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정보기술(IT)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 A씨(41·남)는 최근 1억원이 넘는 ‘테슬라’ 전기차를 법인 명의로 구매했다. 하지만 이 차량은 회사 업무가 아니라 현재 A씨 아내가 개인용도로 쓰고 있다. A씨는 가격이 1억원대 후반에 달하는 벤츠도 법인 명의로 사들였다. A씨는 이 차로도 주말 가족 나들이를 가는 등 개인적인 용도에 쓰고 있다. 그는 “대기업이야 법인 명의로 주로 현대자동차나 제네시스 등의 차량을 구입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법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수입차 브랜드의 전체 판매액을 합치면 국내 최대 완성차 그룹인 현대자동차·기아 판매액의 68%에 달할 정도가 됐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수입차 매출은 등록취득가액 기준으로 총 24조1735억원을 기록했다.
페라리 차량들
현대차(제네시스 포함)·기아의 국내 매출이 지난해 35조원으로 2년 연속 정체된 사이 수입차 매출은 2020년 20조7507억원에서 1년 새 16% 이상 뛰어올랐다. 특히 국내 시장점유율 2위 업체인 기아의 국내 판매액은 2019년 11조7639억원, 2020년 13조8945억원, 지난해 14조2412억원으로 이미 수입차 전체 판매액에 한참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A씨 사례처럼 수입차의 약진 뒤편에는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1대당 수억원에 달하는 수입 슈퍼카 구입 비용을 회사 운영경비에 포함해 세금은 덜 내고 정작 해당 차량은 업무용이 아닌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세무당국에 잇달아 적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슈퍼카를 편법적 절세 목적의 법인차량으로 구매하는 사례는 위화감 조성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
국내에서 억대 수입 법인차에 부여되는 세제상 혜택을 중지하면 연간 2조원 이상 추가 세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들 법인 구매 차량에 별도 색깔의 번호판을 달아 남용을 줄이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수입차는 국내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용효과 등은 미미하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다. 수입차 가격도 예전처럼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여기는 2030세대가 ‘프티 럭셔리(작은 사치)’ 가치를 내세우며 수입차 선택을 늘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내연기관차뿐 아니라 순수전기차도 잇달아 출시하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수입차 17곳의 총고용 규모는 2만3000명으로 직고용 인원만 3만5501명인 기아보다 훨씬 적다. 특히 전기차 강자인 테슬라는 온라인으로만 판매해 국내에서 고용 창출이 더욱 미미하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테슬라는 고용이 적은 데다 국내 사회 공헌은 제로(0)에 가깝다”며 “많이 판매하는 만큼 이익을 많이 남겨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억대 수입차 사는 데 年 6조 넘게 쓴 법인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이나 법인이 운행한 차량(승용차 기준) 2098만여 대 가운데 법인차는 총 244만여 대로 전체의 11%를 웃돈다. 가격이 1억원대 미만인 법인차 중에는 현대차 ‘에쿠스’와 제네시스 ‘EQ900’ 등 국산 차도 있지만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 수입차의 비중이 훨씬 높다. 특히 1억원을 넘어가는 법인차 중에는 국산차가 아예 없다. 가장 높은 가격대인 3억원 이상 법인차는 벤틀리 ‘플라잉스퍼’, 람보르기니 ‘우루스’, 벤틀리 ‘벤테이가’, 롤스로이스 ‘고스트’, 페라리 ‘488’ 등이 톱5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 3대 슈퍼카로 꼽는 브랜드인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의 지난해 국내 운행대수 가운데 법인이나 사업자가 운행하는 비율은 각각 70.1%, 80.2%, 81.6%로 개인 운행보다 훨씬 높다.
페라리 296 GTB
이유는 간명하다. 현재 영리법인은 매출이나 이익에 따른 과세표준에 따라 법인세율이 모두 다르다. 과세표준 2억원 이하에선 법인세율이 10%지만 2억원 초과 200억원 이하에선 20%로 2배나 뛰어오른다. 법인 운영자 입장에선 과세표준을 낮추기 위해 비싼 수입 슈퍼카 등을 법인차량으로 구매해 그 비용에다 유류비 등 운행비까지 더해 경비로 처리하며 과세표준 액수를 줄이고 세금도 덜 내려 하는 것이다.
문제는 세금을 덜 내더라도 법인 명의로 구입한 차량을 회사 일에 써야 하는데 정작 임원 등이 고급 슈퍼카를 몰고 다니며 업무를 보는 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법인차로 비싼 슈퍼카를 구매해놓고 실제로는 대표나 임원 가족이 몰고 다니는 ‘도덕적 해이’가 여기서 발생한다.
물론 대기업의 경우 과세표준이 워낙 높은 만큼 슈퍼카를 사더라도 법인세를 덜 내는 구간에 포함되기 어렵다. 따라서 수입 고가 슈퍼카를 그같은 방식으로 구매·사용하는 건 주로 중소·중견기업에서 종종 발생하고 있다.
