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최한 한 세미나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여성 방청객이 이날 패널로 참석한 제레미 스타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이사에게 던진 질문이 발단이 됐다. 그는 “미 연준은 양적완화 축소(채권 매입 규모 축소)를 시작했을 때 ‘스필백(Spillback)’을 우려했느냐”고 물었다.
사회를 맡고 있던 토마스 조단 스위스 중앙은행장이 ‘스필오버’라고 말을 받자 이 여성은 다시 ‘스필백’이라고 정정을 했다.
머쓱해진 스타인 이사는 “미안하지만, 스필오버와 스필백이 뭐가 다르냐”고 되물어야 했다. 결국 처음 질문을 던진 여성은 스타인 이사에게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가 세계경제의 성장을 둔화시키고, 글로벌 금융 안정을 해침으로써 그 부정적인 영향이 다시 미 연준에 미치는 것”이라는 ‘스필백’의 정의를 설명해줘야 했다.
‘스필백’이라는 용어는 IMF가 4월 봄 총회에서 새로 등장시킨 신조어다. 미 연준의 급격한 양적완화 축소를 견제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스필백’의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존재해왔다. 다만 ‘리버스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라는 명칭으로 불렸을 뿐이다. 게다가 ‘리버스 스필오버’의 개념과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바로 한국이다.
‘리버스 스필오버’의 기원을 얘기하기에 앞서, ‘스필오버(Spillover)’라는 말부터 짚고 넘어가자. ‘스필오버’는 뭔가 흘러넘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진국 중앙은행이 뿌려놓은 유동성이 신흥국 경제에 흘러드는 현상을 ‘스필오버’라고 불렀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으로 몰려든 뭉칫돈은 신흥국의 주가를 띄우고, 채권금리를 하락시켰다.
‘리버스 스필오버’는 이런 ‘스필오버’가 역(逆)방향으로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역방향’은 넘치는 방향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가 아니라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 신흥국들이 달러 확보를 위해 보유한 미국 국채를 팔아치우기 시작하면 미국 등 선진국 경제도 악영향을 맞게 된다는 논리다.
‘리버스 스필오버’란 말을 처음 만들어 낸 장본인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그는 바로 이 논리를 내세워 2008년 한-미 통화스왑 체결을 성사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기억이지만, 2008년 당시 한-미 통화스왑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왑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을 뒤흔들었던 외환위기의 우려가 일거에 사라졌고, 환율도 안정을 되찾았다. 한국 경제 입장에서 ‘리버스 스필오버’는 어려울 때 중요한 역할을 해준, 고마운 신조어였던 셈이다.
다만 요즘 쓰이는 ‘리버스 스필오버’는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부작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에서 자금이탈 현상이 벌어지면, 신흥국에서는 주가와 채권값이 하락할 것이고 달러 확보를 위해 신흥국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매도하면 미국 국채 값 하락에 맞춰 금리가 상승하며, 이는 미국 정부의 이자 부담을 증대시켜 재정수지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IMF가 4월 총회에서 도입한 ‘스필백’은 이러한 ‘리버스 스필오버’와 사실상 100% 같은 개념이다. 여담이지만 윤종원 IMF 이사(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는 IMF 이사회에서 ‘스필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에게 “오랫동안 한국 정부가 써왔던 ‘리버스 스필오버’ 개념을 채택했다니 환영한다”는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오늘 날 국제금융을 이해하는 데 ‘스필백’이 중요한 이유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신흥국 경제에 눈을 돌릴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지난 1977년 개정 연준법에 따라 미 연준의 법적 의무는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에 국한돼 있다. 흔히 ‘양대 책무(Dual Mandate)’로 불리는 미 연준의 정책 목표다. 이 목표에 따르면 미 연준의 통화정책이 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스필백’ 개념에 따르면 미 연준도 신흥국 등 외국 경제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미국 통화정책이 외국 경제에 미쳤던 악영향이 마치 ‘부메랑’처럼 미국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