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양자컴퓨터 바람이 거세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양자컴퓨터는 지난해 말 돌연 글로벌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도 이 같은 분위기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양자컴퓨터가 성큼 우리 곁에 가까이 왔고, 인류에게 새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분위기까지 있다. 이에 올해 세계 최대 가전 정보통신기술(ICT)전시회인 CES는 양자 세션을 따로 만들어 관련 기술을 소개할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양자역학 이론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면서, 유엔(UN)이 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다.이런 흐름에 맞춰 각국 정부도 양자 시대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5년 을사년이 양자시대 퀀텀점프의 해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양자컴퓨터 열풍은 구글이 불을 지폈다. 구글의 양자컴퓨팅 연구회사인 구글퀀텀AI가 새 양자칩 윌로우(Willow)를 탑재한 양자컴퓨터를 선보이면서다. 현재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가 10자년이 걸리는 계산을 단 5분 만에 끝내는 성능에 세상은 화들짝 놀랐다. 10자년은 10셉틸리언(10의 24제곱·Septillion)년으로 잘 가늠이 안되는 숫자다.
구글이 지난 2019년 공개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의 경우 최첨단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리는 문제를 200초 만에 풀었다고 해 화제를 모았는데, 불과 5년 만에 양자컴퓨터 개발에서 큰 폭의 기술적 진전을 이뤄낸 것이다.
아직도 양자컴퓨터 기술은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 때 양자컴퓨터가 보여줄 성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양자컴퓨터가 보여줄 빠른 속도에 전 세계가 떠들썩한 것은 인류 문명 도약에 있어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신약, 기후변화 등 인류의 삶은 크게 변화시킬 난제들에 양자컴퓨터가 큰 역할을할 것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산업적 파장도 상당하다. 각국 및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드는 의문점이 있다. 왜 꼭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계산 속도를 구현해 내는 데 양자컴퓨터가 필요한 것일까. 현재의 슈퍼컴퓨터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 기술적으로 더 쉬운 것이 아닐까. 이는 현재의 컴퓨터 성능 개발에 있어 한계가 다가오는 시점이 도래하고 있는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현대 컴퓨터 발전의 토대가 된 무어의 법칙이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인데, 이 법칙은 반도체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약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는 이 법칙대로 1년 반에서 2년마다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높아졌고, 연산 능력도 계속 증가해왔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트랜지스터의 소형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현재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원자 수준인 3나노미터 (10만분의 1mm)까지 작아진 상태라는 점이다. 컴퓨터의 성능을 계속 높여 나가기 위해서는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들어야 하는데, 원자 수준으로 작아진 트랜지스터를 계속 줄여나가는 문제는 기술적으로 그리 녹록지 않은 문제다. 여기에 대해 트랜지스터를 연결하는 미세 회로도 어느 순간 더 이상 가늘게 만들지 못하는 수준이 있다. 너무 가늘면 회로를 타고 이동하는 전자가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 컴퓨터의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연산능력이 필요하고, 여기에 양자컴퓨터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물론 4진법 형태의 컴퓨터, 바이오 컴퓨터 등 다양한 방식의 컴퓨터들에 대한 고민도 있기는 하지만 대세는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는 0과 1로 구성된 비트를 처리한다. 연산은 0과 1을 하나씩 대입해 순차적으로 결과값을 도출한다. 즉 이는 컴퓨터가 0과 1을 각각 인식해 처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이 0과 1이란 신호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이 같은 처리방식에는 양자물리학의 원리가 깔려 있다. 양자컴퓨터의 처리 단위는 양자비트, 줄여서 큐비트로 부른다. 큐비트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물리학적 개념인데 ‘중첩’효과로 불린다. 비트 단위의 0과 1은 각각 존재한다. 양자컴퓨터의 능력은 이 큐비트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중첩과 더불어 얽힘이란 개념도 중요하다. 이는 두 개의 작은 입자가 서로 연결돼 있고, 상태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양자물리학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인 ‘확률’이 등장한다. 세상을 이해할 때 확률적으로 보면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양자물리학의 주장이다.
확률의 개념을 큐비트에 적용해 보면 0과 1이 동시에 들어 있는(중첩) 큐비트에서 0과 1을 꺼낸다고 가정했을 때 각각이 나올 확률은 50%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에서는 먼저 꺼낸 것이 0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보지 않아도 1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본다. 0과 1의 성질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얽힘에 있어 물리적 거리는 중요치 않다. 2개의 큐비트가 있고 이를 떼어내 우주 저 멀리 두더라도 한쪽을 확인하면 나머지 한쪽의 결과값도 곧바로 알 수 있게 된다는 뜻도 된다. 이론적으로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인데, 고전물리학에서는 빛의 속도를 추월할 수 있는 물질은 없다.
큐비트가 2개라면 중첩 효과로 인해 (0,0) (0,1) (1,0) (1,1) 총 4가지의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큐비트가 100개라면 2의 100승, 즉 1경의 숫자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이처럼 완성만 되면 획기적 연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양자컴퓨터지만 상용화는 또 다른 문제다. 구글 윌로우가 혁신적 능력을 보였지만 아직까지 우리 가까이 온 것은 아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양자컴퓨터를 작동케 하는 큐비트의 안정성 문제가 있다.
