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 공사가 내수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최근 들어 교통 인프라스트럭처(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 국민들의 체감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오늘날 미국에는 400만 마일(640만 킬로미터)이 넘는 도로와 60만 개의 교량이 있다.
그야말로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미국 전역에 연결돼 있다. 그러나 미국 교통 SOC의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연방정부는 물론이고 각 주(州)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교통 SOC 투자를 점점 줄여왔기 때문이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체 도로의 65%가 양호하지 못한 상태이며, 25%의 다리는 심각한 수리가 필요하거나 현재 교통량에 대처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낡은 교통 SOC가 미국 국민들에게 어마어마한 비용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매년 55억 시간을 교통체증 때문에 허비한다. 낭비하는 시간과 기름값을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1200억달러(약 122조원), 통근자 한 명당 800달러(약 81만원)에 달한다. 기업들이 짊어지는 부담도 엄청나다. 낡은 도로와 다리 때문에 매년 270억달러(약 27조5000억원)의 운송비를 추가로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추가비용의 대부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낡은 교통 SOC는 미국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다보스포럼이 산정, 발표하는 미국의 도로 수준은 지난 10년 동안 세계 7위에서 18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버지니아 주 매클린에 위치한 터너-페어뱅크 고속도로연구소를 방문했다.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와 연방정부 연구원이 인공지능이 탑재된 ‘스마트카’를 공동 연구하는 곳이다. 소매를 걷어붙인 와이셔츠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그는 “왜 미국이 교통 SOC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지 말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일자리와 더 나은 미국을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인 공화당에 비난을 퍼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교통 SOC 투자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는 교통 SOC를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노력했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공화당을 압박한 것이다. 그는 “(공화당의 반대로) 고속도로 신탁기금이 바닥나면 70만 개의 일자리와 10만 개의 교통관련 프로젝트가 위기에 처한다”며 “국민이 나서서 워싱턴 정치권에 할 일을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을 ‘교통 천국’으로 만들어 놓은 주인공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5년 연두교서에서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고속도로 시스템은 미국의 인구 증가와 경제 확장 그리고 국가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비전에 따라 미국은 전국 곳곳에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 : 실제로는 여러 주를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깔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 시대의 고속도로 투자는 미국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일자리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가계소득 증가로 미국 내수시장의 덩치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사실 교통 SOC 투자 확대가 필요하며,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미국 내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4월 획기적인 교통 SOC 투자 확대 방안을 의회에 제안해 놓은 상태다. 향후 4년에 걸쳐 총 3020억달러를 교통 SOC에 쏟아 붓는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문제는 역시 정치권에서 불거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복안은 기존의 유류세와 함께 법인세 감면 조치를 일부 폐지해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은 ‘사실상의 증세’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발 일 좀 하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핀잔에 대해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조차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며 “상원이 먼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면 하원도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되받아치고 있다.
교통 SOC 투자 확대를 통해 미국 경제의 회복을 가속화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은 결국 야당과의 정치적 타협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에 성패가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