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들으면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베트남의 1인당 GDP는 지난해 기준 2587달러로 아직 3000달러 고지도 밟지 못한 상황이다. 1인당 GDP 3만달러 고지를 넘은 한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고급차 브랜드인 마세라티는 지난 2015년 12월 베트남에 고급 스포츠카 신형 모델 4종을 선보이며 시장 진출에 나섰다. 빈부격차가 큰 베트남 특성상 고급차 수요가 향후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택시를 타고 하노이 거리를 나가보면 벤츠, BMW 같은 독일차는 물론이고 이보다 한 단계 더 비싼 것으로 인식되는 포르쉐와 마세라티 벤틀리를 비롯한 슈퍼카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하노이에는 포르쉐와 마세라티 매장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하노이 최고 분양가로 거래된 빈홈메트로폴리스가 주인공이다. 지난 2016년을 기점으로 분양에 나섰던 이 아파트는 계약면적 120㎡짜리 아파트 분양가가 100억동(약 5억800만원)에 팔려나갔다. 베트남에서 표시되는 계약면적이 한국의 공용면적보다 실사용면적(전용면적) 비율이 조금 높긴 하지만 이 아파트는 단순 계산으로 3.3㎡당 1400만원을 호가하는 분양가에도 완판 랠리를 펼친 것이다. 외국인에게 거래되는 물량 기준으로는 이보다 비싼 가격에 프리미엄을 주고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분양가가 비싼 덕에 월세로 거래되는 빈홈메트로폴리스 시세는 상상 초월이다. 통상 베트남 아파트 월세는 노옵션과 풀옵션으로 나뉜다. 노옵션은 한국의 임대 문화와 흡사하다. 집 안에 소파 침대 식탁 TV를 비롯한 가전이 일체 없는 월세 거래를 말한다. 반면 풀옵션은 당장 몸만 들어가 살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을 구비해 놓은 아파트를 말한다. 한국으로 치면 풀옵션 오피스텔을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집주인 부담이 큰 풀옵션 아파트가 노옵션에 비해 높은 월세를 받는다.
하노이시의 초고층 빌딩인 ‘랜드마크 72’
최근 이 아파트의 방 3개짜리 120㎡ 풀옵션은 높게는 월세 2100달러(약 249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146㎡ 방 4개 아파트 풀옵션은 작게는 월 2400달러(약 284만원), 많게는 3200달러(약 379만원) 선이다. 노옵션 물량의 경우 120㎡ 아파트가 월 1700달러, 115㎡ 물량이 월 1600달러에 나와 있지만 비싼 건 마찬가지다.
하노이의 모든 아파트가 이 수준으로 비싼 건 아니지만 예상보다 비싼 월세로 인해 많은 한인들이 정착 초기에 당황하는 사례가 많다. 하노이는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라 불릴 정도로 곳곳에서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한인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는 많아야 10여 개 수준이다. 특히 가족 동반으로 하노이에 발령받은 주재원들은 거의 비슷한 곳에 거주하고 있다. 아이들 통학 버스와 국제학교 위치, 한인 인프라 등을 고려하면 선택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나 홀로 주재원, 혹은 사업차 베트남에 혼자 나와 있는 기업인들은 집 선택의 폭이 넓지만 가족들을 고려하면 한인 입장에서 살 만한 아파트 단지가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
자녀가 중학생 이상으로 학원을 많이 다녀야 하는 한인 중에 경남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경남기업의 고(故) 성완종 회장의 역작으로 불리는 하노이 최고층 복합단지 하노이랜드마크72에 속한 아파트다. 72층짜리 업무용 건물에는 우리은행, 신한은행, 미래에셋자산운용, IBK기업은행을 비롯한 한국 기업 오피스가 즐비하다. 베트남 현지인 사이에서 ‘코리안 캐슬’이라 불릴 정도로 한인 색채가 강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대표적인 한인촌인 ‘미딩’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각종 학원이 미딩에 몰려있기 때문에 경남아파트에 살면서 학교를 마치고 자녀가 손쉽게 학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학업성취도가 중요시되는 중학생 이상 학부모 사이에서 경남아파트는 선호도가 높다. 이곳 방 3개짜리 풀옵션 아파트 월세는 월 1300~1500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방 4개짜리 160㎡ 아파트가 월 1700달러 선에 매물로 나와 있다. 싸게 나온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빌려도 한 달 월세가 150만원을 넘는 셈이니 부담이 만만찮은 셈이다.
