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든 이슈를 대체하는 ‘대체불가토큰(NFT·Non-Fungible Token)’은 그 어떤 것도 대체 불가할 정도로 뜨거운 이슈다. 특히 새로운 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인식되면서 많은 사람의 욕망 대체재로 등장했고, 그 시장은 암호화폐와 함께 뜨겁게 달아올라 소위 ‘불장’을 이룬다. 이 불씨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NFT 아티스트인 ‘비플(Beeple)’로 알려진 마이크 빈켈만의 ‘에브리데이(Everydays) 시리즈’ 중 한 작품이 크리스티에서 780억원에 팔리면서 불길처럼 번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오션 프런트’라는 기후 변화를 경고하는 작품이 67억원에 팔렸다.
이후 예술품을 넘어 무엇이든 NFT화하면 큰돈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트위터의 최고경영자 잭 도시는 15년 전 작성한 자신의 첫 번째 트윗을 NFT화해 자선경매를 통해 1630.6이더(ETH), 즉 우리 돈 32억원에 팔았다. NBA의 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10초짜리 NFT 동영상을 2억3000만원에, 3월 초에는 뱅크시의 판화작품이 불타는 영상을 NFT화해 원래 가격보다 4배나 많은 약 4억3000만원에 팔았다. 일론 머스크의 파트너인 뮤지션 그라임스는 ‘싸우는 요정들’이란 시리즈의 배경음악이 들어있는 이미지 작품 10점을 약 65억원에 팔았다. 한국계로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티나의 가상건물이 슈퍼레어(SuperRare)를 통해 288ETH, 약 5억 7000만원에 팔렸다. 10년 전 유행한 고양이 영상 ‘Nyan Cat’의 원작자가 올린 리마스터링 원본도 약 6억6000만원에, 시계 제조업체 제이콥앤코(Jacob&Co.)는 3차원의 영상으로 보이는 NFT 시계를 경매에 올려 10만달러를 손에 쥐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리 킴의 ‘Missing and found’가 국내 경매에서 6억원(288ETH)에 팔렸다.
마이크 빈켈만의 ‘에브리데이(Everydays) 시리즈’
최근 암호화폐를 근간으로 하는 NFT 미술품을 비롯한 유사 시장은 정말 크고 넓고 또 뜨겁다. 특히 블록체인이나 NFT에 대한 이해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지난 몇 달 동안 NFT는 암호화폐로 결제가 가능한 전문 사이트에서 믿기 어려운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그런데 이런 활황의 중심에는 모두 암호화폐 또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사업자 또는 개발자들이 경매에 올리고 낙찰을 받는 등 서로 주고받으며 시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또 자선경매를 통해 수익의 일부를 사회와 공유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대부분 낙찰자들이 관련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란 점은 공통적이다. 또 급등하는 NFT 시장의 뉴스가 이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된다는 공통된 점도 있다. 그럼에도 올 2월 초 암호화폐 시장을 이끌고 있는 NFT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품의 총 거래량은 총 6만 점 이상, 약 890억원어치가 거래되었고 관련 플랫폼도 증가하며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가히 ‘불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NFT화된 소위 예술품이란 것들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첨단 아이패드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화가는 한마디로 “국제적인 도둑놈과 사기꾼(International Crooks and Swindlers)”이라 잘라 말한다.
