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은 우울한 소식뿐이다. 서울 수도권 지방을 가릴 것 없이 매매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전세 가격까지 급락하면서 경고음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최근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쉴 틈 없이 쏟아내는 모습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반응은 신통치 않다. 금리가 너무 높은데 대출 규제를 푼다고 주택을 선뜻 매수하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은 새해엔 집값이 어떻게 흘러갈지 문제다. 그러나 시장에 부는 찬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부동산 관련 주요 연구기관들이 2023년 전국 집값은 2022년보다 더 떨어질 것이란 관측을 일제히 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은 ‘2023년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주택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3년 수도권 2.0%, 지방 3.0% 등 평균 2.5%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건산연이 같은 보고서에서 2022년 집값 최종 하락률 추정치로 -1.8%를 제시했으니 낙폭을 더 크게 본 셈이다. 2022년에도 이미 실거래 가격이 최고가 대비 40% 가까이 떨어진 아파트가 속출했지만, 건산연은 경기 둔화에 따른 매수심리 호전을 기대할 수 없어 2023년 집값 하락 체감도가 2022년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뒤이어 새해 집값 전망을 내놓은 주택산업연구원(이하 주산연)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도 비슷한 결론을 내놓았다. 주산연은 대내외 경제변수와 주택수급지수를 고려한 예측모형으로 주택 가격을 전망한 결과, 새해 전국 주택 매매가는 전년 말 대비 3.5% 하락하고, 전국 아파트 매매가도 5.0%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 하락률(주택 2.4%, 아파트 4.4%)보다 더 높은 낙폭이다. 건정연도 새해 수도권 아파트값이 2022년 말보다 3~4%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새해 상반기 매매 가격이 저점에 이른 후 ‘L자형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실거래가 기준으로는 체감 하락 폭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주산연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내년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8.5%, 서울 9.5%, 수도권 13.0%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들 기관 보고서를 자세히 뜯어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건산연은 2023년 집값을 전망하면서 미국 금리가 4%에서 고점을 찍고, 2023년 5월부터 내려올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제롬 파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장의 발언은 이 같은 기대를 깨버리는 모양새다. 다시 말해 건산연이 새해 집값을 전망하면서 가정한 미국 기준금리 고점보다 최소 1%포인트 더 오르고, 꺾이는 시점도 2023년 가을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 금리가 예상보다 오르면 우리나라가 따라 올리고, 국내 부동산 시장이 압박을 받아 건산연 전망치보다 하락 폭이 더 커지는 과정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주산연도 국내 경제에 대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국제 금융위기에 이은 대형 위기 상황으로 평가했다. 특히 과거와 같은 ‘V자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게 연구기관들의 주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및 과잉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당분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우엔 2023년 하반기부터 3기 신도시의 본청약까지 시작돼 공급 부족에 의한 주택 가격 상승 압력도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높은 평균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 비율 때문에 상황이 예상보다 더 심각하게 흐를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건산연과 주산연, 건정연의 새해 집값 전망을 보면 특이한 게 한 가지 또 있다. 2022년은 지방보다 수도권 집값을 더 안 좋게 보고 있고, 새해는 지방을 더 나쁘게 봤다는 사실이다. 건산연은 새해 주택 가격은 수도권이 2.0%, 지방은 3.0%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특히 지방 시장의 위축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산연은 주택값이 서울 2.5%, 수도권 3.0%, 지방 4.0%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파트 가격은 서울 4.0%, 수도권 4.5%, 지방 5.5%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새해 입주 물량이 몰려 공급 분야도 신호가 좋지 않은 곳이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 공동 연구에 따르면, 2023년 1~12월 전국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모두 41만7393가구에 이른다. 그중에서 경기(13만288가구), 인천(4만7580가구), 대구(3만4984가구), 울산(1만1884가구), 충북(1만4753가구), 충남(3만2042가구), 경남(1만9886가구) 등에서 2022년보다 대거 늘어난 입주 물량이 쏟아진다. 국내 부동산 시장 연구기관들이 새해 지방 집값 전망을 특히 우울하게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부동산지인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2023년 입주 물량은 2만7468가구로, 공급 적정 수요(4만8000여 가구)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3만188가구)에 이어 새해에도 수요보다 공급이 크게 부족한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세 시장에 대해 국내 연구기관들의 전망이 엇갈렸다는 사실은 주의해서 봐야 하는 부분이다. 건산연은 2023년 전국 전셋값이 0.5%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2022년 하락세가 멈추고, 지방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임대차 시장발(發) 매매 가격 폭락 우려 가능성을 낮게 봤다. 주산연은 반면 전세 가격도 약세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은 3.5%, 수도권은 5.5%, 지방은 2.5% 떨어진다고 내다봤다. 모두 2022년 전세 가격 등락률(서울 -2.8%, 수도권 -4.0%, 지방 -1.6%)보다 높은 하락 폭이다. 다시 말해서 전월세 시장 흐름이 새해 부동산 시장 전체가 예상보다 더 경착륙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거라는 뜻이다.
반면 부동산 거래절벽 상황은 2023년이 전년보다 나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집값 급락세가 꺾이고 매수 심리가 살아나면서 거래가 회복돼 2022년보다 39% 증가한 75만 가구가 거래될 것이라는 게 주산연의 예상이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