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국내에 ‘솔리드 옴므’라는 남성복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열광해 마지않았다. 기존 남성복이 아버지 옷장에서 봄직했다면 이건 ‘오빠 옷’ 그 자체였다. 지금은 흔하게 사용하는 남성캐주얼이라는 말도 ‘솔리드 옴므’가 만들었다. 외출복이라면 정장 일색이던 국내 남성복 시장에 ‘캐주얼’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해 승승장구하던 ‘솔리드 옴므’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국내에서의 명성을 딛고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로 진출한 것. 그때가 2002년이고, 파리에서는 ‘솔리드 옴므’가 아닌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우영미 이름을 딴 ‘WOOYOUNGMI’로 활동했다.
이후 우영미 남성복 디자이너 겸 패션회사 쏠리드 대표는 지난 15년간 단 한 차례로 빠짐없이 세계 최정상의 패션무대인 파리컬렉션에 공식 참가해오고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되는 쾌거를 이뤘다. 현재 우영미는 디오르, 발렌시아가, 겐조, 프라다 등 세계 유명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고 있다. 쏠리드에는 ‘WOOYOUNGMI’와 ‘솔리드 옴므’ 이렇게 두 개의 브랜드가 존재한다.
올해 ‘LUXMEN 기업인상’은 처음으로 특별상 여성기업인상을 신설하고 우영미 쏠리드 대표를 선정했다. 우영미 대표는 “큰 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스럽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며 “지난 30년간 국내 패션브랜드의 성공적인 글로벌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데 대한 인정을 받아 기쁜 마음”이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쏠리드는 30년간 국내 남성복 시장을 이끌어온 장수 브랜드 ‘솔리드 옴므’를 해외 시장에도 안착시켜 이제는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가고 있다. ‘솔리드 옴므’는 2013년에 아시아 패션중심지로 불리는 홍콩에 유명백화점 하비니콜스 진출을 시작으로 이듬해 영국의 유명백화점 해로즈와 중국의 갤러리 라파예트 베이징과 황저우 등에 연이어 매장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인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는 유럽을 넘어 미국과 캐나다로 패션 영토를 넓힐 예정이다. 우 대표는 “올해 6월에 전 세계 170개국과 거래하는 미국 유명 온라인 리테일숍인 미스터포터와 함께 손을 잡아 성공적인 미국 시장에 독점 론칭을 했습니다. 아울러 내년에는 캐나다의 홀트 렌프류 백화점에 진출을 확정했고 이를 통해 미주 지역에 비즈니스를 넓혀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쏠리드는 중동 지역에서도 매장을 내자는 제의를 받고 있으며, 오는 2025년까지 세계 주요 도시에 100개의 매장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패션계에 새긴 ‘마담 우’의 파워
파리패션계에서 우영미 대표의 별명은 ‘마담 우’이다. 텃세가 심한 파리에서 그는 ‘마담 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으며, 우영미의 성공적인 입지를 입증하듯 권위의 패션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선정하는 전 세계 패션산업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2014년부터 올해까지 연속 선정되었다. 패션불모지와도 같은 파리에서 우 대표가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인정을 받았다는 증표는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의 정회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전 세계 패션 유력 인사가 모이는 파리패션위크 기간 중에서도 가장 좋은 시간대에 쇼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아무리 훌륭한 옷을 만들어도 바이어나 미디어에서 관심을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파리 패션계 정상권에 서 있는 그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걸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영미 대표는 지난 2014년부터 딸이자 패션계 후배인 정유경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해 엄마와 딸이 함께 만드는 컬렉션을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 공동 패션쇼였던 2014년 추동 파리컬렉션에서 ‘WOOYOUNGMI’는 칼날이 선 듯 예리한 클래식 테일러드 기법의 정장에 타원형의 부드러운 디자인 요소를 가미했다. 현지 언론들은 “부드러워진 ‘우영미’가 새로운 형식의 미니멀리즘을 보여 줬다”며 극찬했다. 이로써 우영미·정유경 모녀가 만드는 남성복이 파리 무대를 통해 인정받은 셈이다.
2017 S/S 컬렉션 의상
▶건축가 부친 영향으로 남성복 관심
사실 남성이 여성복을 디자인하는 경우는 많지만 여성이 남성복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전 세계 주류 패션계에서 남성복을 만드는 여성 디자이너는 우영미 대표가 유일하다. 건축가였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다.
우 대표 부친은 아침에 일어나면 로브 가운을 입고 흔들의자에 앉아 파이프를 피우면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던 분이었다고 한다. 가죽 코트에 니트 넥타이, 자카르 스웨터 등 지금 봐도 멋스러운 옷들로 옷장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버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을 부리셨다. 남자들 모두가 그렇게 입고 다니는 줄 알았을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어릴 적 ‘남자 옷’에 대한 강한 이미지는 1978년 성균관대 의상학과에 입학해 남성복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을 법하다. 그는 “이상하게도 여자 옷엔 별로 끌리지 않았고, 탄탄한 재단과 마름질이 잘된 남성복이 좋았다”고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남성이 이상형
우영미 디자이너 옆에는 언제나 분신 같은 ‘솔리드 옴므’와 ‘우영미’가 있다. ‘솔리드 옴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도시 남자이고, ‘우영미’는 예민하고 낭만적인 남성이다. 그는 둘 사이를 오가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 옷을 짓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그의 매장에는 유명한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 남성복 디자이너 우 대표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남성상은 ‘그리스나 로마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남성 조각상’이다. “다비드상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의 몸은 팔과 다리 등의 잔근육의 움직임이 훨씬 섬세하고 아름답다”며 “육체적 아름다움과 함께 정신적 성숙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남성이 이상형”이라고 덧붙였다. 우영미 디자이너가 남성 아이템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품목은 ‘코트’라고 한다. 클래식 ‘No.51’ 코트는 우영미만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