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이제 겨우 두 달 정도만 남았다. 서점가에는 벌써 내년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들이 나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매년 연말을 향해가는 시기가 오면 서점 매대를 장악하는 책들이 있다. 내년 트렌드와 유행을 전망하는 각종 책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트렌드 전망’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있을 것이다. 몇 십 년째 꾸준히 사랑받아온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트렌드 코리아 2024>가 나왔다.
올해의 핵심 화두는 단언컨대 생성AI 기술 ‘챗GPT’다. 이제 평상시의 말과 글로 이루어진 인공지능 시대에 돌입한 셈이다. 이 시점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4>는 인간의 역할 혹은 역량에 주목했다. AI는 자신이 내놓은 결과물에 점수를 매기고, 결과물을 채택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등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번 트렌드 코리아는 이 이야기를 담는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트렌드 예측’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4>다. 2008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듬해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는 그의 책은 마치 1970~1980년대 주부들이 새해를 앞두고 새 가계부를 사놓는 것과 비슷하게 눈에 띄지 않으면 허전한 수준이 됐다.
김 교수가 들고나온 내년 트렌드는 ‘용의 눈’, 바로 ‘DRAGON EYES’다. ▲분초사회 ▲호모 프롬프트 ▲육각형 인간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 ▲도파밍 ▲요즘남편 없던아빠 ▲스핀오프 프로젝트 ▲디토소비 ▲리퀴드폴리탄 ▲돌봄경제의 영어 앞 글자를 딴 것이다.
분초사회는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바뀌면서 ‘시간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초 단위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도파밍은 즐거움과 흥분 호르몬인 도파민을 폭발시킬 정도의 재미를 좇는 경향이다. 가정에서 평등한 반려자,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땡 퇴근하는 ‘요즘남편 없던아빠’가 가정과 기업, 소비의 풍경을 바꿀 것이라고 김 교수는 예측했다. 복잡한 구매 의사 결정을 내릴 필요 없이 나의 가치관과 취향을 오롯이 반영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디토소비’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AI 시대의 새로운 키워드로는 ‘호모 프롬프트’를 꼽았다. 프롬프트는 AI에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 위해 인간이 던지는 질문을 뜻한다. 인간이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AI가 내놓는 결과물이 달라진다. 그만큼 AI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역량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활용하는 계층과 이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계층 간의 격차가 커지는 현상)’보다 ‘아날로그 디바이드’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육각형 인간’도 눈길을 끄는 키워드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 육각형 그래프에 딱 맞는 완벽한 인간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한때 세계 시장 진출은 내수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의 두 번째 스텝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글로벌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조언이 적지 않다. 저자 역시 막연한 ‘언젠가’가 아닌 ‘지금 당장’을 강조한다. 특히 내수 시장이 좁은 한국의 경우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힘주어 말한다. 구글, 줌, 에어비앤비, 슬랙, 애플부터 실리콘 밸리 한국인 창업 1호 유니콘 기업 몰로코와 센드버드까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250개 업체의 성장사를 소개한다. 현지 고객 니즈 충족 여부를 확인하고, 수익성까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 걸맞은 팀 구성, 조직관리, 지원 규모 설정, 문화 균형 관리법을 전한다.
이 책은 20세기 초 중국의 민족주의적 지식인들이 어떻게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하나의 국가이자 민족’이라는 신화를 창조해냈는지 파헤친다. 저자 빌 헤이턴은 2021년까지 BBC 기자로 일했다. 저자는 “한의 역사는 짧다. 불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시진핑의 ‘중국몽’이 가져올 파국을 우려한다. 현재 중국은 100년 전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꾸며낸 역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5000년 동안 세상을 호령하던 ‘한족 국가’ 중국이 아편전쟁 등 외세의 침략을 받아 고난을 겪었고, 이제 다시 중국이 위대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시각이다.
꼬마빌딩 투자자들을 위한 리모델링 재테크 안내서. 리모델링 전문가인 저자는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임대료와 건물 가치를 상승시키는 방법을 소개한다. 현재 우리가 서울 시내와 수도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들은 지은 지 30~40년이 된 것들이다. 리모델링은 부동산 경기와 상관없이 실행할 수 있는 재테크 기법이다.
예비 건물주와 건물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핵심 지식을 실제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예비 건물주, 건물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핵심지식만 군더더기 없이 꾹꾹 눌러 담았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이 집필한 음악이론서 <악서고존(樂書孤存)>을 두고 “음악적으로는 정약용이 틀렸다”며 “음악 실용서로만 본다면 <악서고존>은 무가치한 저술”이라고 비판한다. <악서고존>은 삼대(三代)부터 근세까지 동아시아의 육률ㆍ오성ㆍ팔음 논의를 아우르고 비판하는 정약용 필생의 노작이며 다산 경학(經學)의 마침표를 찍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한국음악학’과 ‘미학’ 연구자로 전환한 김세중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그간 전모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 책을 해석·비판했다. 음악적으로는 설득력이 약한 부분이 많지만, 음악 실용서가 아니라 다산 경학의 완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해설서로서 쓰임을 높이기 위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530쪽 분량의 <악서고존> 필사본을 축소 영인하고 처음으로 쪽마다 번호를 달아 책 부록으로 실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