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협주곡!’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에 붙은 별명이다. 그 자신이 탁월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이 거대한 협주곡은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극도의 부담을 안기는 난곡으로 유명하다.
이 곡을 연주하려는 피아니스트는 가장 험난한 도전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우선 최고난도의 연주 테크닉을 연마해야 하는데, 키 190㎝가 넘는 장신에 12도(건반에서 도부터 한 옥타브 위 솔까지 닿는 범위)를 넉넉히 커버하는 거대한 손을 가졌던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하기 위해 쓴 곡이다 보니 신체적인 면에서의 진입장벽부터 만만치 않다.
게다가 연주 시간만 40여 분에 달하는 장대한 악곡의 규모와 중량감을 견뎌낼 파워, 스태미나를 겸비해야 하고 악곡 전체의 구조와 관현악과의 호흡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교향악적 협주’를 이루어낼 수 있는 음악성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온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괴물 같은 피아노 협주곡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져왔다. 일단 곡을 쓴 장본인인 라흐마니노프 자신부터 ‘코끼리를 위한 작품’이라며 연주상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고, 그의 친구이자 서로 존경하는 라이벌이었던 불세출의 비르투오소 조셉(요제프) 호프만은 작품을 헌정 받아 놓고도 공식적인 무대에서는 일절 연주하지 않았다.
1930년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나타나 ‘작품을 통째로 집어 삼켰다’는 작곡가의 찬탄을 자아내며 최초의 챔피언으로 등극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난곡은 극소수 피아니스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이 곡에 대한 피아니스트들의 부담감과 두려움을 단적으로 극화한 사례가 바로 1996년에 개봉했던 스콧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이다. 데이비드 헬프갓이라는 실존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 영화에서 이 협주곡은 그야말로 피아니스트의 육체와 정신을 잠식하고 침몰시키는 악마적인 괴작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라흐마니노프는 왜 이처럼 어마무시한 협주곡을 썼던 것일까?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그의 첫 번째 미국 투어를 겨냥한 출사표였다. 1909년, 라흐마니노프는 몇 차례 주저한 끝에 미국으로부터의 초청을 받아들였고, 여름휴가 동안 이바노프카에 있는 영지에 머물며 그 투어에서 연주할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을 (약 4개월에 걸쳐) 작곡했다. 그로서는 난생 처음 마주할 머나먼 이국의 청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단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 ‘매머드 같은’ 협주곡을 일종의 승부수로 준비했던 것이다. 그는 이 곡을 1909년 11월 28일 월터 담로슈가 지휘한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에서 직접 초연했다.
한편 이 곡을 쓸 즈음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서 가장 풍성한 수확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보통 라흐마니노프의 전성기를 1907년부터 1917년까지, 즉 서방으로 망명하기 전의 10년간으로 보는데, 이 시기에 그는 이 협주곡을 비롯하여 <교향곡 제2번 e단조>, 교향시 <망자의 섬>, 합창 교향곡 <종>, 종교 음악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전례> 등의 역작을 내놓았다.
특히 이 협주곡을 통해서 라흐마니노프는 회심의 성공작이었던 전작,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를 모든 면에서 넘어서는 성취를 거두고자 했다. 그래서 기교와 규모의 확장은 물론이고 주제 선율의 구성과 전개에 있어서도 다분히 ‘베토벤적’인 인상을 남기는 ‘제2번’과 달리 보다 유연하고 유동적인 ‘모차르트적’인 방식을 택했으며, 악곡의 구조 및 관현악과의 짜임새에 있어서도 브람스의 ‘교향악적 협주곡’을 방불케 하는 긴밀함과 유기성을 추구했다.
아울러 그는 이 곡에서 한 편의 감동적인 음악적 드라마를 펼쳐 보였다. 이 곡에는 한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극한의 고난과 시련이 녹아 있고,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그 역경의 시간을 딛고 환희와 영광의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인간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러시아적 정서와 서사성, 진중한 우수와 고뇌,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채색되어 있다. 이처럼 개성적 표현과 음악적 완성도, 인간적 드라마가 한데 어우러진 몰입도 강한 작품이기에 이 곡은 언제나 감상자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마디로 ‘라흐마니노프 전성기의 표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이 협주곡은 이번 세기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모습이다. 앞서 거론한 영화 <샤인> 이후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 난곡에 도전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고, 그 도전에서 준수한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증가했다. 그 결과 이제는 오랫동안 라흐마니노프의 최고 인기작으로 군림해온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의 위상을 여러모로 추월하는 감마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청중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인기에 힘입어 거의 ‘대중적 명곡’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 곡의 과거 이미지가 어땠는지 떠올리면 실로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