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올해 우리나라에 좋았던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전통의 해운·조선·중공업 기업들 사이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근로자나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여전히 해운 구조조정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고, 조선 산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전기세 논란이 국민들을 힘들게 했고, 기록적인 미세먼지 농도는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끌어올렸다. 한 가닥 기대를 모았던 올림픽 특수는 염려했던 것 이상으로 약했고, 기업 수사는 계속되면서 경제계 전체적으로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미국 대선도 기대했던 시나리오대로 되질 않았다. 글로벌 교역에서 고립주의가 보다 더 강화될 전망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졌다.
방위비 분담도 당장 내년 하반기부터 교섭에 들어가야 한다. 협상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나겠지만 나름의 대가를 치를 각오가 필요하다.
그 와중에 국정농단 사건까지 터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총수가 검찰에 불려 다니는 상황이다. 투자나 신규채용이 제대로 이뤄지길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2016년은 대한민국에 있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던 한 해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예외가 있었다면 삼성전자가 9조원을 들여서 세계적 전장업체인 하만을 M&A한 정도가 아닐까 싶다. M&A 발표가 나자마자 쏟아졌던 찬사들은 올해 우리나라에 그만큼 좋은 일이 별로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형 악재들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한 기업인들이 있다. 그들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제4회 매경 럭스멘 기업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허영인 SPC 회장, 박은관 시몬느 회장, 여성기업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우영미 쏠리드 대표의 업적을 돌이켜보는 일은 의미가 크다.
SPC그룹은 중국 진출에 앞서 인재를 뽑아 중국 대학교에 입학시켰다고 한다. 외국에 진출하기 이전에 그 나라를 알아야 한다는 허 회장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례다. SPC는 해외에 진출하기 앞서 해당 국가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경우 10년 이상 시장을 테스트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은 뉴욕 맨해튼과 실리콘밸리 등 세계적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권에 당당히 매장을 오픈했다. 특히 제빵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내고 현지 바게트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점은 허 회장 특유의 승부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몬느 박은관 회장은 인천지역 유수의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부친의 회사 대신 중소기업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스스로의 회사를 창업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시몬느는 전 세계 명품 핸드백의 10%를 만든다. 미국 시장에서는 시몬느가 만든 핸드백 점유율이 30%다. 주요 거래처인 마이클코어스, 랄프로렌, 도나카란 등 쟁쟁한 글로벌 핸드백 회사들은 그에게 “다리 뻗고 자게 해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써가면서 시몬느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유럽에서 제조된 핸드백만 명품으로 치던 시절에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이 명품 제조 영역에 진출한 건 순전히 그의 열정과 네트워크에서 시작된 것이다.
특별상인 여성기업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된 쏠리드 우영미 대표는 패션종주국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다.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됐다. 그의 패션쇼는 디오르, 발렌시아가, 프라다 같은 유수의 브랜드와 같은 시간대에 배정된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남성복 디자인에 도전해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디자이너가 된 그는 현재 전 세계 20여 개 나라에 매장을 두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나라는 힘들어지고, 경제는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혁신과 기업가정신으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경영자들의 발자취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는 2016년의 끝자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