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지위를 추구한다. 날마다 더 나은 자리를 얻으려고 투쟁한다. 안정된 삶의 조건, 즉 등 따습고 배부르며 마음 편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우리 열망은 끝이 없다. 순간순간 다른 사람들과 피 터지게 경쟁하면서 어떻게든 집단이나 조직의 상층부로 올라가 사람들 찬사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출세는 인간의 근본 욕망이다.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더 높은 지위를 갈망하고, 애써 얻은 지위를 잃을까 무서워하면서 살아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말했다. “아테네인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 믿을 수 있겠는가?” 그가 갈망한 것은 궁극의 평판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얻으려고 자기 위에 다른 인간이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페르시아제국을 무찌르고 인도까지 정복을 밀어붙였다.
그리스인들은 명예(time)와 명성(kleos)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명예는 죽음도 불사하는 투쟁에서 두려움을 떨치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탁월성을 증명했을 때 생겨나고, 명성은 그 명예가 죽음마저 뛰어넘어 후대로 이어졌을 때 생겨난다. 명예의 대가는 높은 지위이고, 명성의 대가는 불멸이다. 명예와 명성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영웅이 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성취한 듯한 뿌듯함을 얻는다.
영국 작가 윌 스토의 <지위 게임>에 따르면, 지위는 사람들이 우리를 추종하거나 존경하거나 추앙하거나 칭송하는 자리로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하는 상태를 뜻한다. 서로 관계를 맺어서 집단을 이루고, 사람들 인정을 받아서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지위를 향한 추구는 우리 유전자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인간은 주변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손에 쥐었을 때 더 행복감에 사로잡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지위 게임을 치른다. 지위는 우리 인생의 거멀못이다.
지위는 무엇보다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든다. 지위가 높아지면, 집단 내 영향력이 커지면서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고, 더 건강하고 매력적인 짝을 만날 수 있으며, 더 많은 자손을 남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23개국 6만 명 이상을 조사한 연구 결과는 안녕감이 항상 남들에게 존중받는 정도에 달려 있음을 밝혀냈다. 저자는 지위가 우리의 꿈을 열어줄 황금 열쇠라고 말한다.
누구나 지위가 살짝이라도 오르면 짜릿한 희열을 맛보고, 약간만 미끄러져도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지위는 인간관계를 활성화하고, 경력을 훌륭하게 만들며, 자존감을 높여주고, 행복감을 늘려준다. 자신이 더 가치 있고 올바르며, 미래가 갈수록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부풀린다. 한마디로, 좋은 지위는 원칙적으로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지위를 잃으면 많은 것도 함께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지위를 잃고 관계도 줄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부부 갈등은 심해지고, 이웃과 다툼도 커지는 등 사회생활 전반에 크고 작은 문제가 나타난다.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암이나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등 몸과 마음의 건강이 나빠진다. 내버려 두고 방치하면 자기 존재 의미를 상실하면서 인생 전체가 실패로 치달을 수 있다. 지위 상실은 자기 파괴나 극단적 선택의 핵심 원인이다. 스토에 따르면, “우리의 뇌에 지위는 산소나 물만큼 중요한 자원이다”. 지위를 잃으면 자칫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지위를 탐지하는 탐침이 달려 있다. 낯선 곳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방을 둘러본 후, 순식간에 서열을 매기고 자기 지위를 확인한다. 1초도 안 돼서 그 공간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때때로 지위 앞에서 우리는 무척 유치해지기도 한다. 미국의 한 기업에서 모든 부사장에게 펜 하나를 꽂는 탁상용 문구 세트를 제공했다. 그러자 부사장 한 사람이 곧장 펜 두 개짜리 문구 세트를 구매하는 등 경쟁이 벌어진 끝에 나흘 만에 모든 부사장이 펜 세 개짜리 문구 세트를 마련했다. 지위 게임에 들어서면 아주 사소한 차이도 결정적으로 느껴진다.
지위 게임에는 성공 게임, 도덕 게임, 지배 게임 등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성공 게임에선 기술, 재능,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얻는다. 17세기 유럽에선 프랜시스 베이컨, 요하네스 케플러 등 지식인들끼리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기 최근 연구 업적을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유행했다. 이를 ‘편지 공화국’이라고 한다. 이 공화국에서는 새로운 발견과 지식이 화폐였고, 높은 지위를 보장받는 수단이었다. 그 결과, 과학 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가 확산하는 등 성공 게임이 인류 진보와 혁신을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도덕 게임에서는 의무감 강하고, 헌신적이며, 윤리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는 게임 규칙을 교리로 표현하고, 믿음에 따라 더 높거나 낮은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믿음의 대가인 지위는 반드시 현세에 주어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높은 지위는 사후에 ‘하느님 나라’ ‘극락’의 주민증 같은 형태로 주어진다. 사회에서 소외받고 상처받은 이들은 쉽게 ‘사이비 종교’라는 도덕 게임에 빠져들기도 한다. 혼란에 빠져 있는 자아는 교주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이라는 단순명료한 규칙에 쉽게 순종하기 때문이다.
지배 게임에서는 힘이나 공포를 무기로 지위를 차지한다. 인간적 수치심과 모멸감은 인간 폭력성을 자극해 극단적 테러의 형태로 자기 지위를 높이려는 시도를 낳는다. 특히, 어린 시절 경험한 반복적 모욕감은 무척 위험하다. 무차별 폭탄 테러를 저지른 ‘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는 그 예에 해당한다. 때로 지배 게임은 국가 차원에서 나타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에 대한 무자비하고 가차 없는 처분은 독일 국민의 굴욕감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히틀러의 부상을 가져왔다. 누군가에게 지속적 모멸감을 느끼게 하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소시오패스가 될 수 있다.
무엇으로, 어떻게 지위를 추구하느냐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연히 보여준다. 높은 지위만 추구해서는 인간성을 상실한 채 괴물이 되기 쉽다. 비싼 차, 좋은 집, 명품 같은 물질적 상징에 매몰되면 삶은 결국 허무하게 된다. 인생 게임에는 결말이 없기에, 누구나 인생 마지막쯤엔 힘을 잃고 패배자가 된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할 것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사는 법을 깨닫고, 순간순간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장은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