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강원도의 선산을 상속받았다. 선산은 도로에서 떨어진 맹지여서 1억원에 불과했다. 어느 날 부동산개발업자 B가 찾아와 주변 땅까지 매수해 리조트 개발을 할 예정이라며 계약 즉시 2억원을 지급할 테니 선산을 10억원에 팔라고 했다. 다만 자금이 부족하니 선산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대출받는 데 동의해달라고 했다. A는 일이 잘못되어도 2억원을 미리 받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에 B의 제안에 응했다. B는 A에게 계약금 2억원을 지급했고, 이후 리조트 개발 허가를 받았다. 리조트 개발 허가로 선산의 가치는 크게 높아졌다. B는 은행에 선산을 담보로 20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B의 리조트 사업은 자금 부족으로 중단되었고, B는 채권자들을 피해 자취를 감췄다. 은행은 선산을 경매에 부쳤고, C가 20억원에 낙찰받았다. 세무서는 A가 1억원에 상속받은 토지를 20억원에 팔아 19억원의 양도차익을 얻었다며 A에게 양도소득세 9억원을 부과했다.
‘물상보증인’이란 다른 사람의 채무에 대한 담보로 재산을 제공한 사람을 말한다. 요즘 세상에도 아직 물상보증인이 있을까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물상보증인이 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A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A의 선택을 법적으로 분석해보자. 연대보증인과 달리 물상보증인은 채권자에게 어떠한 채무도 부담하지 않는다. A가 B의 채무를 연대보증했다면, A는 은행에 20억원의 연대보증채무를 직접 부담한다. 은행은 A를 상대로 20억원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판결을 받아 선산을 경매에 부칠 수 있다.
하지만 A는 물상보증인이기 때문에 은행은 A에게 B의 채무를 갚으라고 할 수 없다. 오직 근저당권에 기해 선산을 경매에 부칠 수 있을 뿐이다. 선산이 1억원에 낙찰되어 은행이 1억원만 회수하더라도 A는 나머지 채무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담보로 제공한 선산으로만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물상보증인에게는 구상권도 있다. A는 선산을 잃게 되면 B에게 선산의 시가 상당액을 청구할 수 있다. B는 A에게 1억원인 선산의 대가로 10억원을, 일이 잘못되더라도 2억원을 벌 수 있는 제안을 한 것이다. 여러 법적 리스크를 고려하더라도 B의 제안은 매력적이다. 토지 소유자들이 부동산개발업자와 담보제공을 조건으로 한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금 문제를 고려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물상보증인 소유의 부동산이 경매에서 매각되면, 누가 양도소득세를 낼까? A가 선산의 소유자였으니 A가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매로 인해 누가 이득을 얻는지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선산의 매각대금은 근저당권자인 은행이 갖는다. 그로 인해 B는 은행에 대한 대출금 채무가 소멸하는 이익을 얻었다. 반면 A는 선산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다. B에 대한 구상권을 취득하지만, B가 재산이 없으면 구상권은 무용지물이다. 손해만 본 A가 양도소득세까지 납부해야 할까?
사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물상보증인이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 양도소득의 대상은 매각대금으로 물건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것이고, 저당권자는 경매부동산의 소유자에게 귀속된 매각대금을 채무의 변제로 받은 것에 불과하므로 양도소득의 귀속주체는 경매부동산의 소유자, 즉 물상보증인이라는 것이다.
물상보증인이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확고함에도 물상보증인들의 불복은 계속됐다. 소유권 상실에 이어 양도소득세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채무자가 무자력인 때에는 민법이 예정한 물상보증인의 구제수단, 즉 채무자에 대한 구상권이 무용지물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채무자에 대한 구상권 회수불능은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후발적 경정청구란 납세의무가 성립한 후에 과세처분의 기초가 되는 과세표준 및 세액에 영향을 미치는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감액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대법원은 위 규정을 근거로 소득의 원인이 되는 채권이 회수불능이 되면 후발적 경정청구를 하여 세금을 감액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본 사례에서 A가 B로부터 매매대금 10억원 중 8억원만 받고 B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A는 잔금 중 2억원을 받지 못했더라도 선산의 양도로 10억원의 양도소득을 얻은 것으로 간주되어 9억원의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B가 파산하여 A가 잔금 2억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정되면 어떻게 될까? A는 세무서에 B로부터 받지 못한 2억원을 양도소득에서 제외해 달라고 청구하여, 2억원 부분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반환받을 수 있다.
최근 한 법원은 채무자의 파산 등으로 물상보증인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음이 확정된 때에는 양도소득에서 구상권 행사불능액을 공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위 사례에서 A의 B에 대한 구상권 20억원이 행사불능이므로 A의 양도소득 20억원에서 구상권 행사불능액 20억원을 빼야 하고, 결국 A는 양도소득이 없으므로 A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물상보증인이 취득하는 구상권은 소득의 원인인 채권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위 판결을 파기했다. A가 얻은 소득은 C가 매각대금을 납입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B에 대한 구상권 취득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상권이 행사불능이라는 사정은 양도소득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A는 상속받은 선산의 소유권을 상실하고 9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부담하게 된다. 일본은 구상권 행사불능액을 양도소득에서 제외하는 특례규정을 두어 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우리도 입법적 해결을 고민할 때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9호 (2023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