사실 컴퓨터 또는 메타버스 같은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디지털 이미지와 자료에 블록체인을 이용, 조작 불가능한 ‘원본 증명서’를 통해 전통적인 미술의 개념, 즉 그 어떤 것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성’을 부여해 소장한다는 개념의 예술품’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점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사실 NFT화한 미술품이란 미술품의 유일성이란 특징을 차용한 것에 불과할 뿐 미술이라고 하기에는 미학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근거가 희박하다. 물론 그라임스 같은 이는 지난해 자신의 작품을 구입하는 최고 입찰자에게 그녀의 영혼 일부를 함께 판매한다는 개념적 작품 ‘경매처분(Selling Out)’을 제공해 개념미술의 형식을 빌렸지만, 개념미술의 개념만 빌려온 것인지 아니면 개념미술인지를 확인하는 일은 관객이나 낙찰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NFT 시장은 세상의 모든 것을 NFT화해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 특히 미술가는 물론 밴드 등 음악가·무용가 등은 암호화폐의 핵심을 이루는 NFT란 새롭고 뜨거운 기술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고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예술가들이 살아온 방식을 바꾸어 줄 새로운 기술이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에 다가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역병으로 인해 화랑은 문을 닫았고 작가들은 작품을 팔 기회를, 가수나 공연자들은 무대를 잃어버렸다. 예술가들이 판매 및 소유권을 기록한 해킹 불가능한 디지털 스프레드시트(Spread Sheet)인 블록체인을 통해 일반적으로 미술품이나 음악, 공연의 유통과 판촉을 담당하는 화랑이나 에이전시 같은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대중 또는 고객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은 곧 중개 수수료를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할 것이다.
그라임스+맥 바우처의 ‘Battle of the WarNymphs’
이런 실질적인 예술가들의 생존과 관련한 NFT의 역할과 함께 저작권이 아닌 디지털 개체의 소유권에 대한 디지털 기록은 정말 ‘개념을 파는 사기’에 불과한 것일까. 러시아의 예술가 페트르 다비드첸코는 2월 유럽연합의회 앞에서 살아있는 박쥐를 먹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리고 이를 NFT화해서 약 2.5WETH, 즉 500만원부터 입찰을 개시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는 다국적제약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런 퍼포먼스를 펼쳤다고 한다. 이 퍼포먼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퍼포먼스를 통해, 비판 또는 항의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일부 예술계의 급진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퍼포먼스가 토큰화하면서 이벤트의 기록과 감상과 공명이라는 예술 본연의 문제가 뒤섞여 혼란을 일으킨다. 특히 퍼포먼스를 NFT화해서 그 대가 이상으로 ‘추가’되는 ‘잉여 가치’가 자본주의 미술 시장 질서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벤야민이 예술의 무한복제로 아우라가 사라지면 예술 작품은 순전히 경제적, 심지어 위험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용도 변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했지만, 그의 우려는 개념이 모호한 NFT화된 유사 예술품이 등장하면서 실제적인 위험요소로 등장했다.
예술적인 문제 외에 디지털 작업 자체의 안정성도 문제다. 사실 디지털 파일에 대한 NFT의 링크는 순전히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잠재적으로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해킹의 위험은 언제나 상존한다. 사실 매일 새로운 NFT를 도입해 지난 2월 한 달간 6조원의 매출을 올린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가 지난 3월 해킹을 당했다. ‘절대’ 또는 ‘대체 불가’한 일이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은 NFT의 ‘대체’ 가능성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2009년 처음 나온 암호화폐의 경우 현재 4000여 종이 넘는다. NFT 시장을 주도하는 플랫폼도 해킹당한 니프티를 비롯해 라리블(Rarible), 슈퍼레어(SuperRare), 에이싱크 아트(Async Art) 등이 있다. 특히 에이싱크 아트는 서로 다른 NFT를 겹쳐 ‘레이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미 NFT화된 이미지나 파일을 복사하고 조작해 또 다른 이미지나 파일로 만들어 NFT화한다면 그 원본성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또 NFT 구매자는 판매자가 그 저작권을 갖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팔 권리가 없는 이가 만든 NFT를 구입할 경우 낭패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NFT 열풍은 신생기업이 암호화폐 또는 일종의 투자증명인 디지털 토큰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크라우드 펀딩의 한 방식인 가상통화공개(ICO·Inital Coin Offering)와 유사하다. 기업은 빠르게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지만, 사업의 가능성이 불확실할 경우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빠져 ‘벼락거지’가 된다는 조바심은 버려야 할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파동(Tulip Mania)’이 흑사병으로 모든 활동이 제약을 받을 때 일어났다는 점에서, 최근의 NFT 열풍은 묘한 기시감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