달콤함에다 스모키한 느낌에 박하 아로마가 실려온다. 오크통에서 잘 녹아든 탄닌과 토스트한 풍미가 농익은 과일향과 조화를 이룬다. 와인의 부드러운 느낌이 불고기의 부드러운 맛과 궁합을 이루면서도 입안을 상큼하게 씻어주는 탄닌과 허브 아로마가 기분까지 좋게 한다.
갈비찜엔 농축미 강한 맛의 카비네 소비뇽
갈비찜엔 보통 고기양념에다 밤이나 대추 등 담백한 단맛을 더하는 열매가 추가된다. 게다가 오래 조리기에 국물도 농축된 맛을 내고 입안을 가득 채울 만큼 도톰한 고기라도 아주 부드럽게 씹힌다.
잘 숙성돼 탄닌이 매끄럽고 과일향이 살짝 풍기는 부드러운 레드 와인이 제격인데 가급적 오래 묵은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로 담가 세월만큼이나 농익은 과일향이 느껴지는 카비네 소비뇽이라면 아주 잘 어울릴 듯.
산타 헬레나 100+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00년 넘은 포도나무 열매로 담근 와인이다. 1910년 칠레 안데스 산맥 산자락에 있는 10헥타르 남짓한 포도밭에 심은 올드 바인에서 딴 카비네 소비뇽만으로 만든다. 나무 수령만큼이나 깊이 있는 맛이 느껴지는 와인이다.
낮은 알코올 도수 덕분에 첫 느낌은 부드럽지만 입안을 가득 채우고도 길게 여운으로 남는 풍부한 과일향과 거기에 조화를 이룬 복합적인 아로마, 비단처럼 부드럽게 녹아든 탄닌이 밤 대추로 깊이를 더한 갈비찜의 은은한 맛과 잘 어울린다.
육전(혹은 동그랑땡)엔 강한 풍미의 레드 와인
추석에 흔히 접하는 육전은 양념을 하고 고명까지 얹지만 간이 속까지 배지는 않기에 육류 특유의 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식 육류 요리와 잘 어울리는 강한 바디감의 드라이한 와인이나 과일향이 살아있으면서도 탄닌이 도드라진 레드 와인과 궁합을 이룬다. 스페인의 템프라니요나 그라브 와인, 까베르네 품종으로 만든 슈퍼 토스카나 계열 와인이 특히 좋을 듯.
마르께스 데 리스칼 레세르바는 스페인 왕실 공식 와이너리의 와인으로 석회질 점토 덕에 산도와 탄닌이 뛰어난 리오하에서도 가장 우수한 포도밭에서 15년 이상 자란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템프라니요를 주축으로 빚어낸다. 그라시아노와 마주엘로 품종을 살짝 블렌딩했는데 상큼한 느낌의 산도와 섬세한 탄닌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자두와 올리브 가죽 등의 풍미가 복합적으로 풍겨 고기 맛을 살려주면서도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준다.
한편 야채나 해산물로 만든 전에는 산도가 비교적 낮고 오크통 숙성을 한 부드러운 샤르도네도 좋다.
한과, 달콤한 음식에 맞는 소테른 와인이나 아이스 와인
추석엔 조청으로 만든 한과를 준비하는 집이 적지 않다. 흔히 식후 디저트로 즐기지만 오랜만에 가볍게 들르는 친구나 친지에게 과일과 함께 내는 음식이기도 하다.
살짝 달되 너무 달지는 않은 한과엔 보통 화이트 와인보다는 조금 더 단 소테른의 스위트 와인이나 그보다 한 단계 더 달콤한 아이스 와인이 어울린다. 특히 저녁 식사 뒤에 마신다면 달콤한 밤을 안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
필리터리 에스테이트의 비달 아이스 와인은 2009년 코리아 와인 챌린지에서 금상을 받은 밝은 금빛의 와인으로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향과 함께 버터가 들어간 캔디나 오렌지 마멀레이드 느낌이 어우러진 우아한 향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