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영토 확장에 나서며 미디어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를 제작하고 제공해온 전통적인 사업을 넘어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와 스포츠 중계 등 신규 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OTT 플랫폼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산업은 다름 아닌 스포츠 중계다. 그간 매년 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며 플랫폼을 대표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등 지식재산권(IP) 확보에 열을 올렸던 OTT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실시간 스포츠 중계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그간 양질의 콘텐츠를 사전 제작해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인기를 바탕으로 구독자를 늘려오던 선순환 공식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세계 1위 OTT 기업 넷플릭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링 중계권을 최근 사들였다.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 산하의 프로레슬링 브랜드 RAW가 그 주인공. 넷플릭스는 2025년부터 10년간 무려 50억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독점 중계권을 따냈다. 한화 6조7000억원의 거금이다. 1953년 출범한 WWE는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링 단체로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스포테인먼트 산업으로 평균 200만 명의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 유튜브 구독자 기준 WWE는 1억 명의 구독자를 보유해 전 세계 스포츠 채널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미국 프로농구(NBA)가 2150만 명, UFC가 1770만 명으로 2위와 3위에 올라 있다. 유튜브에서만 놓고 보면 WWE는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스포츠 채널인 셈이다. 특히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유튜브 역시 스포츠 중계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세계 1위 OTT인 넷플릭스가 이러한 프로레슬링 생중계에 나선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IPTV, 동영상 스트리밍, OTT 산업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암묵적으로 지켜왔다면 지금부터는 이러한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전설적인 복서 마이크 타이슨의 이벤트 복싱 경기 스트리밍도 일찌감치 예고하고 있다. 오는 7월 20일 미국 댈러스 AT&T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이 경기는 넷플릭스가 여는 두 번째 복싱 이벤트 경기다. 넷플릭스는 이처럼 일회성 이벤트 경기 형태로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을 조사한 뒤 이번 WWE와의 대규모 계약을 성사시키며 회사의 미래를 걸었다.
미 NBC 뉴스는 넷플릭스에 대해 “방송과 케이블의 전통적인 강자들을 제치고 스포츠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가장 야심찬 행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 애플이 운영하는 애플TV 역시 이러한 중계 시장에 일찌감치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애플은 2022년 10년간 25억달러, 한화 3조3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독점 중계권을 계약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내 비인기 종목으로 손꼽히는 축구에 투자한 애플의 행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축구황제 리오넬 메시가 지난 2023년 MLS에 진출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메시 효과로 MLS의 인기가 치솟았고 자연스레 애플에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메시가 데뷔한 날 MLS 중계 시즌권 신규 가입자가 하루 만에 11만 명을 넘었다. 일일 가입자 증가 추세에 따르면 1690%나 증가한 숫자였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6만 5000명의 신규 가입자를 확보하며 애플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미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인 내셔널풋볼리그(NFL) 중계권을 따내기 위한 쟁탈전도 뜨겁다. NBC유니버설이 운영하는 OTT 서비스 ‘피콕’은 올해 NFL 플레이오프 경기를 독점 중계하며 2300만 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한 바 있다. 그 덕분에 피콕의 신규 구독자 수는 사흘간 280만 명에 달했다. 이는 NFL 플레이오프가 OTT를 통해 생중계된 최초의 사례로 앞으로 주요 스포츠 이벤트의 중계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내년에는 아마존이 운영하는 OTT 서비스 ‘프라임 비디오’가 내년도 NFL 플레이오프 중계권을 독점으로 따내며 치열한 경쟁이 예고됐다. 앞서 프라임비디오는 연간 10억달러를 투자해 2022년부터 NFL 경기를 독점 중계해 왔다. 또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와 프로농구 브루클린 네츠 경기 중계권을 가진 예스네트워크 지분을 확보하며 광폭 행보를 보였다. 연간 이용료가 139달러인 아마존 프라임 구독 프로그램은 전 세계 이용자만 2억 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구독형 서비스다.
