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백화점 1층 주얼리 매장. 고객들이 새로 출시된 18K 골드 목걸이 앞에서 가격표를 보고 놀란다. 올해 들어 크게 뛴 가격 때문이다. 9월 15일 현재 금값은 온스당 3641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초 대비 40% 가까이 오른 것이다. 한편, 해외에서는 흥미로운 대응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과 런던, 파리는 물론 일본의 주얼리 매장들에서도 과거의 주얼리를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최신 컬렉션보다 1940년대부터 90년대 작품들을 선호하는 이들이다.
왜 옛 제품일까? 일단 과거에 제작된 빈티지 주얼리들은 금 함량이 높은 편이다. 1960~1990년대 금목걸이나 브로치들이 ‘착용하는 금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당시는 상대적으로 금값이 저렴했고, 현재 처럼 극도의 원가 절감 압박이 없던 시기였다. 디자인의 독특함도 매력이다. 현재와는 다른 스타일과 트렌드를 반영한 빈티지 주얼리들은 개성있는 선택지가 된다. 특히 1980년대 대담한 대형 디자인이나 플렉서블한 금팔찌 등은 현재 시장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한 스타일이다.
결정적인 건 경제적 논리다. 빈티지 제품들은 제작 당시의 금값 기준으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최근 급등한 금값이 바로 반영되지 않거나 늦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신제품들이 현재 시세를 즉각 반영하는 것과 대비된다. 현재 금값 상승기에 빈티지 주얼리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는 이유다.
실제 시장 움직임은 활발하다.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빈티지 주얼리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는 업계의 집계가 나오고 있다. 버그도프 굿맨, 모다 오페란디 등 대형 소매업체들이 관련 상품 라인을 확대하고 있고, 뉴욕의 전문 매장들은 추가 매장 개설을 검토 중이다. 미국의 럭셔리 빈티지 주얼리 전문업체 ‘Yafa Signed Jewels’도 금값 상승 이후 문의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반클리프아펠, 까르띠에, 불가리 등 유명 브랜드의 과거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아졌다. 소비자들이 빈티지 주얼리를 ‘역사와 독창성, 장인정신을 합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진정한 컬렉터블’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라스베이거스 주얼리 전시회에서도 앤틱 주얼리 부문이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경제적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빈티지 주얼리를 헤지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고순도 금에 희귀 보석, 브랜드 히스토리까지 더해져 희소성과 스토리, 투자 가능성을 모두 갖춘 자산이 됐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다르다. 해외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한국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근본적으로는 문화적 차이가 크다. 서구 사회에서는 조부모나 부모 세대의 주얼리가 가족사를 담은 의미 있는 유산으로 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중고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인프라의 차이도 상당하다. 해외에는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신뢰할 만한 경매 시스템과 전문 감정사, 체계적인 인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반면 국내는 정품 확인이나 인증 체계가 부족해 시장의 신뢰도가 낮다. 거래 대부분이 당근마켓 같은 개인 간 플랫폼에서 이뤄져 전문성이나 안전성 담보가 어렵다. 구매 패턴의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아직 ‘새 것’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특히 주얼리처럼 개인적이고 상징적 의미가 큰 제품일수록 그렇다. 결혼반지나 기념품의 경우 새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변화의 움직임은 분명하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빈티지 주얼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채굴 없이도 아름다운 장신구를 소유할 수 있다는 환경적 가치가 젊은 층에게 어필하고 있다. 현실적인 요인도 크다. 금값 상승으로 신제품 구매 부담이 커지면서 대안으로서 니즈가 함께 커지고 있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의 성장도 긍정적인 신호다. 온라인 거래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중고 명품이나 빈티지 아이템에 거부감을 줄여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금값이 연말까지 온스당 370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빈티지 주얼리 시장도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다만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품 인증 시스템 구축과 전문 유통 채널 개발, 소비자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금값 급등이 만들어낸 이 변화의 물결은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해외에서는 빈티지가 중고품에서 투자 가치를 지닌 컬렉터블로 인식이 바뀌었다. 과거의 것이 현재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 시장도 언젠가는 이 흐름에 합류할 것이다.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에 달려 있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