한인이 찾는 단지 중 하나로 경남아파트 인근에 있는 골든팰리스의 수요도 많다. 이곳 상가동에는 한인이 경영하는 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에는 규모가 매우 큰 K마트가 있다. 식당가 역시 한국 음식을 많이 판다. 한인이 경영하는 세탁소도 여기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 방 3개짜리 풀옵션 월세는 약 1100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방 4개짜리 풀옵션 월세는 월 1400달러 전후에서 거래된다.
하노이 영국-베트남 국제학교
최근 미딩에서 새로 완공한 빈홈스카이레이크 역시 월세 가격이 높은 편이다. 이곳 역시 한인촌 미딩을 쉽게 오갈 수 있어 한인 수요가 늘고 있다. 방 3개짜리 120㎡ 풀옵션 아파트 월세가 월 1600달러 수준이다. 방 4개를 포함한 140㎡ 풀옵션 아파트는 2500달러까지 올라간다.
미딩 외곽쯤에 위치한 빈홈가드니아도 한인들이 주로 찾는 아파트 중 하나다. 나지막한 건물이 유럽식으로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고급 빌라단지 느낌이다. 고층으로 쭉쭉 올라간 하노이 시내 여타 아파트 단지와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 방 3개 풀옵션 아파트에 살려면 월세 약 12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미딩 이전 제1 한인타운이었던 중화에 위치한 만다린은 역시 고급 아파트 축에 속한다. 바로 옆에 현지 유명 사립초등학교인 브렌든이 있는 아파트로 방 3개짜리 135㎡ 풀옵션 월세는 1400달러 정도다.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는 로열시티아파트를 자주 찾는 경향이 있다. 지하 1~2층에 대규모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고 4400가구에 달하는 대단지 아파트다. 아이스링크, 볼링장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지상에 대규모 광장이 조성돼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상가와 광장을 오가며 놀거리를 찾아줄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이 알려져 전체 가구 수의 10%가 넘는 500가구 이상의 한인이 로열시티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있다. 또 단지 안에 국제학교인 BVIS가 자리 잡고 있어 이곳에 살면서 도보로 학교를 보내는 한인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한인 식당이 부족하고 한인만을 위한 인프라는 부족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거의 대다수는 어린아이를 동반한 주재원이다. 이곳 월세는 방 3개 풀옵션 기준 1200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중화, 미딩에 이어 ‘제 3의 한인타운’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은 ‘골드마크시티’라는 아파트다. 가구 수만 5500가구에 달하는 대단지다. 한국국제학교와 멀지 않은 데다 비교적 싼값에 분양가가 책정된 덕에 월세도 그에 비례해 저렴한 편이다. 방 3개짜리 풀옵션 아파트를 월 1000달러 미만에 구할 수 있다. 한국마트를 비롯한 편의시설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외에 ‘미딩 펄’ ‘탕롱넘버원’ ‘빈홈가드니아’ 등 단지를 선택하는 한인들도 있는데, 월세는 앞서 거론한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하노이에서 4인 가족이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살기 위해 적어도 월 130만원 안팎의 주거비용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증금은 한두 달치 월세로 갈음하는 문화 덕에 큰 부담은 없지만 매월 빠져나가는 고정비용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웬만한 서울 아파트 월세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민들 사이에서는 “하노이에서 한국 사람처럼 살려면 한국보다 돈이 더 든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한국 마트에서 파는 생필품 가격 역시 관세 등이 붙는 탓에 한국 마트대비 높은 가격표가 붙어 있다. 한국 사람이 탈 만한 대중교통이 전무해 어딜 가려면 차를 렌트하거나 택시를 불러야 한다. 한 교민은 “생활물가만 봐서는 베트남 1인당 GDP가 한국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실감하기 힘들다”며 “베트남 물가가 막연하게 쌀 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이 이주 후에 고충을 털어놓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