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가 다시 한 번 디폴트를 선언할 것인가, 아니면 여봐란 듯 채권단의 압력을 떨쳐버리고 부활의 길로 나갈 것인가.
지난 6월 16일 미국 대법원이 아르헨티나가 제출한 미국 헤지펀드에 대해 채무조정 신청을 기각하면서 아르헨티나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엄청난 땅덩어리에 풍부한 자원까지 갖고 있는 나라가 도마 위의 생선 같은 신세가 되자 돈 벌 기회를 노리고 있는 세계의 투자자는 물론이고 강대국까지 두 눈을 번뜩이며 군침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는 미국 헤지펀드들이 위기를 겪는 경제 주체들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벌처펀드(Vulture Fund)’라며 미국 사법당국에 채무조정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들 헤지펀드들에 먼저 상환하게 되면 다른 채권자들의 부채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탄원했지만 미국 법원은 냉혹하게 아르헨티나의 요청을 거절했다.
어찌됐든 미국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억만장자 폴 싱어가 운영하는 엘리엇 매니지먼트 산하 NML캐피털 등 미국 헤지펀드들에 13억3000만달러 전액을 현금으로 배상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판결 내용에 아르헨티나 주식시장은 6% 폭락했고 국가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은 369bp(1bp=0.01%) 급등했다. NML캐피털 대변인은 “아르헨티나는 채권자들에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아르헨티나 경제와 국제 기준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부터 디폴트 위기 맞아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는 1940년대 포퓰리즘정책(대중인기 영합정책)을 편 후안 페론 대통령의 ‘페론주의’의 영향이 크지만 디폴트 위기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위기는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의 영향이 컸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석유가격은 4개월여 만에 3.5배로 뛰었고 산유국들은 넘쳐나는 달러를 선진국 은행에 예치했다. 영국과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1970년대 견고한 성장세를 보인 중남미 국가들에게 자금을 융자해줬다. 적극적으로 외자도입에 나선 개발도상국들의 부채는 1973년 1300억달러 수준이었지만 불과 5년 만인 1978년 3360억달러까지 늘어났다. 이때 융자금에 적용되는 금리 조건은 리보(LIBOR) 금리에 스프레드를 가산한 변동금리였다. 1979년에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개도국들은 재정적자가 누적됐다. 수출이 어려워지고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경상적자는 심화됐고 국내 저축도 바닥을 보였다. 투자를 충당할 방법은 해외 차입이었다. 개도국들은 해외 차입을 더욱 늘렸다. 부채는 1982년 6620억달러 수준으로 4년 전보다 2배로 급증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978년 국내총생산(GDP)의 23.9% 수준이던 외채는 1982년 GDP의 60%를 넘어섰다. 늘어나는 빚에 대한 대응은 역설적으로 ‘빚’이었다.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상황이 발생했다. 만기가 돌아온 채무를 갚기 위해 이자가 상대적으로 낮은 단기성 자금을 끌어오다 보니 대외채무의 구조가 만기에서 단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부채가 늘어난 가운데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가 문제가 됐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늘어나자 달러화 리보금리가 연 9.5%에서 16.6%까지 급등했다. 차입을 대폭 늘린 개도국들은 고금리 폭탄을 맞으면서 수출부진의 늪에 빠졌다. 달러화 약세까지 나타나 개도국으로선 막대한 부채의 상환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남미에선 멕시코가 가장 먼저 쓰러졌다. 멕시코는 1982년 국제수지 적자 심화로 외환보유고의 바닥이 드러나자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아르헨티나는 1989년 카를로스 메넴 정부의 강력한 구조개혁 조치로 멕시코 악재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1990년대 후반 신흥시장 금융위기와 주력 수출품인 농산품 가격 하락, 최대 교역 상대국인 브라질의 경제위기 등으로 다시 고비를 맞게 된다.
