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감자·고구마 전래 이전, 토란은 중요 양식…토란은 한중일 공통의 추석 음식
입력 : 2016.09.02 16:28:24
우리나라 전통 추석 음식은 송편과 토란국이다. 지방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추석 차례상에 토란국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토란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토란국은 평소 많이 먹는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 추석이라고 왜 특별히 차례상에 토란국을 차리고 먹는 것일까?
토란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이 또 있다. 추석은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공통 명절이다. 전통 명절이니 나라마다 고유의 명절 음식이 다른데 우리는 ‘송편’, 중국은 ‘월병’, 일본은 ‘츠키미당고’라는 달떡이다. 한중일 삼국에서 공통으로 먹는 추석 음식도 있다. 특이하게도 세 나라 모두 추석에 토란을 먹는다. 물론 요리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토란이 한중일의 공통 추석 명절 음식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배경이 있을까? 토란과 관련된 한중일의 음식 문화를 비교하면 왜 추석에 공통으로 토란을 먹게 됐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추석에 토란을 먹었을까? 추석에 송편과 함께 토란국을 먹는다는 기록은 조선 말기, <농가월령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쉬어보세/신도주 올벼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산사에 제물하고 이웃과 나누어 먹세”
<농가월령가>는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헌종 무렵인 1843년에 쓴 가사다. 지금은 추석 때 외에는 토란을 잘 먹지 않지만 토란이 추석 명절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 <농가월령가>가 쓰여진 170년 전에는 토란을 일상적으로 많이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옛 문헌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평소 토란을 많이 먹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학유의 부친인 다산 정약용도 특히 토란을 많이 심는 까닭은 입맛에 맞기 때문이라고 했고, 광해군 때 허균 역시 땅에서 나는 음식 중에서 토란보다 맛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옛 시인의 글을 인용해 토란 예찬론을 펼쳤으니 옛날 사람들은 토란을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조선 초기 중종 때 문헌인 <용재총화>에 한양에서는 청파와 노원 두 역참에 토란이 잘된다는 기록이 보이니 조선 초기에는 한양 근교에 대규모 토란 밭이 있었다는 소리다. 고려 때 의학서인 <향약구급방>에도 토란이 보이고, 13세기 고려 때 시인 이규보도 시골에서 토란국을 끓여 먹었다는 기록과 14세기 목은 이색이 두부 반찬에 토란을 배불리 먹었다는 시를 남긴 것을 보면 고려와 조선에서는 토란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평소에 많이 먹는 식품이었으니 추석이 되면 토란 수확을 기념해 토란국을 끓여 차례상에 올렸을 것이다.
중국인도 추석인 중추절에 토란을 먹는다. 물론 땅이 넓은 중국 전역에서 모두 토란을 먹지는 않는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화베이 지방에서는 추석이라고 특별히 토란을 먹지 않는 반면 상하이 이남의 화동과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화난 지방에서 중추절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명절 음식이 토란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 이유는 토란이 덥고 물이 많은 지역에서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광저우와 같은 곳에서는 중추절이면 보름달을 보며 토란 껍질을 벗겨 먹는다. 귀신의 껍질을 벗기는 의미라고 하는데, 이렇게 토란을 먹으면 나쁜 기운을 피하고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상하이와 항저우 같은 곳에서는 옛날부터 중추절에 토란을 먹어야 운이 트인다고 믿었다. 중추절에 토란을 먹으면 왜 귀신을 물리치고 운이 트인다고 믿었던 것일까? 토란을 뜻하는 중국어 위나이(芋奶)와 운이 트인다는 뜻의 윈라이(運來)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토란과 관련된 중국의 옛 전설과 기록을 통해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1세기 후한의 광무제가 한나라를 중흥시킬 때 역적 왕망에게 패해 산으로 도망갔다 포위당했다. 군량마저 떨어져 군사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왕망이 산에 불을 질러 화공을 펼쳤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산불이 꺼졌고 흙 속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땅을 파헤쳐 보니 토란이 마침 알맞게 익었다. 토란을 캐먹고 힘을 낸 광무제의 군사들이 사기가 올라 왕망을 공격해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이날이 바로 음력 8월 15일 중추절이었다. 중국에서 추석에 토란을 먹게 된 유래다.
