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중요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보면 이곳저곳에서 익숙한 이름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새클러(Sackler)’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워싱턴 DC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박물관과 아시아 미술 전문관인 새클러·프리어 박물관이 있다. 스미니소니언 산하의 핵심 박물관 중 하나다. 그의 이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버드, 프린스턴, 중국 북경대에도 새클러의 이름이 붙은 박물관이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은 이집트로부터 기증받아 1978년 개관한 이집트관인 덴더르 신전을 전시하기 위해 새틀러가로부터 건축비 950만달러(약 440억원) 중 거액을 기부 받고 그 뜻을 기려 ‘새클러 윙’이라 명명했다. 메트로폴리탄은 지난 20년간 새클러가로부터 20만달러 이상을 기부 받았다.
영국박물관에는 레이먼드&비벌리 새클러관이, 런던 국립미술관에는 새클러실이 있다. 테이트 모던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에도 새클러의 명판이 붙어있다.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에는 새클러 안뜰이 있다.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다루는 서펜타인 갤러리도 2013년 자하 하디드의 설계로 증·개축할 때 새클러가의 후원을 받아 서펜타인 새클러 갤러리라고 이름을 바꿨다. 영국 왕립미술학교에는 새클러 빌딩이, 왕립오페라도 자연사박물관도 새클러의 이름을 단 전시실이 있다. 또 레이먼드 새클러(1920~2017년)의 부인 테리사는 테이트, 빅토리아&앨버트, 서펜타인 갤러리의 이사이자 로열 오페라의 명예 관장이기도 하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루브르의 동양관도 새클러관이다. 유대인인 새클러가는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에도 기부했고 그 보답으로 계단실에 새클러의 이름을 새겼다. 이 외에도 뉴욕 미국 자연사박물관에는 새클러 비교 유전체학 연구소와 새클러 교육 연구소가, 구겐하임에는 새클러 예술 교육 센터가 있었다. 이렇게 새클러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영국과 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 극장에 주요 기부자로 재단 세금기록을 보면 약 600만달러(약 73억원)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클러 집안의 그간의 전방위적인 박물관 미술관 후원은 기관의 내실 있는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8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87년 개관된 스미스소니언의 아시아 미술관인 새클러 박물관은 아서 새클러(1913~1987년)가 기증한 약 1000점의 유물과 그가 기부한 4억달러(약 4900억원)를 토대로 설립되었다.
2013년 개관식에서 서펜타인 새클러. 사진 ©루크 헤이즈, 서펜타인 갤러리 제공.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뉴욕으로 이주해 온 새클러가에서 태어난 의사 3형제 아서, 모티머(1916~2010년), 레이먼드(1920~2017년)는 1952년 그리니치빌리지의 작은 제약회사 퍼듀 프레데릭을 인수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설사약과 귀지 제거제를, 이후 스트레스 치료제 바리움을 제조해 1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을 벌었다. 1995년 셋째 레이먼드의 아들 리처드 새클러(1945년~)가 회장으로 일하면서 말기 암환자, 만성통증환자의 통증을 치료하는 (모르핀이 첨가된)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개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며 1996년부터 2003년 사이 연간 16억달러(약 2조원)의 매출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옥시콘틴의 마약 같은 중독성이었다. 그로 인해 약 20만 명이 죽었다. 약에 중독된 수백만 명의 희생이 새클러가의 자선과 기부의 바탕이라는 사실이 속속 폭로되면서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손목 통증으로 이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후 중독돼 재활 치료를 받은 작가 낸 골딘(1953년~ )은 앞장서서 새클러가 ‘자선’의 가면을 벗기고자 ‘고통(PAIN)’운동을 전개했다. 환자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 연방법원은 옥시콘틴의 중독위험과 남용 가능성에 대해 규제 기관과 의사, 환자를 오도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합의금이 60억달러에 달했지만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후 수많은 소송으로 새클러가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 선행은 빛을 잃었고,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대학과 연구소의 ‘새클러’란 현판이 뜯겨나갔다. 그리고 결국 새클러가의 기증과 후원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것은 브루클린 미술관이다. 아서 새클러의 딸 엘리자베스 A 새클러가 기부해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새클러 페미니스트 아트센터’는 아직 그 이름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 DC의 ‘국립 아시아 미술관’이란 이름으로 프리어 갤러리와 아서 새클러 갤러리란 이름을 가려놓았다.
착한 손으로 가린 나쁜 돈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퇴출당하고 있다. 휘트니미술관의 부이사장인 워런 B 캔더스도 2019년 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의 소유인 최루탄 제조회사 사파리랜드 그룹이 만든 최루탄이 멕시코 국경 이민자들 진압에 사용된 것이 드러나면서 사퇴를 종용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한 10여 명의 작가가 캔더스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고, 사파리랜드 최루탄에 관한 비디오 작품 <트리플 체이서, 2019>가 전시되어 그를 압박했다.
영국의 박물관 테이트 모던은 영국석유(BP plc.)의 후원을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라는 시민들과 고고학자 등 학계의 요구로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영국석유는 지난 17년간 테이트 모던에 380만파운드(약 62억8000만원)를 기부했는데 이는 연간 3억6000만원으로 테이트 모던의 1년 예산 중 0.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무기상이나 담배회사는 이미 퇴출되었고 ‘아트워싱(Art Washing)’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세탁하는 기업들의 기부금을 거부하는 골리앗과의 싸움이 일어났다.
이런 깨끗한 돈에 대한 요구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정치권과 결탁해 성장한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들의 기부가 거부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그들은 사회적 평판이 좋은 서방의 기관에 기부하며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얻었고, 이를 빌미로 정치인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교류했다. 러시아 가스회사 노바텍을 접수한 미켈슨(1955년~ )은 화이트채플, 테이트를 지원하고 뉴욕의 뉴 뮤지엄의 이사에 적을 올렸다. 첼시 구단주인 이브라모비치(1966년~ )와 그의 연인 주코바(1981년~ )는 유럽 미술 시장의 큰손으로 모스크바에 가라지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 개관식에 조지 루카스(1944년~ ), 제프 쿤스(1955년~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1968년~ ) 등이 참석할 정도로 서방 미술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구겐하임 이사이자 프랑스 정부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은 블라디미르 포타닌(1961년~ )은 사임했고, 러시아의 억만장자 페트르 아벤(1955년~ )도 EU의 제재 목록에 오르자 2014년부터 해온 런던 왕립 아카데미 이사직을 사임했다. 러시아 최대 금융 기관 ‘알파은행’의 사주 빅토르 벡셀버그(1957년~ )는 테이트를 지원했다. 미국의 구겐하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MoMA도 크렘린의 후광으로 얻은 부의 혜택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국공립미술관에 기부할 시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연봉이 1억원인 개인이 국립현대미술관에 5000만원 상당의 미술품을 기부했다면 약 1485만원의 절세효과를, 연 소득 금액이 20억원인 법인이 5억원짜리 작품을 기부할 경우 약 1억1000만원의 절세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기부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모두 더러운 돈이라 기부를 거부당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젠 더러운 돈은 더 이상 쓸 곳조차 없어지는 세상이다. 정승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세상이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