1999년 당시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빚만 1280억달러에 달했고 실업률도 20%대로 치솟았다. 총 외채 1300억달러 중 2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250억달러였는데 만기가 대부분 하반기였다. 아르헨티나에 2001년까지 134억달러를 지원했던 IMF가 추가지원에 난색을 표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2001년 첫 번째 디폴트
2001년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은 경제위기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뒤를 이은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23일 디폴트를 선언했다. 아르헨티나의 첫 디폴트 선언이었다. 막대한 채무에 대한 아르헨티나와 채권자들 간 채무조정 협상도 시작됐다. 뼈를 깎는 개혁이 시작됐다. 2002년 초 집권한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은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임금삭감, 이중환율제도 폐지 등 개혁에 나섰다. 이후 1년간의 협상을 통해 긴급차관을 받을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집권한 2003년 만기가 도래한 IMF 차관 31억달러를 갚지 못해 다시 국가부도로 내몰렸다. IMF와 3년간 채무상환 유예 협정을 벌인 끝에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국가부도를 가까스로 피한 아르헨티나는 2005년 채무 재조정에 성공했다.
국제 원자재가격도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아르헨티나는 연평균 8.2%의 고속성장에 접어들었다. 키르치네르의 후임은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었다. 2007년 집권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정부보조금 축소 방침을 발표하며 개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물가상승률은 계속 올라 2012년엔 25%에 달했다. 물가와 함께 빈곤율도 올랐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테이퍼링 여파가 악재가 됐다. 테이퍼링 이후 아르헨티나의 페소화 가치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페소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무려 25% 가까이 떨어졌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환율 방어에 전력을 다했고 공산품 대부분을 수입하는 아르헨티나는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급등의 악재가 나타났다.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보이자 페소화 가치는 급락했고 다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두 번째 디폴트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디폴트 선언 이후 채권자들과 채무조정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후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1000억달러(약 102조원)에 달하는 대부분의 부채에 대해 채무조정에 성공했다. 채권자 대부분은 채권상각을 받아들였지만 헤지펀드들이 문제였다.
ACM, NML캐피털 등 미국 헤지펀드들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채무 전액 상환을 요구하며 이 문제를 법정까지 끌고 갔다. 결국 미국 대법원은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줬다.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TV 인터뷰를 통해 “아르헨티나가 채무를 상환하고 디폴트를 피하는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며 “채무상환 의무는 이행하겠지만 억측에 기반한 이 같은 강탈행위의 피해자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동시에 모든 채무를 상환하기는 어렵다며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 탄원했지만, 법원은 채무상환일을 미뤄달라는 아르헨티나의 요청을 기각했다. 연방법원의 판결 이후 국채 수탁은행인 뉴욕멜론은행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채권자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맡겨둔 5억3900만달러 등 총 8억3200만달러를 아르헨티나 정부에 다시 돌려줬다.
(왼쪽)푸틴 러시아 대통령, (오른쪽)
협상 카드는 남아 있는 듯
지난 6월 30일로 기술적 디폴트에 빠진 아르헨티나에겐 30일의 ‘유예기간’이라는 시한이 주어졌다. 7월 30일 전까지 채권자들과 협상을 마쳐야 디폴트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가 최종 디폴트에는 빠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르디언 케멘 HSBC 라틴아메리카 채권 리서치센터장은 아르헨티나가 기술적 디폴트에 빠진 6월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 정부에겐 디폴트로 인한 손실이 채권자와의 합의로 인한 비용보다 훨씬 더 크다”며 양측이 합의에 성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신용평가사들도 아르헨티나의 향후 상황을 지켜보자며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조정하진 않았다.
가브리엘 토레스 무디스 수석연구원은 지난 6월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채권자들이 얼마만큼의 손실을 입는가에 따라 추가등급 하향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Caa2 이하로 낮추는 것은 최종 디폴트 위기에 직면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미를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미국 헤지펀드들과의 채무상환 협상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지원군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이다. 아르헨티나로선 내심 중·러에 정치적 지원 이상을 바라고 있다. 아르헨티나에게 연이어 불리하게 나온 미국 법원 판결을 비판하고 우리는 아르헨티나 편이라는 정치적 수사도 환영하지만 그보다는 채무상환을 위한 자금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이유는 아르헨티나의 에너지자원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지역엔 대규모 셰일 지층인 바카 무에르타가 있다. 셰일가스 세계 2위, 셰일오일 세계 4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나라다.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아르헨티나는 자원개발을 위해 외국투자가 절실하고 중·러는 경제개발을 위해 에너지자원이 필요하니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방문은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기술적 디폴트에 빠지긴 했지만 채무 상환을 위해 협상에 나서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뢰감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카를로스 헤르마노 정치평론가는 FT와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가 부채를 상환 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디폴트에 빠졌다면 중·러 정상이 아르헨티나를 찾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