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소리에 깼는데 몸에 힘이 없는 거예요.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안 되겠어. 출근해서 근처 병원에 갔더니 간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왜 이제 왔냐고…. 얼마나 놀랐는지 눈물이 찔끔 나옵디다. 그길로 한 3일 입원했어요.”
한동안 회자되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관식의 애칭이 무쇠였던가. 지인들에게 원조 무쇠라 불리던 양부장의 후회 섞인 한탄이 가파른 골짜기를 기어올라 오뚝한 봉우리를 탁 치고 내려왔다.
“병원에서 혼자 별 생각을 다했어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아내, 아이들 얼굴도 떠오르고…. 몸 생각 안하고 너무 빨리 달려온 건가 싶기도 하고.” 20대 후반에 입사해 한 우물 판 지 십수 년. 지난해 동기보다 빠르게 부장 직함을 단 그는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해야만 나와 가족이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는게 이어진 그의 푸념이다. 건강 챙긴다며 한 일이라곤 영양제 몇 알이 전부였다. 그런데 잠깐, 주거니 받거니 말꼬리가 이어졌지만 뭔가 허전했다. 그도 그랬는지, 뜸들이다 툭 털어 낸 속내에 말한 이나 듣는 이 모두 한동안 하늘만 쳐다봤다.
“그런데 말이죠. 한 이틀 누워 있었더니 어제 오늘 못한 일들이 떠오르더라고. 이러다 실적 떨어지면 어쩌지, 그러고 있더란 말이에요. 나 참, 이거 잘 살고 있는 겁니까.”
“서울 사람들은 남산타워에 자주 안 간다죠? 울산도 그래요. 아마 울산보다 다른 지방에서 온 분들이 많을 걸요.”
앞서가던 한 무리의 일행 중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의 설명에 주변을 돌아보니 옷차림부터 억양까지 서로 묘하게 다르다. 어쩌면 전국 각지의 관광객이 한 곳에 모인 것처럼 제각각이다. 울산 제일의 명소란 말이 고스란히 입증되는 순간이랄까. 시원한 바닷바람에 솔 향기 은은한 울산 대왕암공원에 섰다. 지도상에서 동남단으로 가장 뾰족하게 튀어나온 끝부분에 자리한 이곳은 94만 2000㎡의 공간에 600여m의 송림길과 해안 둘레길을 품은 보석 같은 산책로가 일품이다. 갖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전설바위길’, 1만 2000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 ‘송림길’, 사계절 다른 꽃이 객을 맞는 ‘사계절길’,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바닷가길’ 등 4가지 코스가 마련돼 있는데, 어느 쪽으로 나서도 서로 이어지고 어우러지며 약 두어 시간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좋은 건 함께 즐겨야 기쁨이 두 배라 했던가. 그런 이유 때문인지 평일에도 꽤 많은 이들이 찾은 공원 곳곳엔 홀로 나선 이보다 함께 걷는 이들이 많다. 특히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종종 눈에 띄었다.
2021년 7월에 개통한 울산의 첫 출렁다리도 대왕암공원에 있다. 총 길이 303m로 바다 위 40여m 지점에 설치됐는데, 대왕암공원의 바닷바람이 깊고 강해서인지 생각보다 아찔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장은 오후 5시 40분까지) 이용할 수 있는데, 바람이 심하거나 태풍이 오는 날엔 입장할 수 없다.
‘울산의 끝’이란 뜻의 울기(蔚埼)등대도 빼놓을 수 없는데, 1906년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설치한 등대로 알려졌다. 이후 해송들의 키가 자라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 1987년 12월, 기존 등대에서 약 50여m 이동해 촛대 모양의 등대를 새롭게 세웠다. 현재 기존 울기등대는 등대문화유산 제9호이자 등록문화제 제106호로 보전돼 있다. 울기(蔚埼)란 명칭도 일제의 잔재란 의견에 2006년 등대 건립 100년을 맞아 울기(蔚氣·울산의 새 기운)로 변경됐다.
무엇보다 웅장한 건 바다와 맞서고 있는 대왕암의 모습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부터 이채롭다. 기암괴석, 커다란 바위를 기둥 삼아 놓인 철교를 건너면 대왕암에 닿게 되는데,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이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에는 세상을 떠난 신라 문무왕의 뒤를 이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동해의 호국룡이 되고자 했던 문무대왕비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사진 · 글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