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그거 먹는 건가요?’
과거 주방은 금남의 공간이었다. 하나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간혹 ‘남자가 쪼잔하게 어떻게 주방에 들어가니?’라는 호기 넘치는 말을 던지는 이가 있다면 금세 무리에서 원시 야만인 취급을 당하거나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바야흐로 남성의 요리를 원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늦은 결혼적령기로 싱글족이 하나의 라이프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으며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 남성들의 주방 출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TV드라마에서 여성을 위해 요리하는 훈남은 더 없이 세심하고 로맨틱하게 그려진다. 마초스타일의 ‘짐승남’이 지고 ‘부드러운 훈남’이 대세로 떠오른 것도 시대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 예비신랑은 예비신부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은퇴한 중장년층은 ‘삼식이(직업 없이 집에 있으면서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는 사람)’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아빠는 바쁜 엄마 대신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싱글남들은 지겨운 MSG를 피해 웰빙 식단을 사수하기 위해 목적은 다르지만 요리학원의 문을 노크하는 남성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넵스의 트랜스포머형 주방 인테리어 ‘에센셜(Essential)’
남성의 색을 입은 주방 인테리어
주방이 평등한 공간으로 떠오르자 남성들의 홈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멋진 주방을 꿈꾸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인테리어 기업들도 남성들을 타깃으로 한 디자인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샘 관계자는 “대부분의 여성 고객들은 밝고 화사한 컬러 톤의 디자인에 아기자기한 수납 공간을 중요시하는 반면 남성 고객들은 과감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고성능을 자랑하는 기기에 관심이 많다”며 “마치 자동차를 선택하듯 세부 편의 기능에 대해 꼼꼼히 따지고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트랜스포머형’ 주방에 대한 관심도 높다. 넵스가 선보인 에센셜(Essential)은 주방가전이 평소에는 고급 프레스티지 가구와 같은 모습을 띠지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슬라이딩 상판이 오픈되었을 때는 개수대와 쿡탑, 칵테일 바로도 손색없는 홈바 공간이 열린다.
작은 공간에서 지내는 싱글족들을 위한 올인원 스타일의 주방도 인기다. 넵스의 ‘나의 이야기’에 포함된 ‘주방 안의 주방’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을 자랑하지만 싱크볼과 쿡탑, 슬라이딩 서랍과 간이 식탁 등 작은 공간에 꼭 필요한 주방 기능을 고스란히 담았다. 도어를 안쪽으로 감추는 포켓 도어로 설계돼 심플하고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다.
현대카드와 이마트의 ‘오이스터 프로젝트’의 주방용품
왜 주방 고무장갑은 붉은색일까?
제아무리 멋진 셰프가 흰색 모자에 앞치마를 둘러도 붉은색 고무장갑은 좀처럼 소화하기 힘들다. 집안일을 분담하는 자상한 남성들도 붉은색 고무장갑을 착용한 채 현관 밖으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러 가는 일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붉은색 고무장갑이 대세를 이루게 된 데는 김치 등 고춧가루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 우리나라 음식의 특성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붉은색 양념이 고무장갑에 배었을 때 가장 티가 덜 나는 색깔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 고무장갑의 붉은색 컬러가 지닌 실용적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일반 가정의 주방에서 고무장갑은 주로 식기나 주방용품을 세정할 때 사용되고, 집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김장을 담그거나 양념을 버무리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현대카드와 이마트는 ‘오이스터(OYSTER) 프로젝트’를 통해 고무장갑의 색을 바꿨다. 주방의 시각적 조화를 깨뜨리고 있던 붉은색을 버리고 오렌지와 네이비, 베이지 컬러로 구성했고 앞치마와 행주, 오븐글러브 등도 남녀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제작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지난 2월 말, 1차로 출시된 고무장갑과 수세미, 행주, 앞치마 등 6종의 제품은 출시 초기부터 첫 제작 물량이 매진되는 등 특히 남성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