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동일본 대지진 10년, 아직도 4만 명 피난생활… 피해복구에 39조엔 들였지만 복구 지지부진
김규식 기자
입력 : 2021.03.29 11:02:55
수정 : 2021.03.29 11:03:09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초의 옛 마을 방재청 주변으로 사이렌소리가 울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묵념을 한다. 정확히 10년 전 같은 시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지진해일)로 43명이 희생된 곳이다. 참석자 중 한 명은 “지금도 친구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친구의 몫까지 잘 살아야겠다”며 울먹인다.
같은 시간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한 초등학교 자리에서는 희생자의 가족 등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때 어린이와 직원 등 84명이 사망했거나 행방불명된 곳이다. 희생자의 부모는 “방재교육이 제대로 됐었다면, 지켜줄 수 있었을 텐데”라며 비통해한다. 이와테현의 미야코시 한 지역의 방조제 위에서 주민들이 181개의 풍선을 날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10주년을 앞둔 3월 3일 일본 후쿠시마현 도미오카마치에 오염제거 작업으로 수거한 토양과 풀 등을 담은 커다란 검은 자루가 쌓여 있다.
이 지역에서 희생된 181명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서 전한 동일본 대지진 10년의 모습이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미야기현의 앞바다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고 곧이어 10m가 넘는 쓰나미가 들이닥쳐 해안가 마을을 집어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쓰나미는 바다에 인접해 있던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도 덮쳤고 연료봉이 들어있는 노심이 뜨거워져 녹아내리는 ‘노심용융’과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끔찍한 재난의 현장이 현실에 나타났고 TV로 이를 지켜보던 전 세계가 공포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상흔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복구작업이 진행돼 왔지만, 아직도 피해지역에서는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떠났던 주민이 돌아오지 않아 예전 인구의 30%도 회복하지 못한 곳이 많다. 일본 대지진으로 사망한 사람은 올해 3월을 기준으로 1만5899명이고 행방불명은 2526명. 피해 직후 47만여 명에 달했던 피난주민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4만여 명이 피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진 당시 쓰나미에 침수됐던 피해지역은 6개 현, 535㎢에 달했다. 전파·반파된 주택은 40만5117호에 달했고 도로 등 인프라도 견뎌내지 못했다.
▶1만8000여 명 사망·행방불명
이와테·후쿠시마 해안지역 지진 발생 전 인구 회복 못해
일본 정부는 2011년부터 피해지역 복구에 나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복구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집중 부흥기간(2011~2015년) 27조6000만엔 ▲제1기 부흥·창생기간(2016~2020년) 11조2000만엔이다.
10년간 투입된 정부예산이 38조8000억엔에 달하는 셈이다. 올해부터 5년간은 제2부흥·창생기간으로 1조6000억엔 정도가 투입된다. 그동안 재해공영주택 3만 호와 고지대 등으로의 이전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재해집단이전’ 1만8000호가 공급됐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피해가 컸던 3개 현(미야기·이와테·후쿠시마)에서 정비한 제방은 386㎞로 도쿄~오사카 거리랑 비슷하다. 이들 3개 현의 19개 기초지자체에서 주택지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대를 높이는 데 쌓아올린 흙만 도쿄돔 27개 분량에 달하는 3359㎥이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0년이 돼가며 복구작업률은 높아져 왔지만, 피해지역의 상흔은 남아있다. 떠났던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아 3개 현의 해안지역에서 인구가 줄어든 것이 이를 보여준다. 이와테현의 해안 12개 지역의 지난해 인구는 동일본 대지진 전인 2010년에 비해 16.9% 줄어든 23만5198명에 그친다. 후쿠시마현 해안 10개 지역 인구도 11% 줄어 47만7834명에 그쳤다. 미야기현의 15개 지역의 인구는 1% 줄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피난지시가 내려졌던 지역은 피난지시구역에서 해제된 후에도 주민들의 복귀가 많지 않다. 후쿠시마현 도미오카마치의 경우 동일본 대지진 전 1만5830명이었던 인구는 현재 1576명에 그친다. 산술적으로 보면 돌아온 주민이 10%가량에 그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지난해 이 지역 주민이었던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돌아가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이 65.7%, 돌아가겠다고 한 비율은 17.5%였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의 인구는 동일본 대지진 전 1만4281명에서 지금은 4305명이다. 인구회복률은 30.1%이다. 후쿠시마 원전도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이다. 사고 수습에 22조엔을 배정하고 10년을 수습해왔지만, 폐로(원자로의 해체)작업은 늦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비용은 늘 수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동일본 대지진의 진동은 견뎌냈지만 최고 13m 높이에 달했던 쓰나미에 허점을 드러냈다. 발전소로 밀려온 바닷물에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면서 냉각수 공급이 끊겨 연료봉이 들어있는 노심이 뜨거워져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발생했다. 이후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세슘과 요오드 등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방출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6기 중 1~4호기가 침수됐고 1~3호기의 노심용융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폐로작업의 목표로 잡은 건 2011년 말부터 30~40년(2041~2051년).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방사능 수치를 낮추는 제염작업이나 일부 사용 후 연료봉을 반출하는 작업 등을 진행해왔다. 당초 올해부터 폐로작업의 핵심 중 하나인 연료 데브리 반출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작년 말 이를 1년 미루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데브리 반출에 사용될 원격조정 로봇팔의 제작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데브리(Debris)’는 잔해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연료 데브리는 녹아내린 연료와 금속 등이 엉겨 붙은 방사성 물질 덩어리로 고선량의 방사선을 내뿜는다.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는 800~900t의 연료 데브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일본 정부가 폐로작업만큼 고심하는 게 하루 140t가량 쌓이는 ‘오염수’ 처리문제이다. 도쿄전력은 사고 이후 뜨거워진 노심을 식히기 위해 원전 내부로 많은 냉각수를 부었고 이후 빗물·지하수가 흘러들면서 방사성 물질이 섞인 오염수가 하루 140t가량 나오고 있다.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를 통해 오염수에서 62종의 방사성 물질을 정화시킨 뒤 원전 용지 내에 건설된 1000여 개의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원전을 계속 활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진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모습.
하지만 오염수에는 기술적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방사성 물질 트리튬(삼중수소)이 남아 있다. 또 보관 중인 처리수 중에는 방사성 물질의 오염 농도가 방출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0여 개의 탱크에 보관할 수 있는 오염수 용량은 137만t이고 현재 탱크 91%가량이 가득 찼다. 내년 가을이면 모든 탱크가 가득 차 더 보관할 곳이 없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작년 가을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방안을 고민했지만 해당 지역 어민·주민들의 반발과 한국 등 국제사회의 반대에 부딪쳐 보류한 상태이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최근 동일본 피해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오염수 처리에 대해 “언제까지나 결정하지 않고 미뤄서는 안 된다”며 “적절한 시기에 정부가 책임을 지고 처분 방법을 결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상흔이 남아있지만, 일본은 탈(脫)탄소 시대의 현실적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계속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그린 성장전략’에 따르면 2050년 전력원을 ▲재생에너지(해상풍력 등) 50~60% ▲화력·원자력 등 30~40% ▲수소·암모니아 10% 등으로 구성하는 게 목표이다. 일본의 그린성장 전략에는 ‘원전은 안정적으로 탄소중립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한때 모든 원전이 멈춰 섰고 현재 재가동되고 있는 건 9기 정도이다. 오치 히토시 게이단렌 부회장은 원전과 관련해 “(공급안정·경제효율·환경 면에서) 밸런스가 뛰어나다”며 “원전의 신·증설과 개축 등을 정부방침에 넣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