국내서도 이런 중계권 확보 움직임은 대세로 자리잡았다. CJ ENM의 OTT 서비스 티빙은 올해부터 국내프로야구(KBO)의 중계권을 사들여 독점 중계에 나선다. 2026년까지 3년간 1350억원을 지급한다. 종전 계약이 5년간 11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연평균 2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이번 계약으로 티빙은 뉴미디어 분야 KBO리그 전 경기와 주요 행사 생중계, 주문형비디오(VOD) 스트리밍 권리, 중계권 재판매 사업 권리를 2026년까지 보유하게 된다. 티빙은 이러한 계약과 동시에 광고형 스탠다드 요금제(월 5500원)를 내놓으며 가입을 해야지만 국내프로야구를 온라인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한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쿠팡 역시 아마존과 비슷한 스포츠 스트리밍 중계 확대에 적극적인 국내 기업 중 하나다. ‘쿠팡플레이’라는 OTT를 보유한 쿠팡은 K리그와 스페인 라리가, 프랑스 리그앙 등 전 세계 주요 축구리그와 포뮬러1(F1), NFL 등 국내에는 생소한 틈새시장 스포츠 중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4년 하반기부턴 4년간 350억원 규모의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독점 중계권도 확보한 상태다. 또 아시안컵에 이어 미국 프로야구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까지 독점 유치하며 스포츠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분석 서비스 기업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월 앱 월간 활성이용자 수(MAU)는 쿠팡이 778만5000명, 티빙이 656만 4000명으로 집계됐다. 두 OTT는 직전달 대비 각각 12.6%, 7.7% 성장했는데 이는 당시 열렸던 아시안컵 독점 중계권을 두 OTT 사업자가 따낸 덕분으로 풀이된다. 즉 스포츠 이벤트 중계가 서비스 활성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실제 스포츠 중계가 OTT의 차세대 킬러 콘텐츠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OTT 동향 분석’ 자료에 의하면 OTT가 스포츠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을 넘어 기존 전통적인 중계 시스템도 대체할 수 있는 창구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OTT를 통해서도 실시간 스포츠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환경적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이제 대부분의 가정에서 스마트TV나 스마트폰 등 기기를 활용해 OTT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통신기술 등의 발전으로 OTT 서비스로도 충분히 끊기지 않는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고화질로 제공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 환경도 조성됐다.
큰돈을 쏟아붓고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던 오리지널 콘텐츠의 위험 부담을 분산하는 데도 스포츠 스트리밍이 큰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인기가 보장된 스포츠 스트리밍의 경우 시즌 동안 꾸준히 시청자층을 확보할 수 있고 이는 구독자가 꾸준히 서비스를 구독해서 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기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제공 직후 이를 다 소비한 시청자들이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는 등 단기 가입자 증가 효과를 내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최근 OTT가 내놓고 있는 광고요금제도 이러한 스포츠 중계 서비스와 윈윈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 OTT 구독 서비스 비용 부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OTT 구독을 해지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는 가운데 광고를 보는 조건으로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광고요금제는 많은 OTT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요금제다. 이런 상황에서 야구나 농구, 미식축구와 같이 각 이닝이나 쿼터가 끝날 때마다 휴식이 주어지는 스포츠 경기의 경우 자연스럽게 중간광고를 집어넣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청자들 역시 스포츠 중계 중간중간 광고를 시청하는 것이 익숙한 만큼 거부감 없이 광고요금제를 보다 쉽게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영상 콘텐츠를 보지 않던 사람들까지 스포츠 중계를 보기 위해 해당 OTT 서비스를 가입하는 신규 가입자 창출 효과로 귀결된다. 또한 광고주들로부터 다양한 광고를 따내기에도 충성도 높은 팬덤을 가진 스포츠 중계권의 힘이 발휘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전체 OTT의 유료 구독자 중 28%가 광고요금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OTT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필두로 또 다른 영역으로의 확장도 도전 중이다. 바로 게임과 온라인 쇼핑 등이 그 후보다. 이미 넷플릭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을 넷플릭스 앱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단순히 영상 콘텐츠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풍부하게 실험해보는 것이다. 디즈니플러스 역시 광고 시청을 전제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게임 서비스와 쇼핑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리타 페로 디즈니 광고 책임자는 “광고주가 참여할 수 있는 쇼핑 및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디즈니는 이미 전 세계적인 팬덤을 보유한 다양한 IP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을 갖고 있다.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디즈니 드림라이트 밸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이미 50개 이상의 모바일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는 넷플릭스의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할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는 지난 2021년 11월 처음으로 게임 서비스를 제공한 이후 2년여 만에 2배 이상 늘려 현재 50여 종의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특히 ‘기묘한 이야기’ ‘퀸스 갬빗’ ‘나르코스’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게임들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한 기존 게임업계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풋볼매니저 2024’ 모바일 버전과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 등도 서비스하며 더 많은 이용자들이 넷플릭스에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애플TV 역시 자사의 구독 서비스인 애플 뮤직과 애플 아케이드 등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와 게임 서비스를 결합해 이용할 경우 요금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구독서비스 통합도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 1위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경우 자사의 OTT 서비스와 쇼핑 서비스를 결합한 통합 플랫폼 개발을 준비하는 등 신규 사업을 인수합병하고 기존 사업을 함께 통합하는 시너지 전략을 위한 묘수를 찾아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콘텐츠 강자들이 이끌어가던 주도권을 OTT 업체들이 가져가는 분위기”라며 “가입자 수가 압도적이고 능동적인 사용자를 다수 보유한 OTT가 향후 콘텐츠 서비스 통합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추동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