중국의 중추절 토란 유래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분명한 것은 토란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이다.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해주는 식량이자 중요한 양식으로 여겼다.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는 항우의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토란을 먹으며 싸웠다는 기록이 보이고, ‘화식열전’에는 촉나라 민산의 기름진 평야에 토란이 자라고 있어 이곳 사람들은 흉년이 들어도 굶지 않는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렇게 토란은 옛날 중국에서 구황작물이면서 일상적으로 먹는 양식이었다.
일본은 명절에 토란 음식을 많이 먹는다. 설날에 해당하는 정월(お正月) 떡국에 토란을 넣는데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다. 도쿄 등 간토 지방은 쌀떡 중심이지만 교토 중심의 간사이 지방은 떡과 동시에 토란을 넣고 남쪽은 아예 떡을 넣지 않을지언정 토란은 넣는다. 추석에도 토란을 먹는다. 먹는 정도가 아니라 추석이라는 명절 이름부터가 토란과 관련이 깊다.
일본은 추석으로 흔히 양력 8월 15일인 오봉절(お盆節)을 꼽는다.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온 가족이 고향을 찾는 명절이라는 점에서는 오봉절이 추석과 비슷하지만 기원과 유래, 그리고 날짜로 보면 음력 8월 15일인 중추의 보름달(中秋の名月) 혹은 십오야(十五夜)가 추석과 더 가깝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명절이라지만 예전에는 이날 보름달을 감상하며 츠키미당고(月見団子)와 토란을 먹었다. 특히 중추의 보름달에 먹는 음식으로 츠키미당고보다는 토란에 더욱 방점이 찍혔다. 그런 만큼 명절 이름인 중추의 보름달을 다른 말로 우명월(芋名月), 이모메이게츠라고 했는데 이모(芋-いも)는 토란, 메이게츠(名月-めいげつ)는 보름달이니 추석을 토란 보름달이라고도 부른 셈이다. 그런데 왜 추석과 토란을 연결지었을까?
옛날 일본 추석인 중추의 보름달은 추수감사의 의미가 깊었다. 수확의 기쁨과 풍년이 되도록 도와준 하늘에 감사의 제사를 지내는 명절이었는데 명절 음식으로 토란을 먹고 명절 이름도 별칭으로 이모메이게츠, 토란의 보름달이라고 한 것은 토란이 그만큼 중요한 농작물이었다는 소리다.
일본에 토란이 전해진 것은 기원전으로 토란은 쌀이 전해져 벼농사가 널리 퍼지기 전까지 고대 일본인의 주식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본에서 추석이면 그해 농사를 지어 수확한 토란을 하늘에 바치고 제례 음식으로 먹었던 것이 일본 추석 토란의 기원이라는 해석이다.
토란이 얼마나 중요한 식량이었는지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사용하는 토란이라는 작물 이름의 어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말 토란은 ‘흙 토(土)’에 ‘달걀 란(卵)’으로 땅에서 나는 달걀이라는 뜻이다. 마치 흙속에 묻힌 달걀처럼 생겼다는 의미와 함께 영양이 풍부하다는 뜻도 있다. 그만큼 토란의 영양가를 높게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토란을 위나이(芋奶) 혹은 위터우(芋頭)라고 한다. 위나이는 ‘토란 우(芋)’에 ‘젖 내(奶)’자로 우유 빛깔 토란 색과 맛을 강조한 것이고, 위터우는 ‘머리 두(頭)’자를 써서 토란의 생김새를 강조했다. 그런데 토란 우(芋)자 역시 의미가 깊다. 2세기 무렵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에는 놀랍다는 뜻에서 비롯된 글자라고 풀이해 놓았다. 잎이 크고 결실 또한 크기 때문에 그 생김새를 보고 놀라는 모습에서 생긴 글자라는 것이다. 토란이 고대 중국에서 중요한 양식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끼니를 해결해 줄 커다란 토란을 캐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농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본어로 토란은 사토이모(さといも)다. 한자로는 이우(里芋)라고 쓰는데 산에서 자라는 참마(山芋)와 대비해 ‘집에서 기르는 마, 밭에서 기르는 마’라는 뜻을 강조한 이름이다. 일본에서 진작부터 토란을 재배했고 토란이 중요한 곡식이었다는 사실이 반영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와 고구마가 전해지기 전까지 토란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모두 쌀 대신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해 준 양식이었다. 토란이 추석 차례상에 오르는 이유, 그리고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토란을 추석 음식으로 먹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