람보르기니 우루스
경기도 시흥시에서 중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 B씨(65·남)도 마찬가지다. 그는 법인 명의로 벤츠와 BMW 등 고가 수입차를 수시로 바꿔가며 탄다. 그는 “람보르기니나 벤틀리 같은 차량은 워낙 눈에 잘 띄고 법인차라는 인식이 높아 (개인이 몰고 다니기엔 불편한 만큼) 굳이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슈퍼카를 아예 탈루의 대상으로 삼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국세청은 지난해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높은 소득을 얻으면서도 이를 고의적으로 탈루한 인플루언서 16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그 결과 이들은 소위 ‘뒷광고(대가 관계 미표시 광고)’와 간접광고 등을 통한 소득을 탈루하거나 외국 후원 플랫폼, 외국 가상계좌를 이용해 후원 소득을 탈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친·인척에게 부동산 취득 자금을 증여하고 슈퍼카 임차료 등의 사적 경비를 비용으로 계상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세를 탈루했다.
지난 2016년 정부는 이처럼 ‘무늬만 법인차’인 각종 사례를 막기 위해 개정법을 시행했다. 법인차량의 세금 감면 혜택을 낮추고 업무용 외에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업 법인차량은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고 세무서에 해당 차량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보험에 가입된 법인차량은 감가상각비·임차료·유류비·수리비·자동차세 등을 연간 1000만원까지 조건 없이 경비로 처리 가능하다. 하지만 1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운행일지 기록을 통해 차량이 업무용으로 사용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당시 개정법 시행 후 법인차의 사적용도 사용이 많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후 변한 것은 많지 않았다. 이듬해 국정감사에서 2015년 대비 2017년에 오히려 람보르기니의 국내 판매량 중 법인 등록비율이 5%포인트 높아졌고 페라리나 포르셰, 벤츠, 아우디 등도 변화가 없거나 소폭 줄어드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운행일지는 허위로 작성하면 되고 임·직원 전용보험에 가입해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 개정안은 가족 이름을 비상임이사와 같이 법인등기부에 올리는 방식으로 피해갈 수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법인이 업무용 승용차 취득 시 가격이 1억원을 초과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차료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손금 불산입(기업회계에선 비용으로 인정해도 세법에 따른 세무회계에선 손금으로 처리하지 않는 회계방식)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업무용 승용차의 관리·감독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엔 운행 실태를 점검하도록 하는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이는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기존 법은 회사 사주나 가족이 마음만 먹으면 법인차량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법인 슈퍼카 세제 혜택 줄이면 추가 세수 年 2.5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한 59초 공약 시리즈 중 ‘법인차 탈세’ 관련 내용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과 함께 출연한 공약에서 국내 수억원대 수입차 10대 중 6대가 법인차량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들 차량은 실제로는 개인용도지만 탈세를 위해 법인이 구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롤스로이스 고스트
지난해 1억원이 넘는 수입차는 국내에서 모두 6만5168대가 팔렸다. 그 가운데 법인차량으로 팔린 게 4만2616대로 65.4% 비중에 달했다. 반면 개인용으로는 2만2552대가 팔려 그 비중이 34.6%에 불과했다. 보통 개인사업자나 법인사업자들이 구매하는 업무용 차량은 회사 일에 사용되기 때문에 구입비용을 포함해 유류비 등 운행비용까지 모두 경비로 인정돼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총소득에서 경비가 제외되기 때문에 소득세와 법인세가 줄어드는 것이다. 문제는 억원대 수입차는 회사 업무 용도로 사실상 보기 어렵고 실제 사용도 업무 외 개인적인 용도로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회사 업무만을 위해 차량이 필요했다면 굳이 억원대 수입차를 살 필요도 없다는 지적이다.
윤 당선인의 공약은 이번 문제 해결책으로 세금 혜택을 받는 법인차의 경우 일반 차량과 구분하기 위해 녹색 번호판을 달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탈세로 지적한 법인 구매 1억원 이상 수입차에 대해 법인차량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정부 추가 세수는 얼마나 될까. 일단 추정 결과 연간 최대 2조513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법인에게 판매된 1억원 이상 수입차 판매금액은 총 6조5296억원이다. 이는 차량 모델별 가격표상 가격에 판매 대수를 곱한 수치다. 보통 회사는 이 구입비를 회사 수입에서 제외시켜(경비 처리) 소득세(개인사업자)나 법인세(법인사업자)를 절감한다. 만약 1억원 이상 수입차 구입비(6조5296억원)를 모두 경비로 인정하지 않으면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곱한 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세수는 증가하게 된다.
국내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 비율을 5 대 5로 가정하고 세율의 경우 법정 최고 세율(소득세율 49.5%·법인세율 27.5%)로 적용하면 연간 2조5139억원의 세수효과가 나오는 셈이다. 물론 이는 법인의 억원대 수입차 구입비에만 한정한 것이고 개인용도로 사용할 경우 유류비와 보험료, 수리비 등 유지비까지 경비로 인정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연간 세수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국내 수입차 업계의 매출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고용 등 국내 산업 발전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수입차 업체 17개사의 직·간접 고용 규모는 2만3000명 정도다. 2020년(2만882명)보다 10.1% 늘어난 규모다.
수입차 업계는 고용 창출에 애쓰고 있지만 전체 수입차 고용 인원을 따져도 국내 기업보단 한참 부족하다. 국내 기업인 현대차·기아와 외국계 3사(르노코리아·한국GM·쌍용차)는 국내에 제조시설이 있어 일자리를 창출한다. 지난해 기준 기아의 직고용 인원만 3만5501명이다.
전체 국내 판매량의 3%가량에 불과한 쌍용차의 고용 직원도 4300여 명이다. 이에 반해 수입차 브랜드들은 국내에 판매 법인만 두고 있어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