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넘은 노모는 홈쇼핑 예찬론자다. 집안 살림에 필요한 웬만한 것들은 그때그때 홈쇼핑에서 장만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을 때 바로 전화로 주문하면 현관까지 배달해주고, 맘에 안 들 땐 무료 반품도 되니 쌀, 고구마 같은 농산물부터 옷, 신발, 가전까지 온갖 생필품들을 홈쇼핑으로 주문해 사용한 지 오래다. 필요하지 않은 것도 쇼호스트의 설명을 듣고 있다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기 마련. 덕분에 집안은 어느새 홈쇼핑 히트상품 전시장(?)이 됐다.
그런 모친이 불만인 것이 있다. 단골고객에 대한 ‘예우’가 없다는 점이다. “전통시장은 단골도 알아봐주고 콩나물 한 움큼 더 집어주는 맛이 있는데, 홈쇼핑은 그렇게 오랫동안 많이 사도 할인해주는 게 없다”며 “앱 주문을 하면 1000원을 할인해준다는데, 그걸 할 줄 모르니. 주문할 때마다 매번 온라인보다 더 비싸게 사는 격”이라고 했다.
모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인터넷쇼핑이나 인터넷뱅킹을 못하니 온라인 혜택은 항상 열외다. 얼마 전엔 “신문 보고 고금리 은행 특판상품이 나왔다 해서 은행에 갔더니 온라인으로 몇 시간 만에 완판됐다고 하더라”며 “나이 먹은 사람들도 신청할 수 있게 해줘야지, 허탕만 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디지털 소외자인 노모를 더 화나게 한 건 그 은행점포가 최근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다녔던 은행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거래가 증가하면서 은행 폐점이 가속화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은행점포 수는 지난 2년간 600여 곳이 줄었다고 한다. 시니어 고객들에 대한 배려보다 당장의 손실을 털어내기 위한 점포정리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통계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65살 이상 노년층의 70%가 지점 방문으로 거래를 하고, 온라인 거래만 이용하는 비율은 8%에 불과했다. 또 노년층의 금융거래 때 불편함을 돈으로 환산하면, 한 해 2만4600원으로 청장년층의 2배가 넘는다고 한다. 노년층이 지점을 방문해 금융거래를 할 때 수수료 부담은 물론 대기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비대면으로 가입하면 우대금리를 적용해주는 온라인 이벤트나 리워드 같은 혜택도 없다. 지난해 고령층의 80%가 앱 우대금리를 받지 못했다는 조사도 있다. 노년층은 시간적, 금전적, 혜택적으로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디지털화, 자동화, 비대면화가 산업 전반에 가속화하고 있다. 5년 이상 걸릴 디지털 전환이 코로나19 탓에 1년 만에 이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핀테크 기업들이 급증하면서 5분이면 비대면으로 해외송금 신청을 할 수 있고 수수료도 싸졌다. 고액자산가나 받을 수 있던 맞춤형 자산관리도 AI 로보어드바이저가 해준다. 덕분에 소비자는 편리해졌다. 그런데 모든 소비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디지털에서 소외된 아날로그 고객은 비대면, 자동화로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점포는 없어지고, 쓸 줄 모르는 키오스크는 늘고 온라인 혜택에서는 제외되고 있다.
기업들은 오로지 MZ세대 마음을 사로잡는 데만 주력하는 것 같아 아쉽다. MZ세대는 물론이고, 고령층도 쉽게 접근시키려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기존 은행들이 디지털, 비대면으로 불편을 겪는 고령층을 위해 우체국 창구를 활용한 점포, 한 지점에 두 은행이 자리하는 은행 공동점포 등을 신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지역주민 반발로 폐점 계획을 철회한 점포가 나오는가 하면, 오프라인 점포의 영업시간을 늘리는 역발상 점포도 늘고 있다.
디지털화(Digitalization)로 인해 디지털을 이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나뉘는 ‘디지털 디바이드’가 가속화해서는 안 된다. MZ세대와 함께 고령층도 포용할 수 있는 디지털화가 돼야 한다. 그것은 고령화시대 노년층을 위한 복지인 동시에 미래 핵심 고객층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