양자는 매우 예민하다. 그래서 잘 깨지기 쉽다. 깨지면 계산에 오류가 날 가능성이 높아져, 양자컴퓨터를 만들 때 안정적 양자 상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빛, 자기장 등 외부 방해요소를 잘 제거해야 한다.
또 양자컴퓨터 계산 시 발생하는 오류를 잡는 것도 핵심 사안이다. 큐비트를 늘릴수록 오류 발생 정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이는 큐비트의 안정성 못지 않게 중요한 사안이다. 특히 양자컴퓨터 계산의 오류는 누적이 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오류를 정정하는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기술 중 하나다.
구글이 공개한 윌로우의 경우 이 오류를 잡는 부분에서 기술적 진전을 이뤄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윌로우의 큐비트는 105개다.
현재 양자컴퓨터 개발방식 중 앞서 있는 것은 초전도 방식과 이온 방식이다. 먼저 초전도 방식이 있다. 반도체처럼 전기회로 칩을 만드는 것인데, 이 칩을 냉각해 초전도 상태로 만들면 회로 안에서 중첩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초전도 상태에서는 전기저항이 없어져 전자들이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구글과 IBM이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초전도 방식은 극저온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절대온도인 섭씨 약 -273°C로 칩을 냉각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냉동기가 필요해 덩치가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터는 중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결점도 안고 있다. 큐비트가 많아질수록 양자들의 조종이 어려워져 안정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터 개발은 초전도체 기술 발전에 따라서 퀀텀 점프를 할 수도 있다. 2023년 큰 관심을 모았던 국내 연구진의 상온상압 초전도체 발견 주장이 대표적이다. 상온에서 초전도 성질을 나타내는 물질이 나타난다면 초전도 양자컴퓨터의 전제 조건인 극저온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극저온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냉동기가 필요없어 컴퓨터 크기가 크게 작아질 수 있다. 다만 상온상압 초전도체의 발견 주장은 아직 입증되지 않고 있다.
이온 방식의 양자컴퓨터 개발도 초전도 방식 못지않게 상용화에 다가서 있다.
이온이란 양전하나 음전하를 띠는 원자를 의미하는데, 초전도 방식에 비해 양자의 성질을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온 양자컴퓨터는 이온 하나하나를 큐비트로 사용한다. 이온 방식도 진공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과도 접촉하지 않게 공중에 띄운 후 이온 하나하나에 레이저 광선을 쏘아서 이온 안의 전자를 움직여 조정한다. 실행하고 싶은 연산 순서에 맞춰서 이온에 레이저 광선을 쏘면 된다. 자연 상태에서 발생한 이온은 제조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는 초전도 회로와 달리 오차가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정밀 조작이 쉬워 정확한 연산을 해낼 수 있다. 다만 한 개의 진공용기 안에 둘 수 있는 이온의 숫자가 제한적이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큐비트의 개수를 쉽게 늘릴 수 없는 것은 성능 확대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단 얘기다.
이밖에 기존의 반도체 기술을 응용하는 방식에서부터, 광자, 중성자를 이용하는 방식까지 다양한 양자컴퓨터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상용화 시기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곧 다가올 미래 기술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는 상태다. 그래서 각국 정부의 양자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도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가장 앞서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2018년 세계 최초로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법을 제정해 일찌감치 양자 산업 지원에 나섰다. 이 법을 통해 2019~2023년 5년 동안 12억달러(약 1조 75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때는 트럼프 1기 정부로, 올해 시작되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정책의 연속성 차원에서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2.0 전략을 발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또 지난해 미 상원에서는 2024년 에너지부 양자 리더십 법안이 통과됐다. 미국의 양자 연구 및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안은 5년 동안 25억달러(약 3조 6500억원)를 투자하게 된다. 양당간 대립이 심한 상황에서도 양자 산업 선점을 위해 초당파적으로 법안에 합의했다. 중국도 양자 산업 지원에 진심이다. 2021년부터 5년 동안 22조원을 투자하는 ‘양자굴기’를 진행 중이다. 세계 최대의 양자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재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은 2022년 양자기술을 핵심 성장산업으로 선정하고, 2040년까지의 장기 구상을 담은 ‘양자기술 혁신전략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EU는 2020년 2월 발표된 ‘유럽 디지털 미래 준비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최첨단 양자역량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반해 우리는 첨단산업 기술경쟁에서 항상 그렇듯이 이제서야 첫 발을 내딛은 상태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양자기술산업법을 바탕으로 올해 양자과학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 양자전략위원회 출범 등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1000 양자비트(큐비트)급 양자컴퓨터 개발에도 나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양자 기술 수준은 양자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나 언제쯤 가능할지 의문부호가 찍힌다.
지난해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글로벌 R&D 전략지도에 따르면 양자 분야에서 한국은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관련 예산부터가 양자 선진국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올해 양자 관련 예산은 지난해 대비 54.1% 증액된 1981억원 규모, 조 단위의 미·중 예산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